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목욕탕 향락문화는 12세기부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다 14세기 초부터는 결혼식의 피로연까지 목욕탕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목욕탕이 인기를 끌자 치료 목욕사들은 여자들을 고용해 매춘을 시작했다.
매춘녀가 있는 목욕탕에는 귀족과 평민의 구별없이 벌거벗은 몸으로 탕에 들어가
남녀가 서로 몸을 만질 수 있는 거리에서 술과 음식과 향연을 즐겼다.
당시에 이런 남녀혼탕 문화가 도처에 우후죽순처럼 번졌지만 중세 교회는 속수무책이었다.
가톨릭이 여러 번 풍기문란을 경고했건만, 목욕탕은 더욱 더 음탕한 장소로 변모해 갔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수도자들까지도 목욕탕에서 그들의 본분을 잊고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또 하나의 중세 매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은 14세기 말에 여인들을 고용해 만든 <여성들의 집>이다.
이들은 대개 하층민 출신으로 매춘을 하다 보니 쉽게 성병에 걸릴 뿐더러 사회적인 대접 또한 형편없었다.
바깥 외출시에는 의무적으로 그들이 매춘녀라는 표시를 빨강, 노랑, 녹색 등의 색깔로 표시하고 다녔다.
도시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빈에는 노란 숄을 어깨에, 뮌헨 근교에서는 녹색 숄을 걸쳐야 했고,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노란색이 달린 옷을 입어야 했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녀들의 수입 중 상당 부분이 교회의 미사예물로 바쳐졌다는 것이다.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치지 않으면 그녀들의 영혼이 연옥에서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그녀들이 드물게 잘 되는 경우는 수녀원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는 귀족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첩 제도는 중세 십자군 원정과 연관성이 있다.
중세 기독교 십자군이 원정을 떠날 때 기독교인 여인들을 함께 데리고 다녔다.
이유는 십자군들이 이방인 여인들과 교통한다는 것은 죄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이때 동반된 여인들의 역할은 다친 군인의 치료는 물론 매춘으로 십자군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풍습이 나중에는 첩의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아무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여성의 집이 16세기 말부터는 법적인 제재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목욕탕 역시 당시 유행하던 매독, 페스트 등의 온상지가 되자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18세기부터는 목욕 대신 향수나 파우더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세 때에는 한 달에 한 번 옷 갈아 입는 것이 다반사였으므로
귀족들이 나쁜 냄새를 향수로 대치하다 보니 향수문화가 발달했다.
출처 : 양태자의 유럽야화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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