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951호
분류 : 기록유산 / 문서류/ 국왕문서/ 교령류
수량 : 1장
지정일 : 1988.06.16
소재지 : 경남 김해시 (부산시립박물관 보관)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권이도
관리자 : 부산시립박물관
이 문서는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으로 임금이 피난하여 의주에 있을 적에 백성들에게 내리는 한글로 쓰여진 교서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왜적에 협조하는 자가 많았다.
그 때문에 선조는 일반대중이 쉽게 알 수 있는 한글로 쓴 교서를 내려 포로가 된 백성을 회유하여 돌아오게 하였다.
이 교서는 선조임금이 한양으로 다시 돌아오기 한 달 전에 내려진 것인데, 당시 김해성을 지키던 장수 권탁(1544∼1593)은 이 문서를 가지고 적진에 몰래 들어가 적 수십 명을 죽이고 우리 백성 100여명을 구해나왔다.
그후 이 교서는 권탁의 후손 집에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도둑을 맞았다가 다시 찾은 것이다.
어쩔수 없이 왜인에게 붙들려 간 백성은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과 왜군을 잡아오거나 왜군의 정보를 알아오는 사람, 또는 포로로 잡힌 우리 백성들을 많이 데리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천민, 양민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내릴 것을 약속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이 문서는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과 한글로 쓰여진 점에서 국문학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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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이런게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임진란당시의 삐라라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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