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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왕구천검: 이천년동안 녹슬지 않은 비법은?

구름위 2013. 6. 1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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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겨울, 호북성 형주시 부근에 있는 망산초묘군(望山楚墓群)에서 예리하기 그지없는 보검이 출토되었다. 전문가들은 검신(劍身)에 쓰여있는 8글자의 조전명문(鳥篆銘文)을 해독한 결과 이 검은 바로 전설상의 월왕구천검(越王鉤踐劍)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 청동보검이 이천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검신에 조그만큼의 녹슨 흔적이 없다는 짐이다. 녹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들어, 월왕구천검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각종 '복제품'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월왕구천검이 천년이상 녹슬지 않은 이유를 검신에 황(Sulfur)화처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들어 호북성박물관, 호북성고고연구소 연구원인 후덕준은 글을 통하여 이 검이 출토될 때는 전혀 녹이 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저 녹슨 정도가 아주 경미해서,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또한, 출토한지 지금까지 4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이 검의 표면은 이미 출토될 때처럼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처럼 좋은 보관조건하에서도 녹이스는 정도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후덕준 연구원에 따르면, 사실 24년전에 그는 일찌기 <<월왕구천검이 녹슬지 않은 수수께끼>>라는 글을 썼었고, 호북성고고학회가 펴내는 학술성 간행물인 <<강한고고>> 1980년의 제1기에 실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히 말했었다. 다만, <<강한고고>>는 학술성의 간행물이고, 1980년 제1기는 창간호여서, 발행량이 많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 많은 매체들이 월왕구천검을 주시하고 있는데, 보도내용이 사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월왕구천검의 주요성분은 동(銅, 구리)이다. 출토된 묘실은 오랫동안 지하수에 침습을 받았고, 검은 공기로부터 단절될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녹이슬지 않은 주요한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후덕준에 따르면, 월왕구천검은 청동으로 주조해서 만들었다. 이것은 현대적인 과학적 분석을 거쳐 확인된 것이다.

중국의 고대 청동기는 주로 동(銅)과 주석(錫)의 합금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청동검의 합금구성에서는 구리와 주석의 양에 따라 제작한 연대, 장소, 원재료, 공법이 서로 달랐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구리의 함량이 70-80% 또는 그 이상이고, 주석의 함량은 10-20%가량이다. 이외에 합금에는 종종 납(鉛)과 쇠(鐵)등 기타 성분도 포함되어 있다.

 

월왕구천검의 구리함량은 80-83%이고, 주석의 함량은 16-17%이다. 이외에 소량의 납과 철이 들어있다. 아마도 이는 원료에 들어있는 잡성분일 것이다. 청동검의 주요 구성요소인 구리는 그다지 활성적이지 않은 금속이다. 일상조건하에서는 쉽게 녹이 슬지 않는다. 이것은 월왕구천검이 녹슬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고대의 묘장에서 녹이스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몇가지 경우이다: 습기가 많은 환경하에서 공기가 있거나 산소가 존재할 때 부식이 일어나고 녹이 슨다; 습기가 많은 환경하에서 귀금속(금, 은등)과 접촉하면, 전화학에 따라 부식이 일어난다; 황 혹은 황을 포함한 물질과 접촉하면, 구리의 황화합물이 된다.

 

다시 월왕구천검이 놓여 있었던 외부환경을 보자. 이 검은 1965년 겨울에 호북의 강릉 망산에 있는 1호초묘의 내관에서 발견되었다. 묘주인의 좌측에 놓여 있었고, 출토시에는 칠이 되어 있는 나무로 된 검집에 들어 있었다. 이 묘장은 수미터 깊이의 지하에 매장되어 있었고, 2중관으로 되어 있으며, 관에는 아주 세밀한 백색점토를 채워놓았다. 고고학계에서 말하는 백고니를 채워넣은 것이다. 그 아래는 인공으로 ?은 백고니를 놓아서 아주 밀봉이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묘의 상부는 단단하게 흙을 매웠으며, 이로 인하여 묘실은 거의 밀폐된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여러 단계의 밀폐로 인하여, 기본적으로 묘실과 외부세계는 공기가 순환되지 않게 되었다. 현대과학에 의하면, 완전히 밀봉되어 산소가 유입되지 않는 조건하에서는 비록 중성이나 약산성의 물에서 강철도 녹이 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월왕구천검이 녹슬지 않은 두 번째 원인이다.

 

망산1호 초묘는 현재의 형주부근에 있는 장하이간거위에 있다. 지하수의 수위가 비교적 높다. 이 묘의 묘실은 일찌기 오랫동안 지하수에 잠긴 적이 있다. 지하수는 산성알칼리성이 크지 않아 기본적으로 중성에 속한다. 이 묘가 출토될 때 아름다운 목칠기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는데서도 이는 입증된다. 지하수에 잠긴 후에 묘실내의 공기는 더욱 적어지게 된다. 이것이 월왕구천검이 녹슬지 않은 세번째 원인이다.

 

이외에 아래의 3가지를 덧붙이면, 월왕구천검이 녹슬지 않은 수수께끼는 완전히 그가 놓인 환경조건에 따른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월왕구천검이 출도될 때 절대로 녹이 슬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저 부식된 정도가 경미했을 뿐이고,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었을 뿐이다. 이 검은 출토후에 상자속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나, 출토된 후 4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 검의 표면은 출토시처럼 깨끗하지 않다. 이는 현재와 같은 양호한 조건하에서도 부식을 막기는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둘째, 월왕구천검과 동시에 출도된 세 개의 청동검이 있다. 이 세 개의 청동검은 모두 관밖에 놓여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월왕구천검보다 밀폐정도가 약했다. 그러나, 이들도 부식정도가 아주 경미했다. 심지어 월왕구천검과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묘의 두상(頭箱)에서 출도퇸 T109라는 분류번호를 지닌 청동검은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데, 출토될 때, "칼날이 얇으면서도 예리했고, 빛나는 광택을 유지하고 있었다"(보고서의 내용). 이 묘의 변상(邊箱)에서 출토된 B127이라는 분류번호를 지닌 청동검의 형식은 월왕구천검과 유사했는데, "전체 검신의 양측은 모두 흑색의 마름형 꽃무늬가 되어 있어, 매우 아름답다. 보존도 아주 양호하다. 칼날은 얇고 예리하다. 월왕구천검과 비길만 하다"(보고서). 호북성박물관에 수장되어 있으며, "동부지왕(銅斧之王)"이라고 불리우는 대동부(大銅斧)는 호북 대야동록산의 고대 광산의 광정에서 발견되었는데, 표면에는 칼날과 수직인 선이 있다.이는 고대에 노동자들이 사용했던 채광공구이다. 고대 광정의 진흙속에서 발굴되었으므로, 출토때에는 여전히 청동의 광택이 있었고, 부식정도도 아주 경미했다.

 

셋째, 월왕구천검과 시대가 비슷하고 제조공법이 비슷한 오왕부차모(吳王夫差矛)는 1983년 강릉 마산초묘에서 발굴되었다. 이 묘의 보존상태는 좋지 않ㅇ서, 관목등은 모두 썩었다. 부차모는 출토시에 창자루가 모두 부식되었을 뿐아니라, 청동표면에는 녹색의 녹이 한층 덮여 있었다. 후덕준에 따르면, 이 진귀한 물건을 처리해봤는데, 부식상황은 동시대에 출토된 다른 청동기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월왕구천검이 부식되지 않은 수수께끼는 그가 놓여진 환경때문이지 다른 것때문은 아닌 것이다.

 

월왕구천검 표면의 황화물은 사실 묘실에 있는 시체, 비단, 식품들이 썩은 후에 생긴 것이다.

 

월왕구천검이 출토된 후 지금까지 1번 X선비진공분석을 진행해본 적이 있다. 분석결과에 의하면, 검의 표면에 흑색꽃무니가 있는 곳의 황의 함유량은 겨우 0.5%이고, 검격의 표면에 있는 황의 함유량은 비교적 높아서 0.9% 내지 5.9%이다. 검신의 다른 부위에서는 황이 검출되지 않았다. 이는 검이 부식된 정도의 경중과 황의 존재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과학에 의하면 황화구리는 구조가 조밀하지 않은 물질이고, 청동기의 표면에 보호막을 형성시킬 방법이 없다. 현대문화재연구자들도 고대청동기를 보존하면서 한번도 황이나 황화합물을 사용해본 적은 없다.

 

고대의 장인들은 월왕구천검의 표면에 황화합처리를 하였는가?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황화구리는 구조가 조밀하지 않으므로, 검을 사용할 때, 사람의 손이 자주 검격에 닿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황화구리가 떨어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함에도 굳이 황화처리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춘추전국시대의 통치자들의 묘에는 대량의 부장품이 묻혀 있고, 상황이 아주 복잡하다. 시신, 비단, 의복, 식물등이 부식되면 상당한 황화물이 남게 된다. 이것이 바로 월왕구천검에서 황이 발견되는 이유이다.

 

 

 

 

월왕구천검상의 꽃무니는 금속주석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이미 현대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 청동기의 표면장식방법은 여러가지인데, 주석을 사용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청동의 밝은 노란색과 주석의 밝은 흰색은 서로 잘 대비되었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주석에는 두 가지 결점이 있다. 하나는 경도가 약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쉽게 긁힌 흔적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검신의 꽃무늬 속에 채워넣을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공기중에 손쉽게 산화하여 광택이 어두워진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장식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이런 방법은 광범위하게 쓰이지는 않았다. 고고학적 발굴에서 출토되는 이런 유형의 문화재가 드문 진정한 이유는 바로 이것때문이다. 몇년전에, 호북의 악주시박물관의 청동경연구소는 이미 이런 꽃무늬를 모방해냈는데, 그들이 사용한 공법은 아주 간단했고, 별달리 신기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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