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역사속 신무기<83>리볼데퀸(Ribauldequin

구름위 2017. 1. 11. 19:37

역사속 신무기<83>리볼데퀸(Ribauldequin)

시대 흐름 극복못한 ‘비운의 무기’
2008. 09. 08   00:00 입력 | 2013. 01. 05   04:04 수정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 혹은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에 반대되는 표현으로 ‘비운의 천재’라는 말도 있다.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더라도 시대 상황에 따라 영웅이 될 수도 있고, 범죄자 혹은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무기체계 분야에서도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탓에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 하고 결국 무기체계로서의 완성도나 효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록에 따라 리바드퀸(Ribaudequin) 또는 리바울드(Ribauld) 등의 이름으로 불린 리볼데퀸(Ribauldequin) 역시 이러한 사례에 포함시킬 수 있는 비운의 무기다.리볼데퀸(사진)은 길이 200∼250cm, 무게 150∼250kg 내외로 14∼16세기까지 서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다연발포다. 여러 개의 금속관을 수평으로 묶어 마차 위에 장착해 놓은 이 대포는 동시에 여러 발의 포탄을 쏠 수 있는 원시적 원리의 분사식 대포 일종이다.

공성전이나 야전에서 몰려 있는 적을 일격에 제압할 수 있도록 고정 배치하거나, 바퀴가 달린 포가(砲架)에 올려 보병을 지원하고 적 포병을 견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여러 개의 포신을 하나로 묶어 놓은 모습이 마치 중세 성당의 오르간 파이프와 흡사해 ‘오르간 대포’(organ gun)라고도 불렀다.

일단 장전한 이후 사수가 점화 심지에 불을 붙이면 거의 동시에 화력을 적에게 쏟아 부을 수 있다는 점이 이 대포의 최대 매력이다. 그러나 발사 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연기와 소음·반동 때문에 대구경 대포로는 만들 수 없다는 제한이 있었고, 거의 대부분은 유탄이나 총탄 수준의 소구경 포탄과 총탄을 발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리볼데퀸이 처음 등장한 시점에서는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무기로 평가받았다.문헌에 리볼데퀸의 존재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339년이며 프랑스와 100년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대포 예찬론자였던 에드워드 3세(재위 1327∼1377)에 의해 널리 보급됐다.

에드워드 3세는 1345년 100문의 리볼데퀸을 만들도록 지시했고, 왕명에 의해 대량 생산된 최초의 대포인 리볼데퀸은 1346년 칼레 포위 공격에서 처음 실전에 사용됐다. 화력을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다른 대포들보다 월등히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 리볼데퀸은 영국을 중심으로 서유럽 각국에서 제식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382년 기준으로 영국은 200문 이상의 리볼데퀸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부르고뉴 공국의 경우 1411년까지 2000문 이상의 리볼데퀸을 보유하고 막강한 포병화력을 자랑했다.14세기 중반 리볼데퀸을 필두로 다양한 대포가 정식으로 군에서 전쟁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볼데퀸을 비롯한 초기 화약무기들은 중세 유럽에서 벌어진 각종 전쟁 수행에 진정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간 탓이다. 하지만 리볼데퀸이 후대 무기 개발에 남긴 영향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속 신무기<84>전열함<The Ship of the line>

‘전투대열’ 형성할 수 있는 대형범선
2008. 09. 22   00:00 입력 | 2013. 01. 05   04:06 수정

최근 발표된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이순신(1545. 4. 28∼1598. 12. 16) 제독의 거북선을 우리 민족 최고, 최강의 군함(軍艦)으로 주저 없이 선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거북선이 있다면 영국에는 빅토리(HMS Victory)가 있다. 1765년 진수된 빅토리는 영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군함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열함(The Ship of the line)이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전열함이기도 한 빅토리는 100문의 함포를 갖추고 있으며 1805년 벌어진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을 승리로 이끈 넬슨 제독의 기함으로도 유명하다. 17세기 최초로 등장한 전열함은 ‘전투 대열을 형성할 수 있는 대형 범선으로 적 대형함의 포격에도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건조되고 최소 2층 이상의 포 갑판에 함포를 탑재해 적절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전투 범선’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전열함은 크기와 무장에서 당대 최강의 전함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유사시 상선을 군함으로 전환해 해전에 참가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1650년 등장한 초기 전열함은 30문 이상의 함포를 보유했으나 이 기준은 점차 확장돼 1700년에는 50문, 1750년에는 64문, 1840년에는 80문으로 함포의 수가 계속 늘어났다. 함포의 수가 계속 늘어나는 만큼 함선의 크기 역시 계속 증가했다.

1650년께 3층 전열함은 1500톤 규모였으나 1750년에는 2000톤, 1800년에는 평균 2500톤을 가볍게 넘길 정도로 대형화됐다. 물론 1급 전열함의 경우 당대 최강의 전함으로 평가받기에 손색이 없었지만 막대한 건조비용과 운용비용으로 소수만 건조됐으며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두 척 이상의 1급 전열함을 보유하지 못했다.

심지어 최고 전성기의 대영제국조차도 12척 이상의 전열함을 보유하지 못했고 1805년 벌어진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동원된 60척의 전열함 중 1급 전열함은 양측 각각 4척에 불과했다.각국은 자국 실정에 맞춰 전열함을 건조했는데 깊은 수심의 항구가 거의 없었던 네덜란드는 소수의 3층 전열함을 건조했으며, 스페인은 당대 다른 전열함과 비교해 크고 견고한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영국 해군의 전열함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실제로 영국의 전열함은 견고한 반면 설계 및 성능은 프랑스가 건조한 전열함이 더 우수했다. 미국의 경우 당시 기준에 비해 크고 많은 함포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전열함은 이전의 갈레온(Galleon)을 단순히 유선화하고 상부 구조물을 축소한 대신 후갑판을 약간 확장하고 작은 선미루갑판을 만든 3층 갑판을 지닌 범선이다.

그러나 전열함의 등장은 해상무역 및 제해권 장악을 위한 유럽 각국의 군사적 충돌을 더욱 촉진했을 뿐만 아니라 1653년부터 1815년까지 벌어진 모든 해전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증기선·철선·장갑함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열함은 당대 최강의 군함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범선시대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근대 전함(戰艦)의 조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