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1968년 3월 8일 소련의 골프급 전략 핵미사일 잠수함 K-129가 하와이 북서쪽 1560 마일 떨어진 해저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이 미 해군에 감지되어 정밀 추적을 받아오다 한달 뒤인 1968년 4월 11일 마침내 침몰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이에 따라 소련 해군 태평양함대가 수주간에 걸쳐 수색작전을 전개했으나 잠수함에 접근하는데 실패하고 철수하자 1968년 7월부터 미 해군이 본격적인 수색에 나섭니다. '샌드 달러 작전'으로 명명된 미 해군의 수색작업은 무려 3,100 평방킬로미터에 걸쳐 전개됐고 마침내 해저 3마일(4,800 미터) 지점에서 소련의 잠수함을 발견합니다. 1968년 미 해군 수색작전 당시에는 존슨 대통령이 재임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어 인양작업을 결정할 수 없었으나, 이듬해인 1969년 1월 20일 닉슨 대통령이 취임한 뒤 고심 끝에 인양작업 추진을 결정합니다.
소련의 핵잠수함 K-129에 핵미사일 3기가 장착되어 있는 최고급 기밀정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인양할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골프급 전략 핵미사일 잠수함 K-129
그러나 문제는 과연 해저 3 마일 지점에 있는 무게 1천 7백톤의 잠수함을 어떻게 인양하느냐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아예 태평양 해저에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것을 감안해 해저 인양이 가능한 특수선박을 건조하게 됩니다. 태평양의 해저가 1만 4천피트에서 1만 6천피트정도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여 1만 7천피트(5,182 미터) 해저에서 최대 2천톤까지 인양이 가능한 선박, 이름하여 글로머 익스플로러(HUGHES GLOMAR EXPLORER)의 건조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 특수선 건조에 들어가 진수된 것이 1973년 9월, 그뒤 미국의 기계공학 기술을 총동원하여 인양장비를 제작하고 장착해 배를 완성한 것은 무려 6년여가 지난 1974년 5월이었습니다.
글로머 익스플로러호의 완성을 눈앞에 둔 1973년 11월, 조선 노조가 파업기미를 보여 CIA는 자칫 이 작전이 1년간 연기될까봐 애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소련 핵잠수함 침몰해역에서 인양작업이 가능한 시기가 7월부터 9월 중순까지 이므로 선박건조가 늦어지면 인양작업은 그 다음해로 넘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미 해군이 CIA와 휴즈사의 협조로 건조해낸 인양선 글로머 익스플로러 (USNS Glomar Explorer)
본 프로젝트는 닉슨 행정부 첫 해에 시작된 선박 건조가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1974년 중반에 완공될 정도로 장기간에 걸친 거시적 작전이었고 배의 건조에만 천문학적인 액수인 5억달러(일부추정 8억달러)가 투입될 정도로 냉전시대 최대규모의 스파이 작전이었다고 합니다. 또 이 배는 미국 과학자협회, 미국 기계공학 학회등에서 극찬을 하며 배 건조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학회지에 별도로 남길 정도로 우수한 배였습니다. 이 작전은 미소 데탕트로 인해 한때 중단될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닉슨 행정부는 이 작전을 끝까지 밀어부쳤고 마침내 닉슨 대통령은 1974년 6월 7일 인양작전 개시를 승인합니다. 그러나 1974년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닉슨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했으므로 닉슨의 안전을 위해 그가 돌아올 때까지 작전은 유보되었고 그가 돌아온 다음날, 독립기념일인 1974년 7월 4일에 인양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은 글로머 익스플로러 건조 때나 인양작업을 위해 출항할 때도 소련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해저광물 탐사를 명분으로 내세웠고 그래서 현재까지는 작전암호가 PROJECT AZORIAN이 아닌 광물탐사 당시 위장암호였던 PROJECT JENNIFER로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인양작전이 벌어지자 소련 선박 2천척이 바로 옆에서 밀착 감시했으며, 인양작업이 한창이던 1974년 7월 18일에는 소련 선박에서 이함한 헬기가 글로머 익스플로러호 헬리패드에 착륙을 시도해 CIA 요원들이 이를 막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소련 핵잠수함은 8월 1일 마침내 5천미터 해저에서 수면으로 부상하는데 성공했고 잠수함을 수면에서 배 위로 끌어올리는데 8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결국 인양작업 약 5주만인 1974년 8월 8일 휴즈 글로머 익스플로러호는 마침내 소련 잠수함 인양에 성공합니다.
인양작업 도중 선체를 묶었던 줄이 풀리는 등 난항을 겪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었을 것이라는 추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이 인양작업을 통해 소련의 핵잠수함에 탑재됐던 핵미사일 3기와 어뢰 3발, 소련에서 극비로 분류된 암호발생기 2대를 획득하는 등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작전의 일부는 1975년 2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특종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이 보도 약 8개월전인 1974년 6월 5일 휴즈 글로머 익스플로러호를 제작한 로스앤젤레스 휴즈사 본사에 도둑이 들었고 공교롭게도 바로 이 배 제작과 관련한 기밀문서가 없어졌답니다. 특히 이 작전과 관련해 감동적인 것은 핵잠수함을 인양한 뒤 소련 해군 6명의 시신을 발견하고 미국 정부가 이들 사망자들에게 예우를 다하여 장례를 치러준 것입니다.
감동적인, 너무나도 감동적인 이 장면은 마침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남겨졌고 구소련이 해체된 뒤 지난 1990년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전해져 적장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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