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려한 외모와 선한 웃음의 남자가 백명이 넘는 투항 포로를 무참히 총살해버리는 희대의 잔인한 학살자라면 믿을 수 있겠나요?
요하임 파이퍼는 1.SS LSSAH 기갑연대 연대장으로 악명높은 '파이퍼 전투단'의 부대장으로도 유명합니다. 젊은 나이에 연대장을 지내고 SS대령으로 군을 퇴역한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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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려한 외모의 요하임 파이퍼
그는 베를린에서 태어나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를 두고 있었는데요. 그 덕분일까요? 1933년 SS에 지원서를 내고 연대의 호위대로 선발됩니다. 특히 하인리히 히믈러의 총애를 받아 부관으로 복무하며 29살의 젊은 나이에 무장친위대 대령으로 승진하고 후에는 1.SS기갑사단의 지휘관으로 임명되며 초고속 출세를 합니다. 그는 유능한 전투 지휘관으로 많은 부하들이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1.SS LSSAH 사단 병력으로 편성된 '파이퍼 전투단'을 이끌면서 동부전선에서 주로 활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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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에서의 요하임 파이퍼
무엇보다 요하임 파이퍼가 학살자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된 건 '말메디 사건' 때문인데요. 말메디는 벨기에의 도시이며 독일의 국경과 가까운 곳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하였던 말메디는 당시 120명의 병사를 태운 미군의 중대의 트럭이 지나가고 있었고 독일군과 마주치자 장비나 병력면에서 상대가 되지 못하기에 이내 항복하고 맙니다.
미군 120 여명이 전원 생포되어 가지고 있는 무기와 시계, 지갑, 담배 등을 빼앗겼는데 독일군은 이들을 일렬로 가까운 목초지로 끌고 가며 그들의 생사에 대해 상의합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고 120 여명을 향한 무차별 사격이 시작 되며 대부분의 미군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게 되는데요. SS의 장교와 병사들은 쓰러진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확인사실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삽시간에 퍼져 말메디 학살로 불리게 되었고 부대들에게 퍼져 SS제복을 입은 독일군은 포로로 잡지않겠다는 맹세를 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 말메디 학살을 다룬 영화 세인트 오브 솔져의 한 장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요하임 파이퍼는 체포되어 말레디 사건의 책임을 묻는 재판이 벌어졌으나 학살 명령을 내린 사실은 없었고 오히려 미군 대대장에 의해 파이퍼가 부상당한 미군을 위해 위생병을 남겨놓았다고 진술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파이퍼와 부하들은 유죄가 선고되었지만 협박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받아내면서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형을 감면받게 되고 파이퍼는 11년 6개월 형을 마치고 1956년에 풀려나게 됩니다. ▲ 말메디 학살 재판 석방 후에는 프랑스에 정착해 번역 일로 생계를 꾸리며 가족들과 살아가지만 어눌한 프랑스어로 금새 신원이 노출되게 되고, 자택에 투척된 화염병에 인해 사망하고 맙니다. 그리고 부검결과 방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다수에 의해 습격받은 사실이 드러나게 되지요. 살해범들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프랑스 극우단체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 요하임 파이퍼가 받은 훈장들 많은 이들을 학살한 요하임 파이퍼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사실 발포 명령을 내렸느냐 그렇지않느냐에 따른 논란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포로의 즉결 처형은 동부전선에서는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을 피로 물들인 이 또한 그 최후가 행복하지만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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