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란 사회는 성리학이 지배한 사회이다. 성리학은 학문 이상으로 그 시대 이데올로기였다. 그렇게 엄격한 자기 절제가 필요했던 시대 성(性)이란 과연 어떤 식으로 접근되어졌을까? 그런데 조선왕조 실록에 의외로 간통 사건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어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내시와 궁녀 혹은 내시와 세자빈, 그리고 궁녀들의 동성애, 그리고 이름만으로도 고고한 학자 집안에서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성 추문 사건들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왕실에서 일어난 성 스캔들 그러나 조선왕조 실록에는 이들의 크고 작은 간통 사건들이 등장한다. 한쪽은 성적 도구가 거세된 자들이고 한쪽은 성욕이 거세된 자들이지만 이들과 관련된 성 스캔들은 그야말로 충격 이전에 측은함으로 다가선다.
태조 2년 6월 14일, 세자빈 현빈 유씨를 내쫓고, 내시 이만을 목 베다 실록에는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죄를 지었는지 자세한 내막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임금은 두 사람과 관련된 추한 소문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에 극도로 불쾌하게 생각하여 사건 진상을 묻는 대간들과 형조 관리들을 모두 내치고 벌을 준 것이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두 사람은 대궐 안에서 간통을 하다 발각되어 내시 이만은 목 베이고 세자빈 유씨는 사가로 내쫓김을 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의안대군 방석(태조의 막동 아들)이 열 한 살 너무 이른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어 현빈 유씨를 맞이했지만 남녀 간의 정을 통할 수 없어 세자빈이 내시와 간통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태종 17년 8월 8일, 내시 정사징의 간통 사건이 터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정종의 아들이라 생각하는데, 정종 혼자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우긴다. 정종에게는 정실의 자식이 하나도 없었고, 모두 후궁의 자식만 있었는데 동생(이방원)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하던 상황에서 원손이 태어난 것에 부담감을 느낀 정종이 불노를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우긴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불로라는 아이는 조박(태종 이방원의 동서)에게 키워진다. 그런데 태종 10년, 불노가 상왕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다시 도성 안에 퍼져 대궐이 시끄러워졌다. 그런데 이숙번 등 왕의 친위세력들은 이것이 조박이 꾸민 역모사건이라 운운하며 불노와 조박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태종 이방원)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조박은 공신이고 왕실의 근친인 관계로 불문에 부치는 대신 불노를 민가와 떨어진 절에서 살도록 조처했다. 그리고 태종 17년, 기매의 간통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러므로 기매의 간통 사건은 정종에 대한 한 여인의 복수심에서 벌어진 것이다. 기매는 인덕궁(정종이 상왕으로 물러나 기거하던 곳)에서 감금되다 시피 갇혀 있던 몸인데 고려 왕실에서 내시로 활동하던 거세되지 않은 듯한 정사징이 그녀와 간통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한편 실록에서는 정사징이 고려 공양왕 때부터 내시 같지 않다는 말이 있었으며 태조 4남 방간의 첩과도 간통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세종 1년 9월 1일, 내시 임승부가 기생 봉소련과 대궐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다 탄핵 당하다 그런데 임금은 어려서부터 임승부를 좋아한 나머지, 당연히 교수형에 처해져야 마땅하지만 장 1백대 만을 치게 하고 하동현 관청 노비로 보내 버렸고, 봉소련도 공주의 관청 기녀로 내쫓았다. 그 동안 우리 역사에서 금기시 했던 부분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왕실 뿐 아니라 종친들과 공신들이 기생을 놓고 싸움박질을 벌이는 장면들을 지금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가희아 사건>
<초요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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