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전국시대부터 화약값 대신에 팔려간 50만명의 일본 처녀

구름위 2013. 5. 3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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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부터 화약값 대신에 팔려간 50만명의 일본 처녀

 

 

鬼塚英昭氏の著「天皇のロザリオ」(P249〜257)は、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오니즈카 히데아키씨의 저서 「천황의 로사리오」(P249~257)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쿠토미소호의 「근세일본국민사」의 초판에 히데요시의 임진왜란 종군기자 견문록이 실려있다. 「크리스찬 다이묘(大名)ㆍ쇼묘(小名), 호족들이, 화약의 구입비로 서양 선박에 여자들을 짐승처럼 묶어 선내에 밀어넣으니, 여자들이 울고, 아우성치는 지옥의 그것이었다」. 자비에르는 일본을 유럽의 제국주의에 팔아넘기는 역할을 연기한 유태인으로 마라노(개종 유태인)의 알메이다는 일본에 화약을 팔고, 교환비로 일본 여성들을 노예선으로 실어가 해외에서 팔아먹던 우두머리 중의 우두머리였다

 
크리스찬 다이묘였던 오토모, 오무라, 아리마의 조카들은 덴쇼(1582년) 소년사절단으로 파견되 로마교황을 알현하고 왔는데, 그 보고서에는 크리스찬 다이묘들의 악행이 세계로까지 뻗치고 있었던 사실이 증명된다.

 

 「가는곳마다 일본여성이 눈에 많이 띄었다. 유럽전역에 무려 50만명이라고 한다. 백옥같이 아리따운 일본의 처녀들이 은밀한 곳까지 벗겨진체 농락당하며 노예들의 나라에까지 팔려나가는 꼴을 차마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대포때문에 자국민을 이렇게 먼 이국땅에 팔아치우는 현실이 화난다. 어찌하여 백인의 문명사회에서 같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가. 포르투갈 교회의 선교사들이 초석(화약의 원료)과 교환해, 인도나 아프리카까지 팔아넘기고 있다」고 쓰여있다.

 

 일본의 카톨릭교도들(프로탄테스트 포함)은, 크리스찬 순교자의 비극을 구전한다. 그러나, 소년사절단이 썼다(50만명의 비극)는, 화약일준에 50명의 처녀가 팔렸던 비극을 어째서 구전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크리스찬 다이묘들에게 신사와·불각을 태운 비극의 역사를 계속 무시할 것인가.

 

수천만명의 흑인 노예가 미국 대륙에 옮겨져 수백만명의 원주민이 살해당해 수십만인의 처녀가 전세계에 팔린 사실을, 이제야말로, 일본의 크리스트교도들은 기억하고 구전되어서. 그 용기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와카나 미도리씨는, 저 「쿠아트로·라갓트(네 명의 소년의 뜻)」(덴쇼 소년 사절과 세계 제국)(P.414~417)」는, 덕당소호우 「근세 일본국민사 도요토미 시대을편」(P337~387)을 인용하고 있지만, 노예 매매의 내리막 「화약일준에 대해 일본딸(아가씨) 50명」의 기록이 생략해지고 있다. 그 위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식민지 주민의 노예화와 매매라고 하는 비즈니스는, 백인에 의한 유색 인종에게의 차별과 자본츠토무, 타케시카의 격차라고 하는 세계의 격차 중(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매우 사람축에 들지 못한 사람 사이적인 「큰 악」이었다. 영웅적인 라스·카사스가 아니어도 , 선교사는 그것을 놓치지 못하고, 왕권에 호소해 이것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그 악은 이익을 이라고도 되어 있는 한, 그리고 차별을 토대로 하고 있는 한, 결코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P.419〉.

 

  이 설명의 뒤, 팔린 여성들의 말로의 비참함을 적고 있다. 꽤 완곡하게 접하고 있게 된다.

 

 히데요시는, 준관할구역장 코엘리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명하고 있다.

「포르투갈인이 다수의 일본인을 노예로 구입하여 그들의 나라로 연행하고 있지만, 이것은 용서할수 없는 행위다. 따라서 귀관은 인도를 비롯한 그 외의 먼나라에 팔려간 일본인을 다시 일본으로 데리고 돌아오라」.
  2002.7.9 일자 북국신문의 「신부추방령」도 당시의 「선교사들에 의한 일본인 여성 인신매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신부 추방령 제 10조의 「일본인을 남만에 매도하는(노예매매) 일을 금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큐슈지방의 사람들을 외국에 노예로서 팔리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히데요시의 선교사 추방령은 그러한 이유도 있었다」.

 이것들을 근거로 하고, 「주식 일기와 경제 전망」씨는 다음과 같이 코멘트하고 있다.

  
금년의 NHK의 대하드라마는 야마노우치 가즈토요가 주인공입니다만,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시대의 드라마입니다. 또 같은 NHK에서는 「그 때 역사는 움직였다」라고 하는 프로그램에서도 전국시대의 일을 잘 취급합니다. 그 중에 히데요시와 크리스찬의 관계를 취급한 것이 있었습니다만, 일본의 처녀들이 크리스찬에 의해서 노예로 팔아 넘겨진 일은 취급하지 않았다.

 

  이 일은, 다양한 문헌 자료에 의해도 증명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입니다만,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서도, 히데요시의 크리스찬 탄압은 가르쳐도, 일본 여성이 노예로서 크리스찬들이 해외 팔아 넘긴 일은 가르치지 않는 것은 왠지. 그렇지 않으면 히데요시가 왜 크리스찬 탄압에 나섰는지를 모르다.

 

 하물며 선교사의 자비엘등이 개종 유태인인 것 등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역사 교과서나 NHK등에서는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유태인이 왜 유럽에서 차별되는지를 모르게 된다. 그들은 돈이 되면 뭐든지 하는 곳은 현대라도 변하지 않다.

  왜 이러한 사실이 역사로서 가르칠 수 없을까 말하면, 역시 GHQ등에 의한 역사의 개찬이 행해지고, 크리스트교나 백인등에의 이미지가 나빠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크리스찬 오나등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 여성을 노예로서 팔아 치웠을 것이다가, 그들은 일본인의 얼굴을 한 크리스찬이었다.

 

 아마 대하드라마에서도 다카야마 우콘등의 크리스찬 오나가 나오겠지만, 처녀들을 화약일준으로 처녀 50명을 판 일 등은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크리스트교에 대한 일본국민의 이미지가 나빠져, 크리스트교는 일본에서는 아무리 선교사를 보내도 1%나 신자가 증가하지 않는다. 일찌기 크리스트교는 유괴범을 한 종교라고 하는 DNA가 파묻혀 버렸을 것이다.

  역사 교과서등에서는 크리스트교 탄압을 단순한 이교도 배척으로 밖에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만, 노부나가로 해도 히데요시로 해도 크리스찬에 대해서는 처음은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히데요시에 선교사들의 식민지에의 야심을 간파되고, 점점 위험시 하게 되어 제한을 마련했지만, 신사 불각의 파괴나 일본인을 노예로서 팔아 치우는 것이 히데요시가 노여움을 사 탄압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대에 비유하면 다케나카 헤이조등이 크리스찬 오나로서 선교사들의 손끝이 되어 일하고 있는 것과 같고, 일본의 은행이나 보험 회사등을 외자계 펀드 등에 팔아 치워 버렸다. 전국시대에 일본의 딸(아가씨)를 노예로서 팔아 치운 것과 같은 행위이며, 다케나카 헤이조는 다카야마 우콘이며, 알메이다와 같은 개종 유태인이 일본 탈취를 노리고 있다. (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크리스찬이 일본의 딸(아가씨)를 50만명이나 해외에 노예로서 판 일은 가르치지 않는 것은 왠지?」)

  

 전국시대의 일은 자료도 한정된 것 밖에 없기 때문에, 정확한 일은 모릅니다만, 크리스찬 추방령의 10조에 일본인을 남만에 매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일로부터도, 일본의 젊은 딸(아가씨)가 여럿 데리고 사라지고 매춘숙에 팔리고 있던 것 같다. 앞으로는 덴쇼(연호) 소년 사절단등이 유럽의 각지에서 일본 여성이 매춘부로서 일하게되고 있는 것등이 기록으로서 남아 있다.

   

이와 같이 전국시대도 메이지 타이쇼 시대도 많은 일본 여성이 매춘부로서 팔아 치워졌습니다만, 현대의 일본인으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일 것이다. ( 「메이지부터 타이쇼에 들이고, 30만명의 일본의 젊은 여성이 해외에 팔리고 갔다」)

  현대인이 메이지 타이쇼의 궁핍한 시대의 일을 모르는 것은, 메이지 이후의 일본의 역사를 자세하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여, 텔레비전이나 영화등에서 그려지는 메이지 타이쇼의 궁핍한 농가의 모습을 아는 일은 어렵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가니코센」등의 소설이나 프롤레타리아 문학등의 작품등을 읽으면 당시의 궁핍한 농가의 모습은 압니다만, 여자는 녀낭으로서 팔려 남자는 인부로서 팔렸다.

 

 (으)로부터 유키씨로 불린 해외에 팔아 치워진 일본의 젊은 여성은 20만에와도 30만명이라고도 말합니다만, 대부분이 20세 미만으로 병등에서 죽었다. 부모들은 어떠한 사정으로 아이를 팔아 치웠는지 모릅니다만, 당시의 궁핍함을 모르면 부모를 탓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많은 여성이 해외에 팔렸는데 많은 사람이 이 일을 모른다.

  그러니까 전국시대라고 한 100년 남짓의 사이에 50만명의 일본의 젊은 여성이 크리스찬이나 오나에 의해서 팔아 치워졌다고 하는 일도 과장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주식 일기를 읽은 독자에게는 이것을 「기존외 텍스트」로서 잘라 버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데타라메를 쓰고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만큼 현대의 일본인은 일본의 역사를 모르는 것이다. ( 「메이지부터 타이쇼에 들이고, 30만명의 일본의 젊은 여성이 해외에 팔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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