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임진왜란

[스크랩] 조선군의 원앙진법

구름위 2012. 10. 7. 16:23

 

 

1557년 척계광은 소흥에서 모집한 3천명의 병력을 훈련시켰다. 다음해인 1558년 주산 군도에서 벌어진 왜구와의 전투에서 그의 군대는 승리하지 못했으며 척계광은 소흥 토박이들에 대해서 실망한다. 그는 도회지 청년들을 뛰어난 병사로 훈련시키는 것이 힘들다는 판단하에 오직 농촌 출신 청년만 병사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다음해 여름 척계광은 자신이 수비하는 지역에서 왜구를 몰아내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파면당한다. 윗사람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척계광은 항주에서 60마일 가량 떨어진 이우 지역에서 지원자 3천명을 모집해 자신의 방식대로 훈련시킨다.

 

척계광이 발명해낸 훈련체계들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대장 1, 등패수 2, 낭선수 2, 장창수 4, 당파수 2, 화병(취사병)1, 도합 12명으로 구성된 전술 대형 원앙진(鴛鴦陣)이다.  새로 설립된 보병분대가 원앙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앙은 암수 한쌍 중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마리도 따라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

 

척계광은 각 원앙진의 대장이 부상을 입지않도록 엄격한 군율을 적용했다. 만약 전투 도중 대장이 전사하고 패배를 당할 경우 대장이 전사한 원앙진 분대의 나머지 생존자들도 모조리 처형당했다. 그러므로 원앙진을 이루고 있는 각개병사들은 대장이 전사하는 것을 막기위해 전투내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적과 싸워야만 했다.

 

1) 분대장 1 (분대의 깃발을 들고있다.)

 

2) 만곡도와 등패로 무장한 병사 2

 

3) 낭선으로 무장한 병사 2

 

4) 장창으로 무장한 병사 4

 

5) 당파로 무장한 병사 2

 

6) 취사 및 잡일을 담당한 화병(火兵) 1 (병참 업무 담당)

 

나이가 어리고 몸집이 중간이며 신체가 유연한 자 두 명을 제1 2로 삼아서 등패수로 충원하고, 나이가 장성하고 신체가 커서 힘이 센 두 사람은 제3 4로 삼아서 낭선수로 충원하며, 정신과 골력이 있는 네 명을 제5 6 7 8로 삼아서 장창수로 충원하고, 살기와 담력이 있는 자 두 명을 제9 10으로 삼아서 당파수로 충원하며, 사람이 용렬하고 녹록하여 남의 부하가 되기를 좋아하는 자 한 명을 제11로 삼아서 화병(火兵)으로 충원한다.

 

- 기효신서(紀效新書)중에서 -

 

척계광은 개인의 적성에 맞게 장비를 지급해서 훈련시켜 전투력을 극대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는 개인의 기량을 중시하던 그 이전의 병학사상에서 한 걸은 나아가 다소 기량이 떨어지는 개인을 적성에 따라 묶어 집단적으로 운용하려는 특징을 보여준다.

등나무로 만든 둥근 방패(rattan shield). 또는 이 방패를 사용하는 무예를 가리켜 등패라고도 한다. 방패는 등나무의 줄기를 휘어서 둥글게 바탕을 만들고 뼈대를 엮어 대나무껍질로 얽는데, 바깥쪽은 가운데 거죽으로 불룩 나오게 하여 중심에 귀면(鬼面)을 붙이고 안쪽에는 등나무 줄기로 손잡이를 만들었다. 소쿠리의 뚜껑을 짜는 것과도 유사하다.

 

적 방향으로 향한 부분은 둥그렇게 융기되고 그 가장자리가 바깥으로 휘어 있어 적의 화살이나 창 공격이 뚫지 못하며 빗겨가게끔 세밀하게 설계가 되어 있다. 등패를 왼손에 지니고 오른손으로 칼을 사용하여 적의 칼이나 창, 날아오는 화살들을 막는 데에 사용했다.

낭선은 노다치(野太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개발된  병기이다. 낭선을 이용해 적의 칼날이나 왜구를 움직이기 어렵도록 옭아매는 동안 다른 원앙진 부대원들이 왜구를 해치웠다. 낭선에는 단단한 나뭇가지와 강철 발톱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노다치로는 낭선을 잘라내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전술 상황과 지형에 따라 각기 다른 3가지 방식의 대열을 갖춘 원앙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원앙진의 병사들은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에 따라 상호 병사들간에 협동하고 보조하면서 싸우도록 훈련받았다. 규모가 작은 원앙진의 경우 5명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장까지 포함해서)

 

원앙진의 전투 방식은 아래와 같다.

 

A) 낭선수 1명은 등패수 1명 옆에 붙어 낭선을 이용해 왜구와 그의 무기를 얽어매서 등패수를 보호한다.

 

B) 장창수 2명은 낭선수가 공격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을 창으로 찌른다.

 

C) 만곡도와 등패로 무장한 병사는 장창수가 창을 너무 깊게 짤러 적의 공격에 노출될 경우를 대비해 그를 보호한다.

 

D) 당파수들은 후미에서 지원한다.

척계광이 창안한 절강병법으로 훈련받은 절강, 복건성 지역의 병사들은 임진왜란에 참전해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점령하고 있는 평양성 탈환당시 매우 큰 활약상을 보였다.

 

절강병이 압록강을 건너왔을 때 이들이 사용하는 방패와 낭선, 장창과  당파등의 기예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 보는 것으로  명군이 평양으로 진입한 다음 먼저 화포를 발사하고 뒤이어 화전을 발사하여 왜적의 기를 꺾고 말았다. 명군은 곧 장창과 당파를 사용하는 병사를 동원하여 각기 운용 방식에 따라 사용하였는데, 만약 적이 먼저 돌진해 오면 낭선부대를 집중시켜 대기하고 만약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등패수들이 등패를 들고 전진한 결과 적은 크게 패주하고 말았다.

 

왜군의 장기는 원거리에서는 조총부대에 의한 연속사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한 후에 근접전투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병접전으로 조선군을 압도했던 것이다. 왜군의 육전에서의 연전연승은 전술과 무기체계상에 있어서의 우월성의 경과였다. 그런데  절강병들은 원거리에서는 화포로 일본군의 조총부대를 압도했으며, 근접 백병전에서는 다양한 무기체계로 단병접전에 강한 왜병을 압도했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병서(兵書)인 ‘병학지남연의’에는 원앙진의 위력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으로 진입한 다음 먼저 화포를 발사하고 뒤이어 화전(火箭)을 발사하니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왜적들은 마침내 기가 꺾이고 말았다. 적이 먼저 돌진해오면 낭선부대를 집중시켜 대기하고,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등패수들이 등패를 들고 전진하니 왜적이 패하여 도망갔다. 천하무적이다.

실제로 원앙진은 매우 효과적인 진입니다. 단점이라면 역시 훈력시간이겠지요.

 

출처: 나의 창고  네이버 블로그 등대님.

 

원앙진법에 관련된 자료입니다.

출처 :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글쓴이 : 밀리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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