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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도(夏一跳): 청나라 궁중의 무림고수

구름위 2013. 6. 17. 15:44

최근 들어 글쓰기를 위하여 청나라궁중의 에피소드를 읽었다. 김역(金易) 선생의 <궁녀담왕록>이라는 책을 보다보니 돌연 어디선가 본 것같은 장면이 나왔다. 몇년전에 필자는 협기와 재기를 지닌 태감(환관)인 하일도에 대하여 쓴 바가 있는데, 김역 선생의 글에서도 하일도의 신세가 언급되어 있었다.

 

하일도는 천진 정해 사람이다. 청나라궁중에서 근비(瑾妃)의 곁에 있던 태감중 한 명이다. 그는 몸집이 커서, 한번은 서태후가 그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고 하여 '일도'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이 이름을 그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이름이 이상하다고 보아서 그를 "하대백(夏大伯)"이라고 존칭했다.

 

하일도는 만년에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남긴다. 그는 태감이었지만, 그를 잘 대해주는 하대낭(夏大娘)과 결혼도 한다. 하대낭은 필자의 집안과 인연이 있다. 그래서 하일도가 나오는 <태감에게 시집가다>라는 글을 쓴 연유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할머니는 하일도가 궁을 나온 후에 취하였고, 하일도는 젊었을 때의 신세내력에 대하여 잘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태감이 도대체 어떤 신분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늦게 태어나서 이 할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물어볼 수는 당연히 없는 일이었다.

 

그의 출신을 알아보고자 한 것은 하일도에게는 전설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략이 뛰어나고, 경영에도 재능이 있으며, 무예에도 정통했다. 하대낭에 따르면, 그는 매일 아침에 무공을 연마했다. 연마한 것은 팔괘장이다. 그외에 그는 채찍을 잘 다루었다. 낮에 날아다니는 벌레를 맞출 수 있었고, 밤에는 향불을 끌 수 있었다. 조금도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출궁이후 하일도는 업종을 바꾸어 장사를 한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잘 응대하여 관내 관외를 다녔다. 거기에는 뛰어난 무공을 지녔다는 점도 큰 역할을 한다. 삼산오악의 친구들이 그의 체면을 봐주었다.

 

태감이 도대체 어떻게 무예를 익혔을까?

 

가장 먼저 필자는 그의 무예가 동해천(董海川)과 관련있지 않을까 의심했다. 왜냐하면 팔괘장의 창시자인 동해천 본인이 바로 태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널리 제자를 받아들였다. 묘지명에 기록된 그의 제자만 하더라도 거의 칠십명에 이른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동해천은 광서8년에 태어났고, 근비는 광서14년에 입궁한다. 만일 이전에 하일도가 입궁하였다면, 아마도 동해천의 제자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동해천은 전해지는 바로는 의군(의화단)이 청나라조정에 심어놓은 첩자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일도도 그와 같은 경우일까?

 

그러나, 나중에 자세히 계산해보니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일도는 1945년 해방때까지 살아있었고, 육십여세였다. 그렇다면, 동해천이 사망했을 때 그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외에 동해천은 청나라궁중에 들어가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숙친왕부에서 일했다. 그러므로, 그가 하일도와 만났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나, 태감중에서 동해천이 나왔다. 비록 이들 "육근부전(六根不全)"의 사람들이지만 자랑스러운 일이다. 조건이 되는 태감들은 팔괘장을 배웠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하대낭에 따르면, 하일도의 팔괘장을 실전에서 쓰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채찍술을 쓴 적은 있다고 한다. 그는 이 채찍술로 강탈하려는 토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어디서 배웠을까?

 

지금 김역 선생의 글을 보면, 청나라궁중에는 확실히 채찍술에 뛰어난 태감이 있었다. 그는 <궁녀담왕록>에서 "사금강 오백나한"이라는 부분에서 청나라말기 제석대연의 광경을 쓰고 있는데 이렇게 적었다: "전체 식사시간동안 폭죽은 멈추지 못하게 했다. 거기에 서장가의 향당에서는 채찍소리가 들렸다. 채찍으로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이것은 특별하게 제작한 채찍이다. 반척 길이의 몽둥이에 1장여의 채찍이 있다. 몇 개의 양창자를 꼬아서 만들었다. 거기에 1척여길이의 채찍손잡이가 있다. 땅 위에 놓아두면 마치 뱀이 또아리를 튼 것같았다. 이런 채찍을 치는 사람은 모두 훈련을 거친 젊은 태감들이다. 채찍을 한번 휘두ㅡ면, 채짹에서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몇몇 태감이 같이 휘두르면 상하,좌우,전후로 각종 서로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

 

아마도 이런 향당의 채찍을 행위예술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무술로 생각하지 않고. 그러나 북경에 한 무림고수가 예전에는 점포의 회계출신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저 시간이 남아서 무료하다보니, 하루종일 손으로 단단한 나무로 된 탁자를 치는 놀이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여러번 탁자가 부서졌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나중에 토비가 강탈하려고 덤벼들었다. 그는 부득이 손을 들어 막았는데, 바로 상대방의 배에서 구멍이 나서 피가 흐르고 창자가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한 노인을 보고는 토비들이 놀라서 도망쳤다고 한다.

 

이것은 구음백골조와 비슷한 신기한 쿵후일 것이다.

 

구음백골조는 이렇게 수련한다고 치고, 채찍은 어떻게 수련하는가? 기름을 파는 노인에 따르면, 손에 익었을 뿐이다. 부드러운 채찍을 사용하는데 주요한 것은 정확성과 통제이다. 향당 태감들은 이런 부드러운 병기를 악기로 사용할 지경에 이르렀다. 실전에서도 상대방이 쉽게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가지 가능성은 있다. 하일도가 입궁한 후 한동한 향당태감을 지냈을 수 있다. 나중에 근비의 곁에서 일하는 태감으로 발탁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일정한 감시의 목적을 수반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근비와 진비는 모두 서태후가 광서를 위해서 골라준 후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무공내력도 이해될 수 있다.

 

당연히,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바로 궁중에서 일부 태감들은 비밀리에 전해지는 무림의 고수라는 것이다. 멀리는 김용선생의 벽사검법(누군가의 고증에 따르면, 귀신을 쫓는 업무를 맡은 태감이 발전시킨 무술유파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쓰는 것은 도목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검법은 귀신처럼 빠르게 승부를 결정짓는 특징이 있다), 가까이는 누군가가 쓴 소설 <송풍>이 있다. <송풍>은 송나라궁중의 노태감을 신출귀몰한 무림고수로 그렸다. 이 두사람은 모두 문화인이다.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약간의 진실의 그림자가 숨어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일도가 바로 그런 신비한 태감고수들 중에서 마지막 후대가 아닐까?

이건 그냥 말도 안되는 상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