리투아니아의 개종
한편, 14세기 동안 기사단의 여행 상품은 큰 성공을 거두며 기사단의 금고와 영토를 착실히 불려주었지만, 14세기 말에 이르러 기존의 세력 판도를 한꺼번에 뒤집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기사단의 입장에서는 느긋하게 북두칠성을 감상하다가 갑자기 그 곁에 빛나는 작은 별--다른 말로 하자면, 사조성이라고도 한다. 이 별을 본 사람한테는 한 달 이내에 가슴이 구멍 7개난 남자가 찾아가 비공을 찔러주며 이미 죽어있다고 말해준다고 한다.--물론, 그 결과도 기사단이 이리저리 쑤시고 다닌 결과로 자초한 꼴이었지만.
1385년 26세의 나이로 리투아니아의 왕위를 계승한 젊은 요가일라는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한 결과, 그들의 힘만으로는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라는 두 강력한 적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는-너무 당연한-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과 손을 잡아야 했는데, 그는 동맹자를 놓고 좀 더 상황을 물색해보았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너무나 쉽게 결정났다. 재수없는 남자색휘와 미소녀 중에서 누구랑 손잡을거냐고 물어본 결과였다. 튜튼 기사단의 개종은 검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었지만 폴란드는 12세의 로리로리 미소녀로 추정되는(...) 여왕인 야드비가와와 결혼시켜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무려 여왕님이시다-_-;;
(로리지온?)
그럼 남편은? 왕비와 여왕은 다르다지만, 이 경우에는 여왕의 남편은 왕이 될 것이다. 마침내 1386년 2월, 그는 세례를 받고 폴란드의 새로운 국왕인 울랴디슬로우 야기에우오로 즉위했다.
이후 200년 동안 이어질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연합 왕국의 시초가 다져졌다. 곧 1387년, 야기에우오는 리투아니아를 개종시켰다. 수도 빌니우스에 있던 큰 참나무가 무거운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그 자리에는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 세워졌다. 이렇게 마지막 남은 이교의 성지였던 리투아니아도 카톨릭 세계에 편입되었다.
이 사태로 튜튼 기사단도 꽤나 난감한 사태에 빠졌다. 둘이서 하나를 다구리치다가 역으로 다구리 맞게 생긴것이다. 더군다나 이제 리투아니아도 카톨릭으로 개종해버렸는데, 이교도였을 때처럼 대낮에 두들겨 패기도 어색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튜튼 기사단은 이 사건 이후에도 리투아니아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연대기 작가들은 야기에우오가 폴란드의 왕관을 노리고 거짓 개종을 했다고 주장했다. 잉글랜드의 헨리가 십자군으로 참가했던 것도 이런 상황에서였다. 하지만 서서히 리투아니아의 개종 사실이 기정 사실화되면서, 리투아니아에 대한 십자군의 열정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긴 해도, 아직까지 기사단의 힘은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의 힘에 뒤지지 않았다.
1390년, 헨리 보일브로크가 이끄는 부대는 리투아니아의 옛 수도인 빌니우스를 공격해 리투아니아 왕자를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그는 그대로 왕자를 잉글랜드로 보냈는다. 예로부터 전쟁에서 포로가 잡힌 쪽이 노예가 되는 것은 드문일이 아니었으나, 이번 것은 중세인의 시각으로도 치졸하고 부당한 행위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도는 유대인, 야만인, 사라센같은 비기독교인을 노예로 삼을 수 있다"고 정의했는데, 리투아니아 왕자는 이미 개종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사단은 리투아니아가 실제로는 개종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기사단으로 찾아오는 십자군의 수가 줄어드는 것까지 방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예전에는 돈을 싸들고 찾아오던 기사들 대신, 기사단은 용병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1394년, 부르고뉴 공작 필립은 150명의 제노바 석궁병을 고용해 기사단에게 보냈는데, 나중에 그랜드 마스터가 그에게 보낸 편지에는 와인과 용병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다.
탄넨베르크 전투 전해인 울리히 폰 줄링겐이 보낸 편지에도 용병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언급되어 있다.
탄넨베르크 전투
결국,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군과 튜튼 기사단이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때 연합군은 야드비가와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면서 분열의 위기에 처했지만 야기에우오는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투스와 협정을 맺어 결속을 공고히 했다. 특히 이 때 리투아니아인은 1399년 보르스클라 강 전투에서 킵차크 칸국에게 비타우투스도 간신히 달아날 정도로 대패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으므로, 동맹을 공고히할 필요가 있었다.
탄넨베르크 전투의 결말은 이렇다---장군 힌덴도르프와 루덴도르프가 이끄는 독일군은 삼소노프의 군대를 3면에서 포위해 궤멸시켰고, 이 전투는 제 2의 칸나이 전투로 불리며 전사에 길이 남아있다--라는건 500년 후에 벌어질 이야기고, 이날의 결과는 좀 달랐다.
그렇다면 이날까지의 진행은 어찌된 것일까?
1407년, 당시 튜튼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였던 콘라드 폰 줄링겐이 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당시 기사들에게 대단한 존경심을 받고 있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병 때문에 그랬다. 당시 그는 담석증에 걸려있었는데, 의사는 치료책으로 후덜덜한 제안을 했다.
H...
그렇다! H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유형 달"이라는 모 일본 에로겜 회사에서 H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성향이 있던데(...) 담석증이 H로 치료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마 당시 의사가 나이스바디 안경 누님은 아니었고, 성스러운 기사단장님은 의사의 의견을 물리치고 순결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어흠,) 기사단장 콘라드는 죽으면서 그의 동생인 볼프람...이 아니라 울리히를 다음대 그랜드마스터로 지명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동생은 폴란드인에 대해 강렬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고, 이대로 가다가는 기사단에게 치명적인 해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동생 울리히는 결국 다음번 그랜드 마스터로 선출되었다. 과연 동생님은 폴란드인을 범하지 못해 안달이 났던바, 1409년 대규모 군대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처를 공격했다. 야기에우오는 바로 대응에 나서 튜튼 기사단의 공세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사이, 양쪽은 최대한 전력을 끌어모았다. 특히 폴란드-리투아니아쪽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언제 등 뒤를 덮칠지 모르는 mr.ya인 헝가리 국왕 지그문트에게 황금을 보냈다. 지그문트는 쓱 입을 씻고 알아서 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곧 연합군은 비스툴라 강에 부교를 놓아 보헤미아의 얀 지슈카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모 게임 때문에 말하는거지만 얀 지슈카(지즈카)는 나이스 바디 광선검 누님이 아니라 애꾸눈 남자 대포 매니아다-_- 여기에 더해 야기에우오는 금장칸국의 몽골인까지 끌어들였는데, 이 때문에 튜튼기사단은 이 전투를 십자군과 이교도의 전투로 덧칠했다.
1410년 7월 9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은 프로이센으로 진군하며 엄청난 파괴와 약탈을 자행했다. 물론 이는 튜튼기사단의 리투아니아 공격에 대한 보복이었지만 어찌나 잔혹했던지, 잔혹성으로만 따지면 튜튼기사단이 했던 행위에 뒤떨어지지 않을 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랜드 마스터는 연합군이 Dobrzyn쪽으로 접근하리라 파악하고 있었고, 리투아니아군과 폴란드군이 다른 방향에서 들어올 것이라고 대비해 군대를 분리시켜둔 상태였다. 그러나 연합군의 목표는 튜튼 기사단의 것과 어긋났다. 그 목표는 바로 기사단령의 수도인 마리엔부르크였던 것이다! 당황한 기사단은 황급히 최종 방어선인 드레빈츠 강 유역 방어선을 강화했다. 이 때 기사단의 병력은 약 30,000명으로 추산되며, 연합군은 50,000정도로 추산된다. 물론, 기사단의 병력에는 예전보다는 수가 줄었지만 적지 않은 수의 십자군이 포함되어 있었고, 군대의 질에서는 기사단쪽이 월등히 높았다.
연합군은 드레벤츠 강을 지나기 위해 좀 더 동쪽으로 우회했고, 기사단은 연합군과 평행하게 강을 따라 이동했다. 그러다 강이 급격히 북쪽으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기사단은 강을 건너 방어적인 대형을 취했다. 튜튼 기사단은 그룬발트 마을 근처에, 연합군은 탄넨베르크 마을에 진을 쳤다.
전장까지 기사단은 16마일을 전진해야 했지만 덕분에 방어에 유리한 습지로 둘러쌓인 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연합군은 5마일을 이동했고, 방어에 유리한 지점은 아니지만 숲에 병력을 매복시킬 수 있는 지점을 손에 넣었다.
곧, 그랜드 마스터가 야기에우오에게 검 2자루를 보내어 도전을 요청했다. 전투는 먼저 리투아니아 기병이 위풍당당하게 적을 향해 질주하며 시작되었다.튜튼 기사단은 돌격해오는 적을 바라보다, 사정거리 안에 들어서자 일제히 석궁과 활을 발사했다.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온 화살이 여지없이 리투아니아 기병들의 몸과 말에 이빨을 들이밀었다. 곧 상처에서 피가 샘솟듯이 솟구치고, 기병들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얼마 전에 온 비 때문에 리투아니아 기병들은 대포 사격까지 뒤집어쓸 일은 없었고, 이들은 용맹스럽게 기사들을 향해 전진했다.
그 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 말하자면, 기록 제공자가 되어야 할 기사단장님께서 이날 전투에서 뒈져버리셨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을 알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날 튜튼 기사단은 크게 분전했고, 얼마 안되어 리투아니아 기병대가 패주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승리의 예감에 전율을 느끼며 리투아니아 기병들을 쫓기 시작했다. 승리다! 기사단 내부에 우렁찬 함성이 울려퍼졌다! 기사들은 이대로 리투아니아 기병들을 쫓아 달려들기 시작했다.
(스몰렌스크 연대)
아, 내가 말 안했는가 모르겠는데, 짤방의 리투아니아의 스몰렌스크 연대 복장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분들 복장이 상당히 몽골군과 유사하지 않은가? 그리고 몽골군의 주요 전술이 위장 퇴각과 역습이라는 것도 말해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물론 리투아니아인이 타타르인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치고박고 하는 동안 뭘 배웠겠는가?
어찌되었건 추격 와중에 기사단의 전열이 흐트러졌다.
그러나 폴란드군은 좌측면이 노출될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그대로 전진해 기사단과 전투에 들어갔다. 곧 양 군대 사이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전투가 한창인 와중에 폴란드의 왕기가 기사단의 손에 들어갔다. 기사단은 이 전투에서 승리했다고-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왕기가 있는 곳에 왕이 있으므로-크게 기세를 올렸지만, 야기에우오는 후방에 있었다. 얼마 안되어 폴란드군이 다시 적을 밀어붙여 왕기를 탈환하자 전투는 다시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었다. 이 때 일부 기사단 병력이 폴란드군의 측면과 배후를 위협했지만, 리투아니아군의 일부가 도착해서 약점이 노출되는 것은 저지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리투아니아 군을 추격하던 기사단 병력에게서 터져나왔다.
한참 달아나는 도중에 갑자기 숲에서 폴란드군이 뛰어나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달아나던 리투아니아군도 기수를 돌려 기사단에게 달려들었다. 칼로 찔렀는데 전화번호부느낌이 들어버린 난감한 상황에서, 리투아니아 기병의 짐승의 뼈를 끊는 칼이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곧 큰 피해를 입은 기사단 병력이 밀려났다.
그러나 아직 중앙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울리히는 신선한 예비대를 투입해 지친 군대와 교대했고, 야기에우오 역시 최후의 예비대까지 투입했다. 울리히는 왕을 노리고 전투에 나섰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던 순간, 리투아니아군대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추격대를 섬멸한 리투아니아 기병들이 측면의 약점을 파고들자 기사단이 밀리기 시작했다. 곧 기사단의 전열이 과도하게 밀집된 상태에서 폴란드 기병들이 기사단의 군대를 돌파하는데 성공했고 마침내 기사단의 전열이 와해되었다.
이날 그랜드 마스터는 누군가와의 결투에서 패배해-혹은 곤봉에 맞아-전사했다.
사신은 논한다.
전일 한국 판타지 소설을 보건대, 그랜드 마스터라함은 마스터를 초월하여 감히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자로 [검강의 길이가 40자에 달하니 이를 보는 드래곤로드의 얼굴에 두려운 빛이 가득하였다]하고 [블랙드래곤이 검강에 포위되어 수십토막 났다]고 하며 [기사 육백명이 일격에 두토막나니 거의 떨치지 못했다]한다. 나라 하나 박살내는 것을 우습게 아는 드래곤을 아무로 자쿠 잡듯 때려잡는 것이 그랜드 마스터이거늘, 오늘 전투에서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고 하니, 이는 자국의 위를 높이기 위해 과장한 것이 아닌가.---본문과는 상관없습니다-_-
탄넨베르크 전투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500년 후의 탄넨베르크의 예술적인 기동은 러시아군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안겨주었지만, 동부전선이 이로서 결판난 것은 아니고 러시아군은 다시 한 번 대규모 공세를 시도할 여력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튜튼 기사단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포로만 무려 14,000명에 달하고 적지 않은 기사들이 전사했다. 그래도 마리엔부르크의 성벽은 55일 동안이나 폴란드의 대포에 굴하지 않고 저항했다. 곧 슬슬 카드빚-특히 보헤미야 용병에게 줄 급료-이 위험해진다고 판단한 야기에우오가 철수하면서, 기사단의 성벽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살아는 남았지만 이 때 들을 말이 뭐겠는가. "너는 10초 후에 죽는다" 아니겠는가-_-
이날 전투에서 외부 지원군의 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사단 본군의 손실 역시 엄청났다. 적어도 기사 200과 보병 수천의 손실이 있었으며 더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십자군 지원이 끊긴 것이다. 누가 저렇게 밀리는데, 그것도 카톨릭 교도를 상대로 십자군에 나서겠는가. 아마 그럴 마음씨가 있는 사람은 쓰나미 몰려오는 곳으로 떠나는 자원봉사자 수준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전투 이후에 기사단은 할 수 없이 적어도 7,500명에 달하는 용병을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어려워진 것이 바로 토룬(Thorun)의 협약으로, 기사단은 850,000파운드에 달하는 금액을 보상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이는 잉글랜드 왕의 10년치 수입과 맞먹는 양이다.
그러나 100년 후 이탈리아의 마키군이 경고했듯이-물론 언제나 맞는 말은 아니지만-용병들은 제멋대로에 비싸다. 거기에 기사단이 봉급을 연체할 기미가 보이자 용병 부대도 가만있지 않았다. 특히 일부 용병대는 반란을 일으켜 드레벤츠 강 유역을 오르내리는 해적이 되었다. 야기에우오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기사단령을 공격해 중요 인물들을 사로잡고 몸값을 받아내었다. 또한 이 전투에서 폴란드군은 적지않은 수의 용병들을 사로잡았는데, 야기에우오는 이들에게 뼈와 살이 분리되는 짜릿한 쾌감을 맛보여 주는대신, 이들을 그냥 풀어주었다. 당연히 용병들은 기사단령으로 되돌아가 봉급을 주라고 땡깡을 부렸다.
그나마 금고가 비자 용병들마저 줄어들었다.
결국 1426년의 마지막 용병대를 끝으로, 기사단의 모험은 끝났다. 서프로이센의 비교적 발달된 지역은 폴란드의 손에 넘어갔고, 동프로이센의 낙후된 지역에 기사단은 고립되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의 선택은 두가지였다. 떠나느냐, 남느냐.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선배인 구호 기사단이었다. 이 '그리스도의 뱀'들은 장미꽃 피는 로도스 섬에서 투르크군과 맞서 해적질을 하며 그들을 괴롭혔다. 심지어 투르크 군의 공격에 대해 로도스와 몰타에서 10만이 넘는 손실을 안겨주는 강력한 포쓰까지 선보였다. 그러나 튜튼 기사단은 그렇지 못했다. 일부 용감한 군대는 떠났지만, 상당수는 남았다. 그리고 역사의 물결이 흔적을 지우고 석상이 바람에 스러지듯, 1525년 기사단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래봤자 삿찡은 루트 없이 퇴장입니다-_-)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 지역의 이름을 딴 국가가 일어서서 야기에우오도 이루지 못했던 강력한 제국을 세우게 될 것이었다.
탄넨베르크의 유령
탄넨베르크 전투는 단지 전투 자체로서만 의의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전투에서 이긴 쪽이나 진쪽이나 자기네 입맛대로 전투를 채색했다. 뤼벡의 연대기에 따르면, 기사단의 적은 무려 510만에 달했다고 한다. 제정신 박힌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걸 못믿을 것이다.
그러나 이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는 500년 후까지 살아남아 힛총통과 슷할린의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이 두 후덜덜한 독재자의 시대에, 탄넨베르크는 게르만과 슬라브의 민족 대립으로까지 확장되었다. 힛총통은 튜튼 기사단에서 SS단의 모티브를 찾았다. 이들은 개인적은 자유를 반납하고, 적, 특히 슬라브인과의 싸움에 뛰어들도록 교육받았다.
물론 이에 뒤질 슷할린이 아니었다. 물론 슷할린이 리투아니아 기병의 스몰렌스크 연대를 따라 KGB를 만들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려 1410년에 "소비에트"인들이 게르만인에게 승리를 거둔 사건이 되기엔 충분했다. 이 "붉은 군대"는 역시 리투아니아 기병에 있던 스몰렌스크 연대였다.
더군다나 탄넨베르크에서 괴멸된 기사단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비참한 패배를 당한 힛총통의 군대에 투사되어 있었다.
그러나 누가 되었든 간에, 탄넨베르크 위를 오가는 전차들이 앞으로 밝은 시대를 예고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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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중간에 저 댄스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십니까?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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