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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전성기는 미친 여왕이 다스렸다

구름위 2013. 3. 28. 17:07

 

후아나 라 로카는 스페인 여왕인 이사벨라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언니와 오빠들이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녀는 유일한 왕위 계승자가 되어
스페인은 물론 나폴리, 시칠리아, 멕시코, 페루, 카리브 제도까지 물려받게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결혼 상대로 정해진 사람은 합스부르크 家의 퀸카 필리프 1세였다.
그는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안의 아들로 유럽의 장동건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해 열렬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문제는 필리프 대공에게 있었다.
이 사람은 상당한 호색한이었던지 끊임없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신혼중에도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줄을 놓는 특성이 있었다.
 
그는 아내의 눈을 피해 여자 시종을 건드리는가 하면 창녀들을 궁에 끌어들여 음탕한 놀이까지 즐겼다.
그리고 첫 딸 엘레오노라가 태어난 이후로는 아예 후아나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바람기를 과시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후아나는 남편에게 집착하면서 극심한 신경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만 바라볼 수 있도록 많은 방법을 동원했다.
심지어는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춤을 배워 임신한 가운데에서도 열심이었는데
춤추는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무도회에서 아들 페르디난트 1세를 낳기까지 했다.
 
후아나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동침하는 것을 참다못해 그의 침실로 뛰어들어가
옆에 누워있던 여자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얼굴까지 그어놨다는 설도 있다.
이처럼 남편의 애정행각이 계속되면서 후아나의 극단적인 히스테리는 계속되었다.
 
이사벨라 여왕이 죽고나자 스페인 여왕의 자리는 후아나에게로 돌아갔지만
아버지인 페르난도 2세와 남편 필리프가 그녀의 광증을 지적하며 왕위계승을 주장했다.
스페인 의회는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을 벌였지만 후아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를 받아들이고
아버지가 아닌 남편에게 그 자격을 주어 필리페 1세의 섭정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필리페 1세는 섭정을 시작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갑작스런 열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다시 권력을 되찾은 후아나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미친듯이 울부짖다가
그의 시신이 부활할 것이라며 장례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녀는 관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침마다 그의 시신에 키스를 하고
심지어 시신이 썩어 구더기가 끓고 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몇 년 후 스페인 왕실에 의해 미쳤다고 판명되어 수도원의 탑에 감금되었고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아들인 카를이 섭정을 시작했다.

스페인 의회에서 그녀에게 왕위를 양도할 것을 종용했으나
그녀는 51년이 지나 죽는 날까지 그 지위를 버리지 않았다.
스페인 의회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왕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동의없이는 함부로 왕위를 넘겨줄 수 없었다.
 
참고로 그녀가 갇혀있었던 51년동안은 무적함대가 세계를 지배하는
스페인의 전성기였으니 이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