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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희의 전략적 딜레마
삼번 중에 철번 의사를 먼저 표명하여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사람이 상가희 입니다. 호부상서(戶部尙書) 양청표(梁淸標)등은 책임자가 되어 철번 문제를 다루려 상가희의 광동에 와 있던 형편입니다. 그런데 상가희가 본래 철번의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본인이 본래 생각하던, 상지신을 후계자로 하여 번을 넘겨주려던 의도가 실패하여 기분이 좋지 못했는데, 이러한때 양청표가 오자 어서 철번을 하라고 재촉하려 한다고 생각, 양청표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분위기는 몹시 긴장되어졌습니다.
양청표와 더불어 낭중 하가우(何嘉祐)라는 인물도 철번 문제 때문에 광동에 와 있었는데, 사태가 이렇게 되다 보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계속 누워서도 뒤척거리기만 했습니다. 새벽 1시 쯤 될 무렵,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하가우와 양청표를 깨웠고, 둘은 헐레벌떡해서 일어나 주위의 동정을 살폈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침 해가 어느정도 뜰 무렵이 되자, 갑자기 상가희가 아들 상지신과 더불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자신들의 숙소로 오고 있던 것입니다.
상가희는 두 사신 앞에 서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출발은 어렵소. 우리는 광동을 지키기를 원하오. 가서 조정에 그렇게 보고하시오."
여기서 양청표의 대응이 정말 기지가 넘쳤습니다. 양청표가 떠나는 모양새에 따라 상가희는 곧바로 적대적인 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으나, 그는 태연하게 온화한 표정을 짓고 아무렇지 않는듯이 대답했습니다.
"황제의 명을 아직 전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출발을 말하십니까? 내가 경사를 떠나면서 황제를 고별할 때, 황제는 개인적으로 나를 불러 '평남왕의 노고와 공은 매우 커서, 다른 번들과 비교 할수가 없으니, 영원히 남강(南疆)애 주둔하게 하도록 해라' 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황제의 명을 받들어 알리노니, 철수하는 것은 평서 번왕일뿐, 왕은 출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자 상가희는 크게 기뻐해서 가무의 자리를 만들었고, 긴장이 되었던 분위기는 눈 녹듯이 풀려서 서로 노래 부르고 놀면서 장수들이나 사신단이나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가희는 기분이 아주 좋아서 여러 장수들을 데리고 사신에게 사례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상지신만은 머뭇거리면서 앞으로 나가 사신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하질 않았던 것입니다. 일흔살의 백전노장 상가희는 아들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상지신의 손을 깨물어 버리고는, 사신들에게 사죄했습니다.
"소인이 여러 차례 황제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오삼계가 광동의 호응을 기대하며, 상가희에게 보냈던 사람이 도착한것이 바로 그 직후입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을 정한 상가희는 이에 따르기는 커녕 오히려 진충루(盡忠樓)라는 탑을 쌓아 청나라 조정에 대한 자신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후에 경정충이 오삼계에 동조했고, 광서를 막으러 떠났던 손연령도 오삼계에게 항복하여 반란군에 합류했습니다. 그들은 이런식으로 격문을 지었습니다.
"삼번이 모두 변란을 일으켰다!"
상가희는 이런 소문들이 도는것을 보고 매우 불안하게 여겼습니다. 그 전이나 그 후의 행적에서 분명하게 보여지듯 이 노장은 청나라 조정에 대해 반역을 저지르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굳이 그런 모험을 시도해야할 나이도 아니었습니다. 초조해진 그는 직접 북경의 강희에게 상소문을 작성하여 다음과 같이 발언했습니다.
"신이 경정충과 본래 인척지간, 지금 경정충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신이 외람되이 왕직을 차지하고 있고, 나이가 이미 일흔여 살로 비록 어리석다고 하나, 어찌 역적에게 공명과 부귀를 구하겠습니까. 오직 몸과 뜻을 바쳐 영남을 보호함으로서, 신의 한결같은 정성을 보일 것입니다."
기대를 걸고 있던 경정충이 오삼계에 동조하여 크게 불리해진 강희는, 상가희의 이런 상소문을 보자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상가희의 세력은 물론, 상가희 본인도 오삼계와 마찬가지로 경험이 정말 대단한 지휘관이니, 지금처럼 한명의 뛰어난 장수가 아쉬운 형편에서는 매우 필요한 인재입니다.
"여러 대를 걸친 원로 신하로서 그 충절이 매우 지극하다. 마음을 다해 일을 처리하고 기회를 보아 (적을) 무력 토벌하라."
이렇게 상가희를 격려하는 한편, 병부에 상가희와 적극 협조할것을 명령했고, 현지의 모든 독무와 문무관원들은 상가희의 관리 임면권에 복종하고 병마의 배치와 회유 공작에 대해서도 상가희에 대해서 전부 위임했습니다. 1675년, 강희는 상가희를 평남 친왕, 상가희의 아들 상지효를 평남 대장군으로 삼았습니다.
만약 상가희가 사망한다면, 당연히 후계자는 본래대로라면 장남인 상지신이 이어받아야 합니다. 상가희가 나이가 무려 일흔살이니, 상지신도 나이가 사십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가희는 이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상가희의 모사 김광은 상지신이 난폭하며, 아랫 사람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그의 세습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상가희는 상지신 대신 상지효를 후계자로 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강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상지효가 평남 대장군인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상지신은 고작 평구장군(平寇將軍)에 머물었습니다.
상가희는 전심전력으로 강희에게 협력하려 했지만, 상지신은 아버지와 형제에 대한 원망을 속에 가득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리 긴 미래도 아닌 1년 후, 결국 사단이 터져버리고 맙니다. 우선 지금은 서북 전역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이 싸움은 오삼계, 그리고 강희 양자 모두에게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 전장이었습니다.

사천의 순무 나삼, 제독 정교린, 총병관 담홍과 사천 총독 오지무. 이들의 공통점은 오삼계가 거병하자 곧바로 그에게 호응하여 반란을 일으킨 인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오삼계는 운남에서 사천으로 곧바로 진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오삼계는 사천을 거쳐 한중을 넘어, 섬서(산시성)까지 공략하려는 의도를 가졌습니다.
섬서가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지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한중을 넘어 섬서의 장안을 공략하려는 시도는 일전에 촉한의 제갈량도 시도해본 일입니다. 일단 섬서를 완전장악하게 되면, 그 지역이 매우 넒은데다 파촉을 통해 끊임없이 중국 제국의 심장부를 바로 타격해볼 수 있습니다. 오삼계가 형주의 전역에 굳이 필사적으로 매달리지 않은 이유도 이 방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또한 섬서의 중요한 장수들은 대부분이 한족이었는데, 오삼계와는 면식이 있는데다 지속적으로 연결된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오삼계가 섬서에서 반청세력을 결집시키면 북경은 측면에서 바로 공격 당합니다.
강희라고 이러한 점을 모를리 없었습니다. 그는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킨 바로 직후, 즉 1673년 12월에 바로 장수들을 파견해 한중을 거쳐 사천으로 끊임없이 진입하게 했고, 사천을 장악하여 운남과의 연계를 완전 차단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아예 가능성을 모두 제거해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형주의 전역에 늑이금등이 재량권을 가지고 행동한것과 비슷하게, 강희는 이 지방에도 독자적인 재량권을 가진 최고 사령관을 정하여,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게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결정된 인물이 형부 상서 막락(幕洛)이 산서와 섬서의 총독을 지내면서 내정을 잘 하여 군민의 신임을 받았고, 현지 사정에 익숙하다고 여겨 섬서 경략으로 특별 선임하여, 섬서를 중심으로 서북 변방의 군정을 모두 지휘하게 했습니다. 그는 이 지역에서 모든 총독과 순무를 초월하는 특별 권력자가 되어었던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에 한명이 섬서 제독 왕보신입니다. 그는 본래 이(李) 씨를 쓰다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의 양아들로 들어가 왕씨가 되었고, 한때 이자성 반란군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단히 용맹하고 무예가 놀라운 수준이라, 황표마(黃驃馬)를 타고 청군의 진영을 뒤흔들면 병사들은 "황표자가 온다" 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훗날 청군에 항복하자, 그는 홍승주의 수하가 되어 강남의 평정에 공헌했고, 이 과정에서 대단히 공손한 태도 ─ 심지어 산길을 가는 도중엔 직접 홍승주를 업고 간적도 있습니다 ─ 로 그의 신임을 얻었고, 홍승주의 추천으로 오삼계의 번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다 보니 오삼계도 왕보신을 매우 아꼈습니다. 그는 좋은 옷이나 맛있는 음식 등이 생기면 항상 먼저 왕보신에게 내려주었습니다.
왕보신의 개성이나 의로움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그는 오삼계의 조카 오응린, 마일곤 같은 사람들과 술을 마쳤는데, 왕보신의 밥그릇에 죽은 파리가 들어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했지만, 왕보신은 본래 이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마일곤이 성격이 좋지 않아 밥을 만든 주방장을 때려 죽일까봐 걱정하여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제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돌화살촉도 감당할 수 있으니, 음식은 먹기만 하면 만족한다. 물론 훌륭한 음식을 먹고자 하는 한가로운 마음도 없지 않으나 바쁠 때에는 죽은 파리를 먹어도 놀랄 것이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왕보신의 말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농담하는 소리라 생각해 이렇게 공언했습니다.
"만약 스스로 죽은 파리를 먹는다면, 말안장을 당신에게 주겠소."
사태가 이렇게 되자 어쩔 수없이 왕보신은 죽은 파리를 먹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술에 취한 오응린이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입니다.
"왕 형이 이같이 말안장을 좋아하다니! 형은 오늘 죽은 파리 먹기 시합을 하여 결국 파리를 먹었는데, 만일 형과 똥을 먹는 시합을 하면, 형은 그때도 똥을 먹을 것인가?"
왕보신은 대노하여 오응린의 코를 붙잡고 그를 후려갈겼고,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오응린! 네가 오왕의 친조카라는 이유로 나를 모욕하는구나. 다른 사람은 너를 두려워 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어떤 왕자나 왕손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왕자나 왕손의 골수를 파먹을 수도, 그 심장과 간을 파 먹을 수도, 그 눈도 파낼 수 있다."
그러면서 기합성을 지르며 주먹으로 탁자를 내지르니, 식탁 위에 있는 열두 개의 그릇과 술잔이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식탁의 네 다리도 동시에 부수어져 버렸습니다. 장수들은 기겁하여 아무 말도 못했고 오응린은 깜짝 놀라 줄행랑을 쳐 버렸습니다. 다음 날 ㅊ피차간에 취기가 가시고 왕보신도 진정하자, 사람들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오응린의 말은 실제로 마음에 없는 말이었다. 당시의 욕설이 너무 지나쳤던것은 맞으나, 피차 서로 화를 낸 것이므로 당신이 오응린에게 가서 사과하는게 낫다."
왕보신도 그렇게 생각해 오응린에게 사과하려고 나왔는데, 마침 왕보신에게 사과하려 온 오응린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고, 그를 보고는 급히 말에서 내려 친숙한 태도로 손을 잡고 방으로 모셔 왔습니다. 그리고 즉각 엎드려 절하고는 사죄했습니다.
"왕 형. 어제는 술이 만취되어 형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니,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왕보신 역시 맞절한 뒤 두 손으로 그를 붙잡고 일으키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술에 취해서 욕설을 했는데, 오 형은 어째서 나에게 죄를 묻지 않고 자책하시오."
그러고는 두 명은 여러 장수들을 다시 불러 연회를 계속했고, 별 탈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오삼계에게 이 일을 과장되게 전했고, 왕손과 왕자를 욕한 비난의 말을 일부러 강조했습니다. 오삼계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왕보신이 오응린과 술을 먹은 후 다투었다고 들었다. 젊은이들이 술을 먹으면서 서로 욕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그러나 노부(老夫)를 끌어들여서는 안되는 일이다. 하물며 어떻게 왕자와 왕손의 심장과 골수를 먹겠다는 말을 하는가. 옆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조롱하여 나에게 말했다. 오삼계, 이 늙은이는 평소에 왕보신이를 보석같이 아겼는데 지금 그는 이 오삼계의 골수를 먹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이후 다시는 사람을 오싹하게 하는 말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왕보신은 그 말을 전해 듣자 자신도 나름대로 기분이 나빴습니다.
"나나 오삼계나, 결국 모두 조정의 신하이다. 왜 내가 오삼계의 가인(家人)으로 그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 오삼계가 자리 조카를 편애하고, 결국 나를 외인(外人)으로 치급하고자 한다면, 나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내 어찌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심복을 북경에 보내 관직의 이동을 꾸몄고, 마침 평량(平涼) 제독의 자리가 비어 있어, 강희는 이곳에 왕보신을 이동시켰습니다. 오삼계는 왕보신이 운남을 떠난다는 말을 듣자 그때서야 인물을 잃은것에 탄식을 그치지 않으면서 융숭히 대접하고 손을 잡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평량에 가도 나를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 집이 가세가 빈한한데도 먹여야 할 식구는 많지 않느냐. 만리 길을 가는데 어찌 경제적인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 안에 2만 냥의 은자가 있다. 노자에 보태어 쓰도록 해라."
왕보신은 매우 감격했습니다. 둘은 이렇게 매우 사이가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왕보신에 개인적인 매력을 느낀것은 오삼계 뿐만이 아닙니다. 강희 역시 그랬습니다. 그는 왕보신의 재주를 뛰어나다고 생각해 여러 차례 그와 만났고, 한번은 아주 간절하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너를 조정에 남겨 두고 아침 저녁으로 보고 싶다. 하지만 평량은 중요한 지역이므로 네가 아니면 안 된다."
그리고 왕보신이 떠나려고 하자, 직접 찾아와 또다시 만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출발 시간이 다가왔으나, 내 너를 보내는것이 무척 섭섭하다. 너는 내 옆에서 등불 놀이를 구경한 뒤 출발하도록 해라."
그리고는 진짜로 떠날 시간이 와서 왕보신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자, 강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어좌 앞에 있는 화려한 총이 보여 왕보신에게 친히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총은 선제께서 나에게 준 것이다. 나는 매번 밖으로 나갈 때, 반드시 이 총을 말 앞에 두어 선제를 잊지 않음을 표시한다. 너는 선제의 신하이고, 나는 선제의 친자식이다. 다른 것보다 이 총을 너에게 줄 터이니 너는 평량을 방어하면서 이 총을 보며 나를 보듯이 하라. 나도 남아 있는 이 총을 보면서 너를 생각할 것이다."
왕보신은 강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고 벌벌 떨며 엎드려서 감격해 대답했습니다.
"성은히 망극하옵니다. 신이 온몸을 다 바쳐도 이 은혜는 갚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들이 서로 있는데, 오삼계나 강희나 서북 지역을 중시하는것은 똑같고, 오삼계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습니다. 서북 지대에서 병권을 행사하는 왕보신, 그리고 장용 등은 모두 오삼계와 사이가 좋고, 이 두명을 부추겨 군사를 일으키게 하고 자신이 호남에서 움직이고, 동시에 동남 연해에서 경정충이 협조 한다면, 청나라를 무너뜨리기가 아주 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오삼계는 실제로 왕보신에게 사람을 보내 호응을 권하면서, 또 왕보신에게 장용을 설득해 둘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권했습니다. 왕보신은 오삼계의 서신을 읽었는데, 확실히 오삼계가 자신을 굉장히 잘 대해주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강희의 은혜에 비하면 못미치는 수준이라고 여겨 자신에게 서신을 전달한 인물을 체포하고, 오삼계가 자신에게 보낸 서신을 강희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강희는 매우 기뻐하면서 그를 표창하여 신뢰를 보였습니다.
그 후 사천 총독 오지무가 항복하는 일이 있었고, 강희는 막락에게 사천 정벌을 하라고 명령하면서, 왕보신에게도 이에 협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하여 왕보신은 막락과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막락은 왕보신의 뜻을 완전히 무시했고, 도리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뜻이 괴이하다."
이렇게 되자 자연히 왕보신의 감정이 안 좋아지고, 강희에게 상소하여 본인은 일전에 홍승주를 따라 평정에 나선 바가 있으니, 서북 전선보단 호남 전선으로 파견되어 싸우는 편이 더 나을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강희는 서북 전선을 매우 중요시하여 "사천에서도 공을 세울 수 있다." 라고 그를 설득했고, 왕보신은 어쩔 수 없이 막락을 따라 파견되었으나 마음 속은 불만으로 가득했습니다.
관군과 오군은 사천성 북부의 낭중(廊中) 지역인, 보녕에서 대치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막락은 오삼계 부대와 교전을 벌여 한번 큰 승리를 거두는 등 상황은 좋게 되어가는듯 했으나, 대치가 길어지면서 군량이 바닥나고 있었습니다. 강희는 이 싸움이 장기전으로 갈것이라고 미리 예상을 하고 군량 운반이 수월하도록 조치를 취했으나, 서북 지역이 워낙 척박하고 백성들이 가난한데다, 사천이 워낙 험해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오군 소속의 정교린 부대가 가릉강(嘉陵江)의 운반 선박을 모조리 약탈해버리고, 깎아 지른 듯한 잔도(棧道)는 오군이 선수를 쳐 무너뜨려 버리자 병사들은 2개월 동안 아무런 보급도 받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문에 병사 4,000명이 뿔뿔히 흩어지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그린듯한 사천의 잔도. 등애가 과거 촉한을 멸망시킬때도 잔도를 사용했었는데, 이 잔도들은 그래도 현대에 보수를 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그러할때, 왕보신은 막락에게 병력 증강을 요청해서 막락은 기병 2,000명을 추가로 파견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 왕보신이 본래 거느리던 좋은 말들은 모두 다른곳으로 보내고, 피로에 지친 말들만 계속 보내자 왕보신은 더욱 화가 폭발해버렸습니다.
"막락은 나의 좋은 말을 보내고, 피로한 말을 나에게 주어 사지로 몰아 가려 한다!"
오군은 관군이 이렇게 꼼짝도 못할때 양평(陽平)을 노리는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다급해진 강희는 우선 막락에게 보녕에서 철수하라고 명령하고, 막락의 새로 모집한 녹기병(綠旗兵)이 오삼계 군단을 막긴 벅찰것이라고 여겨 대장군 패륵 동액을 보내 신속히 구원하도록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동액의 행동이 늦었고, 변란이 일어났습니다.
12월 4일, 막락의 군영과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던 왕보신은 "말은 살찌고 식량은 부족하다." 라는 소문을 내며 암암리에 날랜 병사를 각처의 요지에 주둔시키고, 순식간에 막락의 군영으로 진격했습니다. 워낙 갑작스러워 막락은 적절히 대응조차 못했고, 용맹한 친위 만주병이 일선에 나서 간신히 반란군을 물리치려는 찰나, 용맹무쌍한 왕보신이 일선에 나서 직접 병사를 지휘자하자 다시 반란군이 화포와 화살을 퍼부어대었습니다. 막락은 유탄에 맞아 즉사했습니다. 진영이 모두 무너지고, 순식간에 괴멸 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당시 왕보신의 세력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막락의 2,000명의 병사가 왕보신에게 투항했다가, 반란군에 동조하길 원하지 않아 뿔뿔히 도망치고, 따르던 군대들도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왕보신이 이런 상황에서 북상하다가 드디어 당도한 대장군 동액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동액은 왕보신을 매우 두려워 하여 군대를 이끌고도 감히 토벌할 생각을 내지 못했습니다. 책에 따라서는 아예 이 시점에서 동액이 왕보신에 항복하여 오삼계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동액은 한중에 도망치거나, 혹은 들어섰고, 그리하여 순식간에 한중 일대까지 반란군의 영향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동액은 왕보신의 반란에 대해 조정에 보고를 했지만, 워낙 짤막하여 상세한 내용을 알기가 힘들었습니다. 막락 휘하의 군관이 잔도를 타고 도망쳐 당국에 사태를 보고 했고, 섬서 총독 합점이 상소를 통해 조정에 보고하여 강희는 드디어 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보신의 배반에 강희는 진심으로 놀라워 했고,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여겼습니다. 사천에서 운남으로 진격하려던 강희의 계획은 시작도 제대로 하기전에 망가져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삼계와 왕보신이 협력하면 서북 지방의 전선에 엄청난 영향력을 줄테고, 나중에는 북경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태속에, 강희제는 심지어 본인이 직접 형주로 친정하여 오삼계와 결전을 벌이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할 정도입니다.
"지금 왕보신이 병란을 일으켜 민심이 진동하고, 어리서은 무리들이 기회를 틈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역시 아직 진정되지 않았다. 이전에 장군 및 대신들이 지휘를 준수하지 않고, 서로 관망하여 진격하지 않아 역적이 대강의 남쪽에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적이 아직 토벌되지 않았는데 또 이러한 변란이 발생했다. 짐은 친히 형주에 이르러, 기회를 살펴 군대를 파견하고 적의 우두머리 오삼계를 토벌하고자 한다. 오삼계가 토벌되어야만, 흩어져 있는 도적의 무리들이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백성들이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
친정 자체는 대학사와 내대신들이 모두 붙잡고 말린 통에 저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대응법을 생각해 내야만 했습니다. 반란의 물결이 전중국을 몰아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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