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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man님이 이미 이야기하셨듯, 중세의 유럽인들은 동쪽 어딘가에 그리스도교를 믿는 강력한 군주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유럽인들이 생각한 그 왕국의 위치는 중앙아시아였지만 14세기 이후 이디오피아가 그의 본거지라고 알려지지요. 대항해시대 초기 포르투갈인들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바로 프레스터 존과의 접촉이었습니다. 애초에 포르투갈의 목적 중 가장 주요한 한 가지가 십자군 활동이기도 했고요.
이를 위해서 포르투갈 국왕 조안 2세(João II, 1455~1495. 재위 1471~1495)는 특별히 사자를 파견했습니다.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 해로로 바르톨로뮤 디아스를 파견한 바로 그해(1487), 육지로 두 사람의 탐험가를 파견합니다. 그중 한 사람인 페로 다 코빌랸(Pero da Covilhã, 1460~?)의 임무는 아라비아를 거쳐 인도로 간 다음, 거기서 아프리카로 가는 이슬람 교도들의 향료 무역로를 발견하는 것이었으며 그의 동료인 아폰소 데 파이바(Afonso de Paiva, 1460~1490)는 북동 방면에서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쯤에는 프레스터 존의 영역이 이디오피아가 확실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었으니까요. 두 사람은 아덴까지 동행하고 거기서 헤어졌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의 행로는 확실치 않습니다. 포르투갈 왕국이 탐험의 성과에 대해서 원체 비밀주의적이었던 데다(스페인의 탐험 성과는 그래도 은근히 유출이 많이 되었지만, 포르투갈의 보안은 스페인보다 훨씬 엄중했습니다) 코빌랸 본인부터가 귀국하지 못했거든요. 확실한 것은 코빌랸이 인도 서해안의 캘리컷에 도착했다는 것 뿐입니다. 여기서 동양의 여러 산물이 인도에 실려오고 다시 아프리카로 가는 모습을 확인한 코빌랸은 이번에는 페르시아 만으로 갑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인도양은 남대서양과 연결되어 있다"라는 말을 듣고 인도 항로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지요. 그가 동료인 파이바와 만나기로 한 카이로로 돌아간 것은 헤어진 지 3년만인 1490년이었습니다만, 파이바는 그를 기다리다가 카이로에서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파트너가 죽었다는 것이 임무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았지요. 카이로에는 국왕인 조안 2세의 사자가 새 임무 지시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새 지시는 이런 내용이었지요.
1) 일단 이제까지의 탐험 결과를 보고할 것
2) 본래 임무에 더해 파이바의 임무(프레스터 존을 찾는 것)도 수행할 것
이에 코빌랸은 아프리카로 들어가 이디오피아 궁정에 도착합니다. 당시 이디오피아의 황제였던 콘스탄틴 2세 에스켄데르(Eskender, 알렉산더)는 코빌랸을 크게 환영하고 그에게 토지와 지위를 하사했습니다만 귀국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이 한때 그러했듯, 이디오피아 역시 한번 들어온 외국인은 돌려보내지 않았던 거죠.
이렇게 이디오피아 궁정에 눌러앉게 된 사람은 코빌랸 한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에스켄데르의 궁정에 대해 프란체스코 수리아노가 1482년에 남긴 기록을 보면, 1480년에 이미 10명의 이탈리아인이 "좋은 조언자"로서 궁정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1480년 이후에만 여기에 7명의 유럽인이 더 추가되는데, 이들은 보물과 성스러운 돌을 찾으러 온 자들이었지만 황제는 이들에게도 대우는 잘 해 주었지만 귀국만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코빌랸 역시 남은 생애를 이디오피아에서 황제의 고문관으로서 보내야만 했지요.
하지만 포르투갈 본국에서는 코빌랸이 이렇게 된 것 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내륙으로 들어간 후 그대로 소식이 끊겼기 때문에, 그냥 죽었겠거니 하고 있었지요. 코빌랸의 운명이 알려진 것은 그가 아프리카로 들어간지 무려 30년이 지난 1520년의 일이었습니다-_-;;
이 해에 포르투갈은 이디오피아에 로드리고 데 리마(Rodrigo de Lima)가 인솔하는 사절단을 정식으로 파견하는데, 여기에 소속되어 있던 프란시스코 알바레즈(Francisco Alvarez) 신부가 죽은 사람으로만 알고 있던 코빌랸을 만나 그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기록합니다. 이때에서야 비로소 코빌랸이 어떤 여정을 거쳐 이디오피아에 왔고 30년간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려진 것이죠. 이후 코빌랸이 언제 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526년까지는 분명히 생존하고 있었고 아마 1530년 경에 죽은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중부 포르투갈에 있는 고향에 40년 이상 돌아가지 못하고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생을 마친 코빌랸....그에 대해서 타임라이프 인간세계사 시리즈의 "탐험시대"편에서는 이렇게 평하고 있습니다. "코빌랸은 팽창기운에 있던 모국 포르투갈의 가장 비참하고도 이상한 순직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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