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중국 이야기

중국은 술과 음식의 나라

구름위 2013. 5. 1. 17:50

중국은 술의 나라다. 어느 지방을 가든 지역 술이 있고 술과 함께 하는 독특한 음식문화가 있다. 2008년 말 중국 술 시장 규모는 50조 원을 넘어섰다. 음주 인구는 8억4000여만 명에 달한다. 중국 전역에 산재한 주류 공장만도 1만8000여개, 이 중 중대형 기업은 1160개나 된다.

현재 중국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은 술은 맥주다. 중국에는 지역마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맥주가 수십 가지나 된다. 맥주의 소비가 많은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일반 가게에서 팔리는 맥주 값은 750mL 1병당 3~4위안(한화 약 480~640원) 안팎인데, 풍부한 보리 생산과 낮은 주류 소비세 덕분이다.

우리에게 '빼갈'로 잘 알려진 백주(白酒·바이주)의 소비량이 적은 이유는 중국인들이 저도주를 선호하는데다 가격이 싸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 요리집에서 값싼 이과두주(二鍋頭酒)를 들이켰던 추억을 떠올린다면 중국 현실은 의외다. 상점에서 팔리는 가장 값싼 백주는 4~5위안(약 640~800원)으로 맥주보다 비싸다.


맥주는 1990년대 중반부터 생산 및 소비량에 있어 주류시장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 서구 제국주의의 술로 배척받았던 맥주는 오늘날 중국 서민과 젊은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보리 생산국이다. 이는 맥주산업을 발전시킨 밑거름이 됐다. 또한 각지의 지방정부는 재정확보를 위해 낮은 주류세를 책정하고 맥주회사를 경쟁적으로 설립해 운영했다.

실제 중국 맥주회사 가운데 대륙 전체시장을 상대로 판매하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각 지방마다 독자적인 맥주 브랜드가 있어 로컬 시장 소비량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다. 베이징(北京)시는 옌징(燕京), 광둥(廣東)성은 주장(珠江), 산시(陝西)성은 바오지(寶鷄), 충칭(重慶)시는 산청(山城), 윈난(雲南)성은 다리(大理), 신강(新疆)자치구는 우쑤(烏蘇) 등 지역 맥주회사가 현지 시장을 좌우한다.

한국 소비자에게 잘 알져진 칭다오(靑島)맥주도 중국시장 전체로 볼 때 영향력은 크지 않다.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소비되는 맥주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이다. 칭다오는 1903년 독일과 영국 상인이 합작해 설립한 중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의 맥주회사다. 중국 최대의 맥주회사로 세계 6위의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일본·독일·한국 등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중국시장 점유율은 17% 안팎이다.

서민이 즐기는 대중주답게 중국에서 맥주는 경기를 잘 탄다. 2008년 중국 맥주산업의 총생산량은 4103만천L로, 전년에 비해 5.4% 증가하는데 그쳤다. 생산량은 7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했지만,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해졌다. 한풀 꺾인 맥주 소비는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이 컸다. 주 소비층인 서민과 노동자, 농민들이 지출을 줄이면서 맥주시장은 한 자리 성장에 그쳐야만 했다.

정체된 시장 상황은 중국 맥주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현재 중국 내 맥주회사는 251개, 공장은 550여개에 달한다. 중국 맥주기업은 생산량의 절대 다수를 오직 국내 소비에 의존한다. 2008년 중국 1인당 맥주 소비량은 30kg에 불과해, 앞으로의 시장 잠재력은 크다. 문제는 대부분 맥주회사가 지방정부의 보호 아래 성장한 로컬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들 기업들은 주력상품이 중저가라서 영업 이익률이 1%에 불과하다.

 

중국 맥주산업의 어려움은 기업 성적에서 잘 드러난다. 2008년 중국 전체 맥주기업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6.4% 늘어났지만, 이는 일부 기업의 좋은 성적에 따른 착시현상이다. 로컬 맥주회사의 평균 영업 손실률은 31.9%나 달해 강력한 구조조정 압력에 직면해 있다. 중국 3대 맥주회사인 칭다오, 슈에화(雪花), 옌징의 시장 장악력이 갈수록 커져 가고 기업 간의 합종연횡도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맥주시장의 재편과 관련해 주목받는 기업은 단연 슈에화다. 현재 슈에화는 칭다오와 함께 중국 맥주시장의 1,2위를 다투고 있다. 칭다오가 106년의 역사와 국제적 인지도를 갖춘 기업이라면, 슈에화는 젊은 회사다. 슈에화는 1994년 선양(沈陽)이 근거지인 화룬(華潤)과 다국적 기업 SABMiller가 합작해 설립했다. 중국 19개 성시에 60여개의 공장을 운영하여 대륙 전체를 시장으로 삼고 있다.


본래 화룬은 1950년대 말 문을 연 선양맥주에서 시작됐다. 1964년 중국 맥주품평회에서 신상품을 내놓았는데, 거품이 풍부하고 하얀 눈꽃 같아서 ‘슈에화’라는 명칭을 얻게 됐다. SABMiller와의 합작은 화룬에 있어서 환골탈태의 계기가 됐다. 기업 이름을 아예 슈에화로 바꾸고 영문 명칭(SNOW)을 강조하는 브랜드 마케팅을 펼쳤다. 톡 쏘고 시원한 맛에다 외국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슈에화는 중국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철저하게 젊은 소비자층을 노린 마케팅도 대성공이었다. 1978년 이후 태어난 중국 젊은이들은 한 가정 한 자녀 세대로, 소비 성향이 강하고 유행에 민감하다. 슈에화는 서민의 술인 맥주를 생활과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젊은이의 술로 탈바꿈시켰다. 이에 슈에화는 2007년 총생산량이 690만천L를 돌파해 맥주시장 1위에 등극했다. 합작기업이 설립된 지 불과 13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칭다오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중국 주류 소비량의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지난 몇 년간 백주시장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중국 백주산업의 눈부신 성과는 통계에서 잘 나타난다. 2008년 중국 백주시장은 1400억 위안(약 23조8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금액으로 환산할 때 중국 전체 주류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2008년 중국 전체 백주기업의 총생산액은 1460억 위안(약 24조82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9.8%나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180억 위안(약 3조600억원)으로, 36.8%나 급증했다. 영업이익을 1억 위안(약 170억원) 이상 낸 백주회사만 19개에 달해 전년보다 9개나 늘었다.

백주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4월까지 중국 18개 성시에서의 백주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15.8%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양주와 맥주, 포도주가 각각 22.4%, 9.2%, 2%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다. 고삐 풀린 백주 소비를 막고자, 지난 8월 중국 세무당국은 백주의 주류 소비세를 2~15% 올렸다.

쓰촨 기업은 무엇보다 앞선 판매 전략과 다양한 마케팅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백주시장이 커지게 된 데는 고급 백주의 판매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고급 백주시장은 해마다 20% 이상 성장했다. 2010년에는 시장규모가 850억 위안(약 14조45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중산층 증가가 주요인이다. 중국인은 본래 체면과 위신을 중시하는데다, 선물용과 회식용으로 고급 백주를 선호한다.

오늘날 중국 최대 백주회사인 우량예는 시장 변화에 누구보다 먼저 움직였다. 우량예는 1990년대 초부터 고급 브랜드 육성에 매달렸다. 1990년대 중반 당시로서는 고가인 400위안대(약 7만원대) 백주를 시장에 처음 내놓았다. 우량예는 고급 백주를 선보이면서 대대적인 광고와 시음회로 기업의 가치를 한껏 높였다. 마오타이가 우량예를 벤치마킹하여 생산연도를 제품에 표기하는 상품을 뒤늦게 내놓을 정도였다.

 

고급 백주의 새로운 강자 수이징팡은 더욱 독특했다. 수이징팡의 모회사 췐싱(全興)은 1998년 공장 부지에서 발견된 800년 역사의 양조장 유적을 적극 이용했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유적지에서 곡식을 발효키로 한 것이었다. 백주는 쌀, 수수, 옥수수, 밀 등 재료를 먼저 발효시켜야 한다. 췐싱은 유적의 발굴 결과 발표회 때 고급 백주 수이징팡을 선보였다. 역사적 의미를 따지길 좋아하는 중국인의 소비 심리를 노린 마케팅이었다.

중저가 백주시장도 쓰촨 기업이 장악했다. 1990년대 말까지 베이징 중저가 시장은 펀주가 대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징주(京酒)가 펀주를 완전히 대체했다. 징주는 우량예가 베이징을 타깃으로 내놓은 전략 상품이다. 농향(濃香)형 백주로, 향기는 입 안에서 말리고 술 맛이 오래가서 베이징요리와 잘 어울린다. 베이징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는 술 이름도 현지 소비자에게 어필했다.

상하이(上海)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류량허(瀏陽河)도 마찬가지다. 색깔이 맑고 맛이 깨끗해서, 담백한 상하이요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우량예는 류량허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같은 이름의 중국 민요 '류량허'을 적극 이용했다. 이에 우량예는 지난 9월 12일 중국주류유통협회가 발표한 중국 주류기업 순위에서 501.69위안(약 9조304억원)의 브랜드 가치로 1위를 차지했다. 10위 이내 회사 중 백주회사가 8개였는데, 그 중 5개가 쓰촨 기업이었다.

오늘날 중국 술 시장에서 약진하는 기업의 성공 사례는 우리 기업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중국인을 유혹할 수 있는 신상품의 개발이다. 중국인은 역사적 의미가 깊고 브랜드 가치가 높은 술에 지갑을 아낌없이 연다. 젊은이들은 서구적인 이미지의 맥주에, 중장년층은 고급 백주를 선호한다.

둘째, 지역마다 음식문화와 생활풍습이 다른 중국시장을 고려하여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한다. 중국에서 술은 음식 및 문화와 관련이 깊다. 중국을 크게 6~8개로 나눠 각 지방에 맞는 상품을 선별해, 맞춤형 사업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한국음식이 한류 바람을 타면서 중국에서 크게 환영받고 있다. 우리술이 중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날이 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