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말에 권신 원세개(袁世凱)에 의하여 대청제국이 멸망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권대기주(權大欺主, 신하의 권한이 너무 커지면, 주인을 누르게 된다)라고 하였다. 역사상 권대기주의 현상은 많이 나타난다. 서한의 왕망이 황위를 찬탈한 경우도 있고, 진나라의 팔왕의 난도 있으며, 삼국시대에 조조와 사마소가 권력을 빼앗은 경우도 있고, 수나라의 양광이 부친과 형을 죽인 사례도 있으며, 당나라의 이세민이 현무문의 변을 일으키거나, 송나라의 조광윤이 황포가신(黃袍加身)한 사례나 명나라의 주예가 정난의 변을 일으킨 것등이 그것이다.
봉건황조에서는 두 종류의 큰 싸움이 벌어지는데, 하나의 싸움은 황제와 태자간에 일어나고, 다른 하나의 싸움은 황제와 권신간에 일어난다. 황제와 태자는 친골육간이지만, 권력을 위하여는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사나운 호랑이도 자식은 잡아먹지 않는다지만, 제왕가정에서는 부친(모친)이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부친을 죽이며, 형제간에 서로 죽이는 참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황제와 권신간에는 더욱 말할 수 없는 은원으로 얽혀 있다. "황제와 신하는 하루에도 백번은 전투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군권(君權, 임금의 권력)과 상권(相權, 재상의 권력)간의 충돌, 외척이나 환관의 권한찬탈등 황궁과 조정은 권력과 음모의 장이었다. 태자와 권신은 중국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그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존재하는 자체가 황제의 권력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한 상황이 때로는 위기로 발전하기도 하고, 심지어 큰 동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어떻게 "권대기주"를 방어하느냐는 제왕들에게 가장 어려운 난제의 하나였다. 나무를 기르는데도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진다. 큰 나무의 중심에서 갈라져 나간 가지가 중심줄기보다 높게 자라고, 그의 생명력도 중심줄기보다 강하여, 결국은 중심줄기의 자리를 차지해버리는(取而代之) 경우가 발생한다. 성장하는 세력에 변화가 생김에 따라 "강지약간(强枝弱幹, 가지는 강하고, 줄기는 약한 현상)"이 발생한다. 황조시대에 조정에서 제왕과 신하의 권세에 이런 변화가 발생한다면 결국 자리바꿈을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는 봉건시대의 기본구조에 있어서 최상단에 있는 군왕은 반드시 강력한 세(勢)를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군왕이 일단 세를 잃어버리고 나면, 그를 중심으로 한 봉건계통은 붕괴할 것이라는 것이다. 황조를 연 개국황제들은 권모술수에도 능할 뿐아니라 강력한 세력도 가지고 있었다. 아래 사람들은 그 세에 눌려 감히 다른 생각을 먹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손들에게 황위가 계승되고 나면, 후손이 이런 걸 물려받기는 어렵다. 심지어 진혜왕과 같은 바보황제가 나오거나 부의 처럼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면 강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강지약간, 권대기주, 취이대지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역사의 철칙 - 오세이참(五世而斬)의 철칙
1856년에서 1860년 사이에 태평천국의 군대는 두 차례에 걸쳐 남경(천경)을 포위한 청나라의 강남, 강북부대를 쳐부수고 대승을 거두었다. 강남, 강북부대는 청나라의 정예부대인 팔기병과 녹영병이었다. 녹영병은 "활을 쏘면 화살이 나가지 않고, 말을 타려고 하면 말에서 떨어져버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팔기병은 더욱 부패하고 무능하였다. 이 두 부대가 궤멸한 후 청나라의 주력부대는 상군(湘軍, 증국번의 호남출신 부대)이 된다.
만주팔기병들이 산해관을 넘어올 때는 그렇게 기세가 대단하였는데, 이렇게 용맹하던 호랑이가 왜 이렇게 고양이꼴로 바뀌어 버렸는가? 부자집이 여러 대를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역사의 원칙이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지택, 오세이참(君子之澤, 五世而斬, 위대한 인물의 덕이 있어도, 오대가 지나면 멸문한다)" 능력있는 사람이 어떤 좋은 자리를 얻은 후에 가업을 일으켜서 천대만대 전해내려가기를 원하지만, 오대를 못내려가고 망하고 마는 것이 잔혹한 현실이다.
일반 백성들의 속담은 더욱 신랄하다. "부불과삼대(富不過三代, 부자집이 삼대를 넘어가지 못한다)" 오대도 좋고 삼대도 좋다. 가난과 부유는 변함없이 바뀐다. 아마도 이것이 일종의 자연의 조화이고, 공평함일지도 모른다. 왜 부자는 항상 부자가 아닌가? 부자집에서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태어나는 것은 왜 인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정도의 원인이 아닌가 한다.
첫째는 교만이다. 팔기병이 산해관을 넘은 후 만주족들은 통치계급이 되었고, 특권을 누렸다. 팔기자제들은 농업에 종사하지 않고, 공업에도 종사하지 않으면서 한족에 대하여 우월감을 가졌다. 그 자제들은 이런 특권을 가지고 사회에서 약자를 능멸하고 권세를 누리며 살았던 것이다. <<홍루몽>>에 나오는 설번과 같이 사람을 때려죽이기도 하고, 계집아이를 빼앗아오기도 하는데, 별다른 처벌은 없는 것이다.
둘째는 사치이다. 팔기병은 전쟁을 통해서 많은 재산을 모았다. 서방에서는 재산을 모으면 그것을 자본으로 바꾸어 계속 증식해나갔지만, 중국의 부자들은 이런 진취적인 사고는 하지 않았고, 특히 갑자기 부자가 된 경우에는 더욱 졸부근성이 나타나서 과시하는데 썼다. "석숭과 왕개가 부를 다투는 것"과 같은 일이 유행병처럼 번진 것이다. 이런 집안분위기에서 태어난 자제들은 더욱 사치하게 되었다.
셋째는 음란이다. 옛사람들은 "부귀하게 되려면 음란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였다. 여기서 음란이라는 것은 '미혹과 방종'을 의미한다. 부귀하게 되면 쉽사리 미혹에 빠지고, 방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배가 불러지면 음란한 욕심이 생기게 된다. 요즘 하는 말로 하면, 남자가 돈이 생기면 나쁜 것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사람이 더 많은 것에 대해 욕심을 갖게 되며, 외부세계는 각종 유혹이 충만하다. 내부의 욕망과 외부의 유혹이 만나면 쉽게 합쳐질 수 있다. 어른들마저도 이러한 유혹을 견디기 힘든데, 어린 아이가 이런 유혹을 견딘다는 것은 쉽지 않다.
넷째는 안일이다. 요즘 말에 "수학 이학 화학을 잘 하는 것보다, 좋은 부친을 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좋은 부친을 두면 좋은 대학을 가도록 도와줄 수 있고, 좋은 직장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고, 상류사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좋은 아빠의 부작용은 아이들로 하여금 힘든 것을 견디고 분투하려는 정신을 잃게 한다. 이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일단 좋은 부친을 잃고 난다면 아이는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중국경제도 신속히 발전하면서 많은 부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부자의 자식들이 어떻게 부친의 사업을 이을 것인지도 하나의 문제로 등장한다. 부자자녀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하여 학자들이 내놓은 약방문은 네 글자 이다 "교육강화".
일부의 부자의 자식들은 교만, 사치, 음란, 안일에 빠지는 것은 교육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깊은 역사적이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 그러한 전통하에서는 부자의 자식들이 교만, 사치, 음란, 안일에 빠지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사회문제인 것이다.
어떤 산서 사람이 산서상인이 200년간 흥성했던 것을 가지고 "부불과삼대"의 철칙을 넘어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가업을 200년간이나 계속했다는 것은 확실히 대단하다. 그러나 이백년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구시왕사당전연(舊時王謝堂前燕) : 옛날에 왕씨, 사씨와 같은 귀족집에 자리를 틀던 제비가
비입심상백성가(飛入尋常百姓家) : 지금은 보통 백성 집으로 찾아드네.
역사의 철칙 - 황종희(黃宗羲)의 철칙
소위 "황종희의 철칙"이라는 것은 진휘(秦暉)선생이 2000년 11월 3일자 <<중국경제시보>>에 기고한 <<세금통합식개혁과 황종희철칙>>이라는 글에서 언급한 것으로, 황종희의 역사를 보는 관점에 근거하여 결론적으로 도출해낸 하나의 역사철칙이다. 내용은 역대 황조는 "세금통합방식의 개혁"으로 "농민부담분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는데, 역대로 개혁의 목적은 좋았으며, 개혁자의 원 뜻은 "세금통합"을 통하여 농민부담을 경감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번 개혁할 때마다, 농민의 부담은 경감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가중되었다는 것이다.
이치로 보면 이런 현상은 매우 이상하다. 왕안석과 같은 개혁가는 시문도 잘 썼고, 지혜가 풍부하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중복되는 잘못을 또 저지른 것일까. 중국의 농민들 사이에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런 것이다. "윗 사람들이 읽는 것은 제대로 된 경전이다. 그러나, 아래의 입이 비뚤어진 중은 경전을 엉터리로 읽는다" 입이 비뚠 중이 경전을 엉터리로 읽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중의 수준이 낮아서 경전을 읽을 줄 모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이 일부러 경전을 엉터리로 읽는 것이다. 보통은 후자의 경우가 많다.
오사(吳思) 선생이 말한 <<혈수(血酬)철칙-중국역사중의 생존유희>>(2003년, 중국공인출판사)이라는 책에서는 혈수철칙을 얘기하는데, 황종희의 철칙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혈수라는 것은 "생명을 걸고 얻은 수입" 또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지출하는 대가"라는 의미이다. 명나라 관리들의 녹봉은 아주 낮았는데, 그들이 쓰는데 필요한 비용까지 해서 부수입이 녹봉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오선생이 말하기를 각 황조를 비교하면, 명나라의 관리들의 녹봉은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명나라의 관리들은 낮기는 하더라도 녹봉은 받았지만, 왕망의 시기에는 관리들이 조정에서 돈을 받지 못하였다. 즉, 녹봉이 제로였다.
관리들에게 녹봉을 지급하지 않으면, 관리들은 그저 바람이나 마시면서 살 것인가? 자고이래로 바람마시면서 사는 백성은 있어도, 바람마시며 사는 관리는 본 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왕망시기의 관리들은 조정에서 녹봉은 지급하지 않지만,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서 해결했다. 여러가지 핑계를 대어 백성들로부터 돈을 긁은 것이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시행하면서 통상 부딛치는 현상은 "양두열, 중간량(兩頭熱, 中間凉)"(국가지도자와 일반 백성들은 매우 환영하고 의욕에 넘치지만, 중간의 하급관리들은 냉담하고 의지가 없는 것을 가리킴)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패러독스에서 중요한 것은 농민과 관리의 먹이사슬문제이다. 만일 이런 관계를 제거한다면 패러독스는 성립하지 않는다. 혹은 중앙정부에서 농민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관리들에게 보상을 한다든지 하여 농민과 관리가 모두 손해보지 않도록 해주면 "중간"도 냉담하지는 않을 수 있다.
왕안석의 변법은 아주 주도면밀하게 계획되었다. 청묘법(靑苗法)과 같은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확실히 농민을 위하여 여러가지로 면밀하게 고려한 것이 보인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방안이 왜 최종적으로는 농민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각급 관리들이 중간에서 장난을 쳐서, 원래는 좋은 일을 아주 망쳐버린 것이다.
오선생이 파악한 이런 "숨은 철칙"은 바로 관리들이 중간에서 장난치는 기술을 말한다. 관리들의 장난에는 이런 "숨은 철칙"이 있을 뿐아니라, 어떤 때에는 전혀 기탄없이 하고싶은대로 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 백성들이 말하는 "화상타산 무법무천(和尙打傘, 無法(髮)無天)(중이 우산을 쓰니, 머리카락도 없고, 하늘도 없다. 머리카락(髮)과 법(法)은 중국어로 발음이 Fa(파)로 같으므로 중이 우산을 썼다는 말은 법도 없고 하늘도 없어지게 되는 즉, 무법천지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결국, 이 문제를 살피면서는 두가지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즉, 하나는 중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은 우산을 쓸 수 있다(무법천지로 백성의 고혈을 짜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이 밥을 먹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먹을 밥을 주지 않거나 먹을 밥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산을 쓰게 될 것이다.
중국역사상의 많은 변법들이 있었으나, 성공한 것은 많지 않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집행난"이었다. 좋은 법률도 좋은 정책도 중하층 관리의 손에 들어가면 보통 모양이 바뀌게 된다. 학자들은 항상 중간관리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중간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위층의 문제이고, 표면상으로는 집행난의 문제이지만, 실제상으로는 설계의 문제이다.
하나의 좋은 정책을 설계했으면, 동시에 이에 따른 좋은 "노선도(일정표)"도 만들어야 한다. 이 노선도에는 반드시 중이 밥을 먹는 문제와 중이 우산을 쓸 수 있다는 문제도 포함시켜서 작성해야 한다. 이런 "중"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좋은 정책을 만들더라도 사상누각이 된다. 그렇지 않는다면 '황종희철칙'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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