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식 소총과 99식 소총
- 창군초 국군 최초 보유한 소총
- 2004. 10. 19 00:00 입력 | 2013. 01. 05 00:48 수정
하지만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주한 미 육군 제24군단은 38식 소총·99식 소총 등 일부 일본의 소화기(小火器)류를 남겨 두었다. 이들 일본군 소총은 그 후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등에서 유용하게 활용됐으며 그중 일부는 1948년 국군 정식 발족 후에도 사용하게 된다. 국군이 보유한 최초의 소총은 일본제 38식·99식 소총이었던 것이다.
38식·99식 소총은 어떤 총일까. 38식 소총은 일본의 연호로 메이지(明治) 38년(1905)에 개발됐다는 의미에서 38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스페인식 마우저 소총을 참조해 개발된 38식 소총은 1940년까지 35년 동안 일본의 주력 소총으로 이용됐다.
1907~1909년 우리나라의 항일 의병을 강제 진압할 때 일본군이 사용한 소총도 바로 이 38식 소총이었다. 일본군은 1919년 청산리 전투를 비롯, 우리 독립군과의 전투에서 거의 예외 없이 이 소총을 사용했다. 우리나라와는 악연이 많은 총이라고 할 수 있다.
38식 소총은 구경이 6.5mm로 당시 기준으로는 비교적 구경이 작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K1 소총이나 미국의 M16 소총 등 세계 각국은 구경 5.56mm 소총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1930~40년대만 해도 구경 7mm 이상의 소총이 주류였다.
당시 독일군의 제식 소총인 Kar 98K가 구경 7.92mm, 소련군의 모신나강 소총이 구경 7.62mm, 미군의 M1 게런드 소총이 구경 7.62mm였다. 구경이 작으면 화약량이 적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반동도 작아진다. 서양인에 비해 체격이 왜소하고 체력이 약한 일본인의 체형에 맞게 일부러 38식 소총의 구경을 작게 만든 것이다.
38식 소총은 구경이 작은 대신 길이는 127.5cm로 아주 길다. 미국 M1 소총의 길이가 110.7cm인 것에 비하면 무려 17cm나 긴 것이다. 38식 소총의 길이가 이토록 긴 것은 일본군이 총검술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체형이 작은 일본인이 육박전을 펼칠 때 불리하지 않도록 총을 길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평균 신장이 160cm 내외에 불과해 총검술 외의 일반적 사용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1937년 7월7일 일본은 본격적인 중국 침략을 시작했다. 일본은 전쟁을 치르면서 당시 중국군의 주력 소총인 구경 7.98mm의 한양(漢陽) 88식 소총과 중정(中正)식 소총보다 38식 소총의 살상력이 약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일본 육군 병기본부(兵器本部)가 개발한 것이 99식 소총이다. 일본의 이 신형 소총은 나고야(名古屋) 조병창(造兵廠)에서 1939년(일본 기원 2599년)부터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99식 소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99식 소총은 구경이 7.7mm으로 커졌지만 38식 소총에 비해 길이는 16cm 짧아지고 무게도 220g 가벼워져 일본 병사들로부터 호평받았다. 99식 소총은 대량 생산돼 기존에 보급된 38식 소총을 대체했으며 1941년 12월8일 시작된 태평양 전쟁 기간 일본 육군의 주력 소총도 바로 99식 소총이었다.
38식 소총과 마찬가지로 99식 소총도 반자동 사격이 불가능한 것은 중요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M1 소총은 여덟 발을 장전, 반자동으로 한 발씩 여덟 번을 연속 발사할 수 있으나 일본의 99식 소총은 다섯 발을 장전, 한 발 사격 후 수동으로 탄피를 제거해야 다음 사격을 할 수 있었다.
1948년 국방경비대 시절 주력 무기는 바로 이 99식 소총이었으며 부분적으로 38식 소총도 사용됐다. 제주4·3사건 당시 출동한 국방경비대가 휴대한 소총도 99식 소총이었다. 북한군도 낙동강 전투 등 6·25전쟁 초기에는 적지 않은 현역 부대가 99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1948년 8월15일 국군으로 정식 발족된 이후 10월 이후부터 점차적으로 M1 소총 보급이 시작됐다. 하지만 M1 소총의 소요량이 많이 부족했으므로 1949년 해병대가 창설될 당시에도 주력 소총은 99식 소총이었다. 우리 군에서 38식 소총·99식 소총 같은 구일본군 무기류가 사라진 것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미군의 무기 대량 지원이 이뤄진 다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