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어떤 영국 군인의 모험담을 그린 Sharpe 시리즈 중, 포르투갈에 주둔한 영국군 장교들의 아침식사 장면입니다.
Sharpe's Enemy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2년, 포르투갈)----------------------------------------
웰링턴이 외지로 떠나고 난 뒤라서, 장교들은 아침시간을 침대에서 보내든가, 아니면 바로 옆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이 포르투갈 여관 주인은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만드는 법을 배운 모양이었다. 포크 찹스, 계란 프라이, 튀긴 콩팥, 베이컨, 토스트, 클라레 포도주, 더 많은 토스트, 버터, 그리고 화약찌꺼기가 늘러붙은 곡사포의 포구를 씻어내릴 정도로 강하게 끓인 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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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치고는 아주 거창하지 않습니까 ? 유럽 대륙에서는 흔히들 영국에서는 아침을 세번 먹는 것이 가장 잘 먹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건 영국인의 형편없는 음식 솜씨를 비웃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침을 아주 든든하게 먹는 영국인의 습관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가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서머셋 모옴의 명작 '인간의 굴레'의 주인공인 필립은, 19세기 말의 영국 청년입니다. 이 친구는 도중에 파리로 미술 유학을 갑니다. 거기서 필립이 만난 어떤 영국 부인이 자신은 여기서도 영국인다운 생활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 부인이 예로써 언급하는 대표적인 영국인다운 생활의 예가 "고기가 딸린 아침(meat breakfast)과 오후의 티(afternoon tea)"입니다.
여러분들 우리나라 2류급 호텔에 묵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아침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메리칸 브렉퍼스트와 컨티넨탈 브렉퍼스트가 있습니다. (1류 호텔에서는 오히려 그런 분류가 없는 것 같던데요 ?) 여기서 컨티넨탈 브렉퍼스트라는 것은 매우 간단한 것으로, 그냥 롤빵이나 토스트에 커피 한잔 정도입니다. 아메리칸은 거기에 계란 프라이나 베이컨 정도를 추가한 것이지요. 맞습니다. 컨티넨탈, 즉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에서는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역시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영국 해군 장교의 모험담을 그린 Hornblower 시리즈 중에, 프랑스 반혁명파 귀족들과 함께 점령지 마을에서 아침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냥 빵과 커피를 먹습니다. 아무리 점령지 마을이라지만, 귀족들인데도 아주 간단하게 먹지요 ?
아침나절부터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두 거북해하는 것에 비해, 영국인들은 고기, 특히 저 위 소설 장면 속에서도 나오 듯이 콩팥 요리나 소시지, 블랙 푸딩 등 좀 거시기한 고기 종류를 많이 먹었습니다.
(블랙 푸딩이 뭐냐고요 ? 저 위 사진 접시의 오른쪽 하단에 있는 시커멓고 둥근 것입니다. 피로 만든 소시지... 선지입니다 !)
반면에 같은 Hornblower 시리즈 중, 자메이카의 총독인 영국군 장군과 아침 식사를 할 때, 장군은 (아침부터 !) 스테이크를 주문하는데, 혼블로워가 삶은 달걀 3개를 주문하자 장군이 '뭐 그딴 걸 먹냐'는 식으로 의아스럽게 혼블로워를 쳐다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당시 영국인은 아침 식사를 거하게 먹었는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점심을 가볍게 먹었을까요 ? 절대 아닙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dinner가 바로 점심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dinner라고 하면 저녁이지요 ? 영국에서는 점심을 가장 중요하게 잘 차려먹기 때문에 점심을 dinner라고 불렀습니다. 요즘은 현대화로 인해, 프랑스에서도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먹는 판에... 영국애들도 그냥 'lunch'를 먹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샌드위치나 햄버거, 피자... 뭐 그런 것으로 먹나봐요.
당시 영국인들은 점심 때는 고기에 환장한 인간들처럼 아주 대놓고 고기를 '처먹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대식가로 소문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젊어서 영국에 유학을 갔을 때,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올 정도입니다.
"여기 영국인들은 식량 사정이 정말 좋고, 또 정말 잘 먹습니다. 점심 시간 때부터 테이블에 커다란 로스트비프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젊은 시절 게으른 난봉꾼 비스마르크에게, 뭐라도 좀 배워오라고 영국에 유학보냈던 비스마르크의 아버지, 이 편지를 보고 억장이 무너지셨을 듯... 어째 유학가서 고작 배운 게 고기 처먹는 습관...)
사실 이 로스트비프가 바로 영국인의 대표적인 점심식사였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인들이 프랑스인들을 frog, 즉 개구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것에 비해,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을 roastbeef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어느 정도 형편이 된다면, 서민들도 일요일 점심에는 이 로스트비프와 요크셔푸딩(밀가루, 계란, 우유로 만든 둥글고 달콤한 빵같은 것)를 챙겨먹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인간의 굴레'라는 소설에서도, 일요일 점심때 어떤 서민 가족의 집에 놀러간 주인공 필립이 로스트비프와 요크셔푸딩을 대접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다음이 오후 4시 경의 애프터눈 티였습니다. 이때는 차만 마시는 것이 아니고, 케익이나 스콘, 심지어는 간단한 고기 종류까지 해서, 아주 제대로 차려먹었습니다. 차도 한잔 마시는 것이 아니고 두잔이고 세잔이고, 밀크와 설탕을 잔뜩 넣어서 마셨습니다. 서민층에서도, 살림살이상 케익같은 것을 준비못하니까 하다못해 버터를 바른 빵이라도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새참같은 간단한 식사였던 것이지요.
(최근에 영국에 유학했던 친구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최소한 하숙집 티 타임에서는 그냥 티만 주더랍니다. 하숙집말고 일반 가정집에서도 요즘은 그렇게 간단하게 티 타임을 때우나 봐요.)
점심도 거하게 먹고, 새참까지 든든하게 챙겨먹었으니 저녁이 제대로 먹히겠습니까 ? 당연히 저녁(supper)은 늦게 먹었습니다. 대략 한 오후 8~9시 쯤 ? 이때는 애프터눈 티처럼 그냥 간단하게 먹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녁때 오페라나 뭐 그런 공연을 갔다와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정도입니다.
영국 어린이들은 대개 이 supper를 먹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 중에서도, 애프터눈 티만 먹고 자는 '아주 어린 어린이'와, supper까지 먹고 자는 '좀 큰 어린이'로 구별이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19세기~20세기초 이야기입니다.)
물론 위와 같이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 중산층 이상의 이야기였습니다. 서민 계층에서는 평일날에는 베이컨이나 치즈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하며 먹었지요. 어느 정도가 중산층이냐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기준이 모호한 바가 있습니다만, 상식적으로 상류층은 상위 2~3%, 중산층은 상위 20% 정도를 말하는 모양입니다. 어느 나라건 국민 대다수는 '서민'이지요. 그러니까 중산층의 삶이라는 것이 그 시대 그 사회의 '평균'은 절대 아닙니다.
자, 어떻습니까 ? 영국인들이, 음식 솜씨는 나쁠지 몰라도, 먹기는 참 잘먹지 않습니까 ? 사실 영국은 땅덩어리는 별로 안크지만, 목축업이 발달해서 고기는 비교적 잘 먹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는 영국인들을 위한 목장 노릇을 했지요. 정작 아일랜드인 자신들은 물과 감자로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이었지만요. 그러나 영국보다도 더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던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이지요. 19세기에, '유럽에서는 중산층이나 먹는 음식을 미국에서는 서민도 먹는다더라' 하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고, 또 그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었답니다.
(이것이 미국식 아침식사인데, 자, 과연 영국식 아침식사와의 차이점은 ? 흠... 블랙푸딩이 안 보인다는 것 외에는 뭐 별로... 그야말로 난형난제, 암튼 앵글로 색슨들이란...)
그 결과,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비만인구가 많은 나라가 바로 영국입니다. 세계 제일의 비만 국가는 물론 미국이지요. (어느 분이 지적하시길, 태평양 어딘가의 투발루라는 섬나라가 가장 비만 국가라고 정정해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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