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국이 참전 안 해도, 조선은 일본은 격퇴할 수 가 있습니다.
고니시가 평양에서 더 북진 했다면 조선국왕은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역사적으로 가정을 따진다면 조선이 더 안타까운 일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이순신 장군이 전라도 보다 경상도 수군에 부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경상도 남해안을 책임지는
경상우수사에 임명했다면 전란의 조짐을 금방 알 것이니 고니시의 선단 700척이 부산포에 상륙이나 했을 까요?
경상우수사에 속해 있던 판옥선이 100척이고, 노량해전 당시에 조선수군은 66척의 판옥선으로 500척의 일본군 선단을 대량 학살한 전례까 있고, 단순히 호위한다는 미명아래에 소수의 수군부대 인원에 싸움 할 줄 모르는 격군들에 육군부대 18700명이 실려있는 수송선단 700척은 한산도 해전 당시에 일본수군의 수준이 아니면, 정유재란 당시에 조선수군이 싸웠던 일본수군의 수준도 아닙니다.단순한 수송선단들이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100척의 판옥선의 상대가 될까요?
아님, 신립이 조금만 더 빨리 충주로 왔다면 고니시부대는 탄금대에서 조선군과 싸우지 못하고 조령에서 조선군보다 더 우수한
화력과 병력을 가져서도 지세의 험남한 때문에 이리 저리 북상하는데 힘들 것이고, 가토 부대도 고니시부대 따라 북상하는 길이라서
고니시부대와 함께 조령고개에서 장기간 있을 것입니다.
일본군의 북상이 지연 됨에 따라 아무리 겁쟁이 조선이라도 해도 시간적 여유가 생길 것이고, 조선군에게 재정비의 시간이 들어 오겠죠.
북방에 배치된 조선 정예 병사들도 서둘러 남하를 시도 할 것이면,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에서 임금을 구한다는 근왕병이
올라 올 것이면, 경상도에서도 저항을 할 것입니다.
충주에서 북상이 늦어지면서 육지에서 조선의 반격이 거세지고, 거기에 이순신 함대도 출병할 것이니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고,
육지에서 조선애들의 저항을 다 분쇄시키고 시간이 엄청 지나서 한성을 점령한다고 쳐도, 이미 이순신 함대는 바다에서 자국의
선단들을 파괴시켜서 심리적 압박이 거세 질 것이 뻔하고, 시간이 지연 됨에 따라 여유있게 조선조정은 평양으로 도망 칠 수 있으면
한선에 남아있는 온갖 재물들을 안전한 곳에 옮기고, 한성에 사람들도 도망쳤겠죠.
일본군들이 한강 이북으로 전진 할 수 있는 이유는 조선의 식량을 약탈해서 가능한 일인데, 조선 조정이 서울과 각 고을에 일본군에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식량을 소각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럼 일본군은 장기간 못 버티고 자기 나라로 퇴각합니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 6~7월달에 조선 조정은 바닷길로 호서나 호남으로 가는 항로를 탐색하고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의주에 도착한 다음에 선조는 명국으로 망명이 시도하지만, 거부된 상황이고, 조선 조정 대신들도 반대하는 상황이므로
일본군이 북상하는 일이 생기면 여차하면 전라도쪽으로 도망간다는 계획의 준비입니다.
고니시가 북상하지 않아서 전라도 바닷길로 도망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명군이 참전하니까 전쟁이 길어지고, 조선이 더 불리했습니다.
명군이 참전 안 해도, 일본군은 장기간 조선에 주둔할 여건이 안됩니다.
이미 조선은 1593년 여름부터 식량난에 시달리고, 1594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국에 대아사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이 기간에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었다는 기록이 빈번하게 나올 만큼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것죠.이 일은 1595년 여름까지 조선은 지속되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수군을 경우 경우 건사할 뿐이고,
나머지 조선군부대들은 먹일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는 이가 발생하여 아예 소수의 사람만 빼고 전부 고향으로 내 보냈죠.
1593년 초에 5~6만명을 지휘하던 경상북도의 경상좌병사 박진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지휘하는 병사가 수백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다른 지역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군부대만 뻬고, 육군을 지휘하는 감사들이나 병사들이 지휘하는
실질 병력은 수백명에 불과 할 뿐이었습니다.
수군부대 조차 1593년부터 1594년까지 배급되는 식량이 매우 부족하여 배고픔에 시달려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병사들이 많아져 역질에 금방 노출되어 죽은 이들이 상당수 였습니다.
거기에 여건이 가장 좋다는 수군부대에서 도망치는 병사들이 상당수 있어 붙잡힌 경우에도 주동자만 베고 나머지는
다시 복귀시키는 일도 잦았습니다.
일본군들은 식량들을 조선에서 얻어야 할 처지인데, 식량을 얻어야 할 조선인들이 저런 상태인데.
식량 보급이 될까요? 더구나 일본 본토에서 식량을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조선이 전쟁이 치룬 지 1년이 넘어선 부터 조선에서는 이처럼 식량난이 발생하여 점차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화됩니다.
명군이 참전하지 않으면 조선 주요 거점들을 점령했던 일본군이 이처럼 장기간 주둔할 수가 있나요?
먹을 밥이 모자랄 것이고, 조선인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것이니
명군이 오지 않더래도 일본군은 장기간 내륙에 있을 수 없습니다.
전쟁 기간에 들판에서 군대 대 군대로 정면승부한 전투에서 명나라와 조선이 일본군에게 이긴 전투는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들판에서 명나라가 개입해서 싸운 전면전 도 벽제관 외에 전투는 없습니다.
사소한 국지전이 여럿 있지만, 전투 축에도 안 들어 갑니다.
명군이 전쟁 기간 내내 그들이 내세운 전과는 별로 없습니다.
정유년의 울산성 전투와 1593년의 평양성 전투 밖에는 없지만, 그것 아니더래도 조선은 자체적으로
일본군을 격퇴시 킬 수 있습니다.
명군이 개입해서 평양성에서 승리를 거둬 전쟁의 향방을 바꾸어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평양성에서 고니시가 장기간 주둔할 수 없습니다. 시간만 앞 당겼을 뿐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바로 식량난에 봉착해서 그들이 장기간 주둔할 여건이 될 까요?
일본 선교사가 쓴 일본사에서도 고니시가 평양에서 식량이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오히려 조선군이 10월에 관군이 11월에 승병이 일본군을 공격한다는 계획을 막은 놈들이 명나라 애들입니다.
그 시기는 추위가 닥친 시기이고, 식량이 바닥나는 처지이니 평안도 병사들이 장기간 공격했다면
일본군들은 결국 시간에 지남에 따라 철수할 것입니다.
이미 경상도 성주성도 조선군의 허접된 장기간 공격에 추위에 보급난에 시달렸던 일본군도 결국 철수 하게 만들었으니
허무 맹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울산성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배를 안겨 준 것도 아니고, 일본군에 수천명의 병력 손실을 안겨 준 전투입니다.
전쟁의 향방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지만, 글쎄요....다른 장수들은 이미 전쟁에 지친 상태에서 (울산성 전투 이전)가토만 펄펄 나는 상황에서 울산성 전투을 겪고 나서 가토도 마음만 변해서 전쟁에 지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전과입니까?
다른 장수들은 전쟁을 할 마음이 없는 상황에서 가토만 전쟁 하자고 떠벌리고 다니면 뭐 합니까?
울산성 전투는 혈전이고, 아무런 전과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전쟁의 향방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미 명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이 정유재란을 실질적으로 끝냈습니다.
울산성 혈전과 평양성 탈환전을 명군이 내세울 수 있는 전과이지만, 그 전과를 커버 하고도 엄청나게 많은 그들의
미친 짓거리는 어떻게 설명할까요?
명국이 참전해서 조선이 간신히 일본을 쫓아내니 명국의 존재을 인정해야 한 다는 주장은 미친 이야기입니다.
명국이 참전하니까, 조선이 일본놈들한테 더 당하고 전쟁이 장기화 되었으니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병자호란까지 조선은 명나라한테 당하고도 또 당했습니다.
명나라 참전은 고마워 해야 하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명나라를 불러 들인
조선의 임금 선조를 지금보다 더 훨씬 미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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