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군함이 있기까지 변화한 군함의 역사 (고대, 중세편)
좁은 뜻의 군함은 전투함정, 즉 전투를 위해 설계·건조된 특수선박을 가리키며 군장을 갖추고 특별한 선형과 구조를 지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점에서, 각종 선박안전법규에 준거해 건조되는 일반 상선과는 근복적으로 뜻을 달리하고 있죠.
그렇다면 오늘날의 군함이 있기까지 군함은 어떠한 변화를 하였을까요?
군함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상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한 배를 처음으로 정비한 것은 이집트인이지만
큰 규몰로 사용하게 된 것은 페니키아인부터입니다. 그 뒤 그리스·로마가 이어받아 선체도 차츰 대형화 되었습니다.
이 무렵의 군함의 특색은 많은 노를 뱃전에 늘어놓고 노예나 죄인에게 젓게 한 점이지만, 동시에 간단한 돛을 달고 있다가
순풍 때에 사용했습니다. 기원전 12세기 아킬레스·핵토르 등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이 웅비했던 시대만 해도 군함은 없었고,
배는 수송용으로만 사용됐습니다. 군함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7세기에, 적 군함과 충돌하기 위해 선수에 충각을 설치한
전장 30m 정도의 펜터콘터가 당시의 표준 군함이었습니다.
<고대의 군함 트라이림>
이후 기원전 480년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의 살라미스 해전에서는 3단으로 노가 설치된 군함인 트라이림이 1500여척 동원됐습니
다. 트라이림은 길이 40m, 60~80톤 정도의 노선으로 펜터콘터보다 강했습니다. 이후 갤리(Galley)선으로 발전해 범선이 등장
하는 중세까지 지중해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군함이었습니다.
<갤리선>
갤리선은 고유한 장비로는 뱃머리에 청동으로 꾸민 램을 마련하여 적함을 무너뜨리는데 사용하였는데, 선체가 커짐에 따라
노의 수도 차차 많아지고, 노의 열도 2단·3단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5단인 갤리도 나타났고, 전투방식은 램이나
활과 화살·투석기로 적을 공격한 다음에 뱃전을 대고 무장한 병사가 적 속으로 쳐들어가는 격투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한 갤리어스선으로 불렀던 대형 갤리선 및 전대라고 불렀던 소형 갤리선과 함께 3개 유형으로 건조됐으며 노선에도 돛은
설치돼 있었지만 항해의 보조수단이었습니다.
중세(中世)
갤리의 활약무대는 지중해로 한정되었으나 중세가 되자 스칸디나비아를 활동 근거지로 하는 노르만인이 바이킹선이라는
독특한 선형을 고안해 가지고 유럽의 북부 및 서부해안으로 쳐들어갔고, 지중해에도 진출했습니다. 이 바이킹선은 노를
주요한 추진수단으로 삼은 점은 갤리선과 같았으나 소형일망정 단단하고 함양성과 속력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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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이른바 대항해시대로 접어들어 미지의 세계로 가는 항해가 활발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해양주권의
담당자가 에스파냐·네덜란드·영국으로 바뀌고 18세기 말엽부터 산업혁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동안 대포의 발달로 인해 군함의
형식도 뱃전에 가지런히 포문을 늘어놓은 포력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변하였고 마침내 공격력에 치중한 전열함과 운동성능
을 중시한 프리깃이라는 식으로 기능적인 군함의 분화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포력을 중심으로 한 전열함>
16세기 초두에는 영국에서 배수량 1000t의 대형 범주함 그레이트 해리가 출현했고, 17세기에는 소브린오브더시즈가 건조되었는
데, 배수량 1141t, 포 102문, 승무원 600명인 이 함정은 그 후 2세기 이상에 걸쳐 건조된 대형 범주함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1805년 트라팔가르해전에서 영국함대의 기함으로서 참가한 빅토리는 전열함의 대표격으로, 만재(滿載)배수량 4000t, 승무원은
850명에 달했으며, 승무원수가 많은 것은, 돛조종과 포의 조작에 많은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지만 톤수에 비해서도 인원수가
놀랍게 많은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당시 트라팔가르해전을 표한 그림>
포가 강력해지고 사정거리가 길어짐에 따라, 포화를 교환한 뒤 뱃전에 다가가서 적선 안으로 쳐들어가던 종래의 전법은 차츰
사라졌지만, 18세기부터 선박재료의 일부로 쓰이기 시작했던 철이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고, 게다가 강철이 등장해서 추진기관으
로 증기기관이 쓰이게 되자 군함은 대혁신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포도 전장포(前裝砲)에서 후장포로 바뀌었고, 시조포(施條
砲)·작렬탄(炸裂彈)의 발명으로 파괴력도 비약적으로 증대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19세기 중엽에 일어난 크림전쟁과 미국의
남북전쟁은 군함 혁신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증대된 대포의 파괴력에 대항하기 위해 선체에다 방어장갑을 장치하는 일이 검토되
었고, 여기에서 본격적인 장갑함 건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대양항해 철갑함(Ironclad)라 글로와>
1860년 영국에서는 선체도 완전히 철제인 장갑함 워리어호를 만들어 냈는데, 그것은 함내를 다수의 수밀구획(水密區劃)으로
세분함으로써 불침성(不沈性)을 높였고, 추진기도 외륜보다 효율이 높은 스크류를 채용하여 14kn 이상의 속력을 발휘함으로써,
획기적인 성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함수에서 함미까지 뱃전에 즐비하게 포를 늘어놓던 재래식 군장 배치는 개개 포에
대한 방어를 충분히 수행하기에는 어려점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중앙포곽함(中央砲郭艦)으
로, 탑재하는 포를 군함 중앙부에 집중 배치하여 그 주위 포곽에다 중점적으로 두꺼운 장갑을 입히는 것이었습니다.
<1876년, 프랑스가 진수한 르다우타블르. 최초의 강철구조 전함>
영국 해군은 한때 이 중앙포곽함의 정비와 개량에 전력을 기울였으나, 때마침 남북전쟁의 추이가 여기에 새로운 방향을 시사하
면서, 포탑함이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갑철(甲鐵)인 탑 속에다 포를 거두어들이고, 동력을 써서 이를 마음대로 선회시키는 구상
은 영국과 미국에서 이전부터 연구되고 있었는데, 이 전쟁 중 북군은 남군의 중장갑함 메리맥에 대항하기 위하여 27.9㎝의 거포
2문을 증기동력에 의해 돌리는 장갑포탑에 거두어들인 천흘수(淺吃水) 갑철함 모니터를 건조했습니다. 특히 추진장치로서의
증기기관이 차츰 신뢰도를 높여서, 순차적으로 범장설비가 자취를 감추고, 그때까지의 포의 사계(射界)를 제한하고 있었던 복잡
한 범장삭구류(帆裝索具類)가 없어짐에 따라 선회포탑의 유용성은 한층 뚜렷해진 것입니다. 이리하여 포탑식 주포와 중장갑이
주력군함에 불가결한 장비가 되었으며, 또한 여기에 뛰어난 항양성과 속력이 가미되어서 근대적 주력함의 요소를 갖추게 된 것
이 1892년부터 94년에 걸쳐 완성된 영국 전함 로열소브린급 7척입니다.
이상 고대에서부터 중세시대까지 군함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중세를 넘어오면서 군함의 장갑이 한 층 두꺼워졌
으며, 함포를 위주로하는 군함의 형태를 만들어지면서, 이후 대함거포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시간에는 대함
거포주에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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