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뱅이라고 하여, 누구나 '거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지가 되려면, 먼저 거지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가업을 모두 잃고, 친척친구가 받아들이지 않아 살 곳이 없어 먹고살 방법이 없고; 둘째, 늙어서 부양할 사람이 없거나, 어려서 도와줄 사람이 없거나, 병이 들어도 치료할 방법이 없거나, 장애자가 되어 일할 수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들처럼 돌아갈 곳이 없는 노약병잔의 사람들만이 서류소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비로소 단두의 휘하에 들어갈 수 있으며, 바깥에 나가서 구걸을 하거나, 서류소에 남아서 일을 하거나, 더 이상은 걱정거리가 없는 생활을 살아갈 수 있다.
거지가 되면, 옷이 형편없이 낡은 것을 입어야 하고, 항상 배고파야 하며, 겨울에는 죽기 일보직전에서 몸부림치고, 겨우겨우 연명한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사실, 얼굴만 좀 두껍게 하여, 개방에만 들어가서, 거지의 행렬에 끼게 되면, 그들의 생활은 여유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빈곤한 농가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을 누린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편안한 것은 일하지 않고도 먹는다는 것이다. 당시에 '거지생활 삼년이면 관직을 준대도 바꾸지 않는다'는 속담이 나온 것이 이해가 된다.
당시의 강남지역은 대갓집의 혼상희경, 각양각색의 묘회와 정월신춘에 사람들이 보시를 베푸는 외에, 매월 초이틀, 십육일의 이틀간은 불문율로 거지들에게 베푸는 날이다. 이 두 날이 되면, 여유있는 집에서는 모두 한, 두되의 쌀을 문앞에 놓아두고, 거지가 오면 한줌씩 집어준다. 이렇게 하여 덕과 복을 쌓는 것이다. 노래를 불러주거나, 묘기를 보여주거나 아이를 안고오는 거지에게는 한줌씩 더 집어준다. 이렇게 한두 집에서 한두 줌씩 집어준 것만 하더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집집마다 찾아다니기만 하면 적지 않게 모을 수가 있다. 하루동안 모으면 그 양이 만만치가 않다. 어떤 거지는 이 한줌의 쌀을 더 받기 위하여, 매번 고아원으로 가서 버린 아이를 안고 찾아다닌다. 열한두살이 되면 다시 대갓집에 종으로 팔아버리거나 기원에 기녀로 팔아버린다. 그렇게 사면 수십전을 벌어서 이불과 요를 장만할 수 있다.
개방의 규칙에 따르면, 거지들의 모든 수입은 반드시 먼저 단두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 후에 일정힌 비율로 '공고(公庫, 공동창고)'에 집어넣는다. 속이고 내지 않을 담량이 있는자에게 내리는 처분은 가혹하다. 죽지는 않을지라도 대체로 곤장을 맞고, 삼도육개동과 같은 혹형을 피할 수가 없다. 거지들은 '방규가법'을 무서워해서 감히 이를 몸소 시험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물며 비바람불고 눈이 내려 바깥을 나갈 수 없거나 병들어 쓰러지게 되면 어쨌든 단두가 주는 죽에 의지해서 살아야 하지 않은가.
서류소안의 '프로 거지'는 다시 바깥에 나가서 구걸하는 거지와 집안일을 하는 거지의 두 종류로 나뉜다. 절대다수의 거지는, 큰 비나 큰 눈이 내려서 집밖나들이를 할 수 없는 경우만 아니면, 매일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온다. 얻은 동전, 쌀은 반드시 공동창고에 내놓아야 하는 외에 가지고 돌아온 남은 밥과 요리도 내놓거나 돼지를 먹이는데 쓴다. 비교적 젊고 능력있는 여자거지는 단두가 뽑아서, 전문적으로 닭오리, 양돼지를 기르도록 시킨다. 그리고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거지들에게 죽을 끓여주도록 하는 임무를 준다. 그리고 아주 게으른 여자거지는 억지로 일을 시키지 않고, 쌀죽을 먹이고, 낮에는 낮잠을 자게 하고 밤이 되면 개기(?妓)로 삼는다. 거지들이 조금씩 모은 돈으는 그대로 단두의 금고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바깥에 나가서 구걸하는 거지는 비록 같은 거지이지만, 각자 구걸의 능력에 따라 상하의 구분도 있고, 수입에서도 많고 적고의 구별이 있다.
거지세계에서, 팔선과해이다 각자 자기의 재주가 있다. 개략 나누어 보자면, 구걸하는 프로 거지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다섯 종류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는 "강규화(强叫花)"이다. 이런 거지들은 몸이 장작개비처럼 말랐다. 아편을 충분히 피워서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아주 말짱하다. 봄여름가을겨울을 가릴 것없이, 이들은 항상 손에는 벽돌 하나를 들고 길거리를 다닌다. 부자집이나 상인들의 집앞에 가면 쉰 목소릴, "어르신, 마님..좀 나눠주십시오"라고 하면서 벽돌을 들어서 자기의 가슴을 내려친다.
이런 류의 거지를 쫓아내려면, 자잘한 돈만으로는 돼지 않는다. 최소한 1백(청나라말기의 시세로 개략 쌀 5근)은 주어야 한다. 만일 그만큼 보시를 해주지 않으면, 손에 있는 벽돌로 자기의 머리를 내려찍는다. 졸지에 붉은 피가 땅바닥에 확 튄다. 이어서 '아야'라는 소리를 내면서 뒤로 쓰러지고, 입에서는 게거품을 물고, 인사불성이 된다. 이때, 그의 동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서, 큰 소리로 소리치면서, '목숨을 물어내라'고 소리친다. 그리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게 된다. 집에 사는 사람들도 드나들 수가 없다. 점포라면 영업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이 이 정도로 커지면 상인이나 부자는 할 수 없이 돈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떠나질 않는다. 계산해보면 돈을 더 많이 써야 한다; 이들 거지들에게 밉보이면, 그들은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 한 밤중에 공동묘지에서 시신을 매고 그 집앞에 옮겨놓는다. 다음 날 문을 열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시신처리하는 비용까지 다시 주어야 한다. 그래서 부자집이나 상인들은 이들 거지들이 오면 대부분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바로 동전을 내놓고 그들을 보내버린다. 그들이 그 돈을 가지고 아편을 사 피우든, 아니면 개기를 찾아가든 그것은 그들이 알 바가 아닌 것이다.
둘째는 "예규화(藝叫花)"이다. 그 아래에는 다시 "창(唱)"과 "주(做)"의 두 가지로 세분된다. "창"에는 봉사나 어린 여자가 많다. 죽판을 두드리며 연화락을 부르기도 하고, 고판을 두드리며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호금을 켜면서 소극을 보여주기도 하고, 금전판이나 삼방고를 두드리며 소조아을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하면서 개가 박자를 맞추어 반주를 하게 하기도 한다; "주"는 대나무방망이로 판이나 그릇을 돌린다. 구련환은 9개의 직경 1척인 철환에 각양각색의 도안을 만들고 어떤 경우는 소도구로 극을 하기도 한다.
이들 거지는 문을 들어서면 듣건 말건 보건 말건 관계하지 않고, 공연이 끝나면 돈이나 쌀을 내놓지 않으면 안된다. 정말 잘 모르는 주인이 약간의 돈을 아껴서 그들의 공연이 끝나도 돈을 주지 않으면, 바로 듣기 거북하고, 불길한 내용의 노래를 연이어 불러제끼는 것이다.
셋째는 "신규화(神叫花)"이다. 이들 거지는 신이나 점술로 돈을 울궈낸다. 가장 자주보는 것은 "용선(龍船)"인데, 어깨에 용선을 메고(나무로 만들고 네 다리가 달렸으며, 반등보다 약간 크다. 배 안에는 인형정도 크기의 용선낭낭이 모셔져 있다), 문을 들어서자 마자, 용선을 내려놓고, 징을 두드린다. 목소리를 끌면서, "용선이 한번 굽어가면, 감기 기침을 모두 용선만으로 데리고 가고, 용선이 한번 흔들리면, 천연두, 곰보병을 모두 용선교로 데려간다."는 것과 같은 말을 한다. 집안에 아이가 있는 집안이면, 주부가 바로 나와서 향불을 하나 피우고 돈을 얼마간 내놓게 된다. 그리고 용선낭낭이 아이를 도와서 무병장수하도록 비는 것이다. 이미 감기, 기침으로 고생하는 사람이라면 향을 사른 재를 영약처름 받아간다. 혹은 돈을 얼마간 써서 용선난낭을 양어머니로 삼게 하는 등의 일을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은 신상을 집안입구까지 데려가서 향불을 피우게 하는 것이다. 집안일로 바빠서 절에도 갈 시간이 없는 주부들에게는 편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식은 "질문두괘(跌門頭卦)"이다. 오래된 대나무를 반으로 자르고, 다시 새끼줄로 양끝을 묶으면, 특수한 점술도구가 된다. 이것을 땅바닥에 던지면, 전음(全陰), 전양(全陽),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세 가지 경우가 나타난다. 연속으로 세번을 던지면 하나의 괘(卦)가 형성된다. 괘상을 가지고 '육효(六爻)"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길흉화복등을 점치는 것이다. 주인이 만일 물건을 잃었으면, 그들은 찾는 방향을 말해준다. 이 거지들은 신이 파견하여 은혜를 베푸는 사자들이다. 일반적으로 돈이나 쌀만 받지, 남긴 밥이나 남긴 요리른 먹지 않는다.
넷째는 "고규화(苦叫花)"이다. 가장 자주보는 것은 "곤지룡(滾地龍)"과 "개두충(?頭蟲)"이다. "곤지룡'이라는 것은 손발이 무? 혹은 팔꿈치에서부터 잘려나갔다. 걸을 수도, 길 수도 없어서, 그저 땅바닥을 굴러다닌다. 한편으로 구르면서, 다른 한편으로, "전세에 수행을 하지 않아, 현세에 보응을 받았다"는 것과 같은 류의 사람들에게 보시를 하도록 하는 노래를 부른다. 동시에 작은 광주리를 반만 남은 팔로 잡고 앞으로 밀고 나간다. 길가는 사람들이 보시를 하려면 돈을 그 광주리에 넣으면 된다. "개두충"은 비록 손발은 있지만, 팔이나 다리가 짧거나 가늘다. 5,6살짜리 어린아이와 같다. 그래서 길을 걸을 수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다. 그저 엉덩이로 바닥에 놓은 자리에 두 다리를 묶고는 두 손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한걸음 나갈 때마다 절을 한번씩 한다. 그리고 앞에 있는 광주리를 앞으로 민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노래를 부른다. 애처롭게 부르는 노래 이외에 더욱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한걸음 나갈 때마다 절을 하면서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내는 소리이다. 앞이 흙이든, 아니면 돌판이건, 벽돌이건 머리는 항상 '퉁퉁' 소리를 낸다. 그리하여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게 한다. 주머니를 뒤져서 약간의 돈이라도 보시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곤지룡"과 "개두충"에게 왜 손발이 없거나 손발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냐고 물으면, 그들의 답은 항상 "전세에 수행을 하지 않아서, 현세에 보응을 받은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렇다"고 답변한다. 다만, 내부사정을 아는 사람들에 의하면, 이들은 개방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말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유괴해서, 손발을 잘라버리거나 약을 먹여서, 큰 이후에 팔다리가 짧고 가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구걸하는 이외에 할 일이 없어진다.
사실상, 이런 "고규화"의 곁에는 항상 덩치가 좋은 사내가 돌봐주고 있다. 일단 마을이나 거리를 벗어나면 등에 업고 가며, 훈둔이나 샤오빙같은 것을 사서 한 입씩 먹여준다. 아주 세심하게 보살펴분다. 당연하다. 이 튼튼한 사내는 바로 사지가 부실하여 가련한 자가 있어서 스스로 먹고 입을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는 "뢰규화(賴叫花)" 혹은 "라규화(懶叫花)"이다. 이들은 무뢰한 짓을 할 줄도 모르고, 공연을 하거나 노래를 부를 줄도 모르며, 점을 칠 줄도 모르고, 손발을 자르기에는 너무 늦거나 할 수 없게 된 경우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저 놀고 먹는 것이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서 힘이 없거나, 약해서 힘이 없거나, 병이 뼛속까지 퍼졌거나, 장애로 사지가 멀쩡하지 못한 경우이다. 진짜이든 가짜이든, 이들은 자신의 가련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도록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동정을 산다. 초이틀, 십육일의 두 날에 당당하게 집집마다 다니면서 한줌의 쌀들을 수거하는 외에, 평소에는 그저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 재주만으로 구걸하여 남은 밥이나 요리를 얻어먹으므로, "뢰규화" 혹은 "라규화"라는 명칭을 얻었다.
거지들에게도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이 있다. 나쁜 시절은 당연히 비바람이 불거나 큰 눈이 내려서 나갈 수 없는 한겨울이다. 가서 구걸할 데가 없는 것이다. 그때에 배고픔과 추위가 몰려올 때, 단두가 주는 멀건 죽을 먹는 것이외에 할 수 없이 평소에 저축해놓은 것을 써야 한다. 좋은 시절은 그 마을의 어느 부잣집에 혼상희경이 있는 날이다. 결혼식이 있거나 환갑잔치가 있으면, 단두는 돈을 내서 고기를 사거나, 닭을 한 마리 잡아서 반쯤 익힌 다음 붉은 칠을 한 접시에 담고, 붉은 종이봉투에 은원 2개를 넣는다. 그리고 단두가 이끌고, 줄을 서서, 경사가 난 집으로 축하하러 간다. 이때, 이들 거지들이 집으로 가서 예를 바치는 것을 "하객(賀客)"이라고 하며, 당연히 주인으로부터 "예우"를 받는다.
일반적인 상황하에서는 주인이 그 지방의 유지를 불러서 단두와 협상을 한다. 가격이 정해지면 거지들은 후문으로 가고, 1인당 동전 스무개, 만두 두개, 돼지고기 두 조각등등을 준다. 이때, 단두는 그의 권력을 대표하는 한연관을 후문의 입구에 걸어둔다. 그렇게 한 후에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이 한연관이 걸려있으면, 어떤 거지들도 이 곳에서 소란을 피울 수가 없다. 어떤 단두는 자신의 신분을 알기 때문에 자리에 가서 앉지 않고, 바로 집으로 되돌아간다. 이렇게 한 경우에는 그 집에서 경사가 끝난 후에 한연관을 단두의 집으로 되돌려보내는데, 당연히 좋은 술을 한통 보내주어야 한다.
상갓집의 경우에는 당시의 풍속으로 조문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천막을 치고, 수십탁의 자리(豆腐席)를 마련해 놓고, 조문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죽은 사람과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종이한장, 촛 두자루, 향 몇 자루를 가지고 가면 상갓집에서 3일간은 먹을 수 있었다. 두부석이라고 하는 이유는 강남에서 두부가 주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상갓집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것은 '두부를 먹는다', '죽은 사람의 두부를 먹는다'고 얘기한다. 이때, 조문객의 신분으로 거지들을 데리고 가서 조문을 하면, '두부석'에 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답례는 돌아온다. 이외에 줄줄이 거지들을 데리고 상여가 나가는 것을 뒤따르기도 하고, 깃발을 들어주기도 한다. 혹은 임시로 죽은 사람의 '친우'역할을 맡아주기도 한다. 그 때는 당연히 거지들도 두부석에 앉아서 식사를 받는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고비를 받는다.
이상에서 말한 것은 청나라말기 이전의 강남개방의 대체적인 상황이다. 지금 도시안의 거지들은 개방의 통치를 받지도 않고, 단두의 관할도 받지 않으므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다. 많은 대도시에서 구걸하는 거지는 '퇴근'한 후에는 양복으로 갈아입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다. 집은 커다랗고, 마누라도 있다. 이것은 또 다른 거지세계이다. 본문에서 개괄할 수는 없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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