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중국 이야기

태평천국의 실패후 해외로 도망친 사람들.

구름위 2013. 9. 2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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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의 난이 실패한 후, 관련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어떤 사람은 해외로 도피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해외로 도피했는가? 여기서의 해외는 홍콩, 마카오 및 동남아, 미국등지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곳들은 모두 청나라의 관할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광동에 인접한 홍콩은 태평군 장사들이 도망하기 가장 이상적인 장소이며 교두보이다. 일찌기 천경에서 내분이 있을 때부터 문무에 능했던 뇌한영(賴漢英)은 내분을 보고, 태평천국에 신뢰를 잃고, 남경을 빠져나와 홍콩에서 여러해 동안 거주하다가 20세기 초에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약간 전설적인 색채를 띄고 있어 다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천경함락후, 확실히 일부 태평천국의 인물들이 홍콩으로 간 것은 사실이다. 현재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일찌기 수군사령관을 지냈던 삼왕(森王) 후유전(侯裕田)이 있다. 그는 몰래 무기와 양식을 태평군의 장주의 잔당들에게 제공하였고, 겉으로는 금성태점이라는 가게를 열었다. 나중에 그는 홍콩에 숨은 다른 태평군의 인물과 함께 광주로 인도되어 살해당하였다.

 

간우문(簡又文)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홍콩에 피난한 자들 중에는 홍수전의 조카 세명이 있다고 한다. 낭왕(琅王) 홍괴원(洪魁元)은 칼을 가는 일을 하며 스스로를 숨겼고, 나중에 경찰이 되는 홍소윤(洪紹允)은 처음에는 물고기를 파는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구룡에 광제당약국을 차린다. 영왕(瑛王) 홍춘괴(洪春魁)는 홍콩으로 도망친 후 이름을 홍화(洪和)로 바꾸고, 쿠바로 가서 새똥을 파는 노동자가 된다. 나중에 홍콩에 돌아와서 의사로 지내고, 나중에 신해혁명때 "대명순천국(大明順天國)"을 건립하는 홍전복(洪全福)이 바로 그이다.

 

상술한 것은 이름있는 지도자급의 인물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해외로 도망친 사람들에 대하여는 문자기록이나 구두전설이 점차 사라져서 그들의 사적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적지 않은 태평군의 구성원들은 미국으로 갔다. 이것은 미국이 서부를 개간할 때 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한 것과 관련된다. 19세기중엽에 유럽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수천 수만의 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영국의 소령으로 "상승군"을 이끌었던 고든은 소주를 함락시킨 후, 태평군의 포로를 해외 영국식민지인 기아나로 보내 노동자로 삼았다. 그렇다면, 태평군에서 미국으로 건너간사람은 누가 있는가? 홍인(洪仁)의 장남이면서 영어로 회화가 가능한 홍규원(洪葵元)은 천경이 함락된 후 광동 부해로 도망쳐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서 노동자가 되고 나중에 남미의 영국령 기아나까지간다. 광동 화현기념관의 조사에 따르면, 홍인의 후예로 미국에 확실히 그런 사람이 있다. 남미주 서인도제도의 마티니크로 간 태평천국의 장령중에는 국민당 원로인 진우인(陳友仁)의 부친도 있었다.

 

주의할 것은, 근대중국은 이미 봉쇄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서 태평군의 장령들은 실패후에 대륙에서 살 수 없게 되자, 해외로 도망치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진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각종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다. 여러가지 제역으로 여기에서 든 각종 주장들은 그저 언어일 뿐이고, 또한 오랜 시간이 흘러서 후세들이 조사하거나 회고한 것이거나 억측, 추리, 편집한 것도 있을 것이다. 왜 태평군 장사들의 해외도망에 대하여 이렇게 여러가지의 얘기가 전해지는 것일까? 홍콩이나 해외로 도망친 태평군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