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옛 우리 이야기

[스크랩] 대한제국의 의친왕을 아십니까?

구름위 2012. 10. 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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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이강은 고종황제와 궁인 장씨 사이에서 고종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위로 형들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사실상 고종의

둘째 아들이었다

 

을미 사변때 명성왕후가 처참히 시해되자

미국인 선교사로 조선에 와 있던 언더우드 집으로 피신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로부터 2년후

고종은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이강을 미국으로 갈수 있게 부탁했고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 때 일기에 보면 독립운동가 였던 김규식 서재필의 학비를 지원해줬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독립운동가들과 접촉이 시작이 아니였을까 ...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때

갑작스러운 고종의 죽음

그 이후 고종의 독살설이 3.1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이강은 독립운동가들과 긴말하게 연락을 주고 받으며 큰 역할

을 했었고 3.1운동 후 해외로 망명하겠다는 뜻을 굳혀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에서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 단체인 대동단 단원들과 함꼐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했다

 

망명할 당시 고종의 상해 덕화은행 비밀구좌 통장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만약 망명이 성공했다면 막대한 독립운동자금과 함께
직계황족이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그 상징적 의미와 파급력은 대단했을 텐데 ...

 

아쉽게도 중국 안동행 기차에서 일제 경찰이 눈치 채고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망명이 좌절된 뒤, 의친왕은 임시정부에 편지를 보냈다

 

'나는 차라리 자유 한국의 한 백성이 될지언정
일본 정부의 한 친왕이 되기를 원치 않다는 것을 우리 한인들에게 표시하고,
아울러 한국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에 몸바치기를 원하다"

 

 

망명이 좌절된뒤,
일본의 감시는 더욱 심해져서 일제에 의해 강제은퇴를 당하고
일본경찰의  감시망 속에서 연금생활을 강요당하다 쓸쓸히 광복을 맞이했다고 한다

 

6.25가 발발하고 인민군 차하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이강은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돌봐주는이가 없어
먹는 끼니보다 굶은 끼니가 많아 결국 그때 얻은 영양실조로
1955년 8월16일 안동국 병궁에서 승하했다고 한다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이자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인 의친왕 이강 3.1운동을 주도했고,
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했다는 기록 이외에도 후손들의 증언에 따르면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그의 노력에 비해서 제대로 알져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나라의 비록 망국의 왕자이지만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몸을 바쳤지만 

돌봐주는 이가 없어 영양실조로 돌아가셨다고하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첨부파일 슬픔.swf

 

 

 

사진출처 - 네이버

 

글 - 본인이 직접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등 많은 잊혀진 조선의 왕족들이 많습니다..

조선을 위해 망국의 황족이지만

조선을 그리워했고 또 많은 노력을 해온 잊혀진 분들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출처 : [DOTAX]카오스#연구&토론#
글쓴이 : 고양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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