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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녀 사냥

구름위 2012. 9. 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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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현대판 마녀 사냥'이라는 말을 접하곤 한다. 그것은 정당한 절차에 바탕을 두지 않고, 여론이나 그 매개체가 어처구니없는 근거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서 판단을 미리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일종의 여론 재판인 것이다.

그러한 비합리적인 집단 무고를 칭하면서, 우리는 그 앞에 '현대판'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따라서 현대판 이전의 원래 모습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원판을 우리는 흔히 중세에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백년 전쟁(1338-1453) 때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한 쟌 다르크가 영국 군에 포로로 잡힌 후 마녀로 몰려 열 아홉의 나이에 화형을 당한 사건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의 마녀 사냥은 오늘날의 인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즉 마녀 사냥이라기보다는 종교 재판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종교 재판은 오늘날의 사법 재판 이상으로 진지했다. 따라서 중세의 마녀 사냥은 무고한 사람을 모함하여 희생양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마녀는 크리스트교와 무관한 이교(異敎)의 무녀(巫女)였다. 기분 나쁜 얼굴을 가진 존재로 숲에서 살면서 꼭 나쁜 일만을 일삼는 존재는 아니었다. 도시에 살면서 왕족 등을 상대로 풍요한 생활을 하는 주술사가 아니라 시골에 사는 서민의 소망이나 근심을 들어주는 요술사였던 것이다. 주문을 외어 병을 낮게 하고 사람의 운명을 점치고 신통한 약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이럴 때 새의 깃털, 도마뱀 그리고 물고기의 비늘 등이 사용되고, 숲에 사는 요정이 마녀에게 힘을 준다고 여겨졌다.

중세 농민의 다신교적인 물신 숭배와 더불어 민화 세계를 형성한 마녀의 개념은 14세기를 지나면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녀는 악마와 계약을 맺고 인간에게 화를 끼치는 이단자였다. 이제 마녀는 숲에 사는 이상한 모습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 어느 곳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바로 그들이 사냥의 대상이었다. 마녀라는 증거는 1년에 한 차례 밤에 열린다는 '악마의 연회'에 참석했다는 자백이었다. 마술을 부렸다는 밀고는 대개 익명으로 들어갔으며, 엄청난 고문이 가해졌기 때문에 그것을 뒤집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마녀의 몸을 파멸시켜야 악마의 힘을 무력하게 할 수 있다고 믿어 그들의 대부분을 화형에 처했다.

15세기에 확산되기 시작한 마녀 사냥은 16.17세기에 그 절정에 달하고 18세기에 사라지게 되었다. 유럽에서 30-50만 명 정도가 이 사냥으로 희생되어, 그들을 나무로 태우는 연기가 유럽의 하늘을 검게 만들었다고 한다. 15세기를 전후한 시기를 우리는 이른바 르네상스, 즉 인간과 세계가 발견된다는 근대의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마녀 사냥이 중세에 유행했다는 우리의 인식은 잘못 전해진 세계사의 오류인 셈이다.

그러면 마녀 사냥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러한 혼돈과 혼란을 이성의 부재에서 비롯하였다고 생각한다. '집단 히스테리', '미신에 사로잡힌 무지몽매한 민중' 혹은 '문명의 암흑기 중세' 등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설명이었다. 오히려 학문적 옹호를 받으면서 사냥이 행해졌던 것이다. 1484년에 교황 이노센트 8세가 '가장 바람직한 것에 관하여'라는 마녀 박멸 교서를 발표했고, 1487년에는 도미니크회의 수도사인 하인리히 인스티토리스와 야곱 슈프렌거에 의해 {마녀의 철퇴}라는 저작이 나타났다.

특히 {마녀의 철퇴}는 1699년까지 30판이나 인쇄될 정도로 널리 유포되면서, 마녀 재판의 지침으로 긴요하게 활용되었다. 또한 그 책의 내용이 가톨릭 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쾰른대학 교수의 설명과 그것을 교묘히 편집해서 만든 일종의 인가증에 의해 더욱 설득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그러나 대학의 신학부가 학문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인정서는 450년 후에 위조였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사실은 15-17세기는 유럽 세계가 발전하면서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복잡해지고 동시에 교회의 권위가 흔들리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봉건제가 해체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경제 제도와 함께 나타난 새 시대는 거기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전율을 가져다주었다. 따라서 천국과 신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와 대비되는 지옥과 악마는 이전보다 더욱 잔인하고 흉폭스러워야 했던 것이다.

끝으로 왜 마녀만을 문제삼고 남자 마귀는 문제시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성이나 어린이도 고발당하고 고문 끝에 자백을 하여 화형에 처해진 경우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마녀 사냥하면 흔히 여성만을 연상하였다. 그러한 생각은 여성을 조직적으로 멸시한 데서 비롯하였다. '죄는 여자로부터 생긴다', '여자의 팔은 사냥꾼의 올가미와 같다'는 등의 말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여성을 절제할 줄 모르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컨대 마녀 사냥은 근대로 이행하면서 야기된 사회적 흥분의 결과이며, 그것은 유럽 문화에서 강한 성 차별 의식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요트고래사냥
글쓴이 : 베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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