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북유럽에서는 '사가 (Saga)' 라는 장르의 문학이 성행합니다. 이것은 북구 종교의 신화와 역사서, 문학, 사랑이야기 등을 통틀은 것으로 주로 아이슬란드에서 쓰였습니다. 당시에 아이슬란드에서 이름을 날린 작가 '스노리 스튀를리손 (Snorri Sturluson 1178~1241)'의 저서중에서는 <붉은털 에릭의 사가 (Eiríks saga rauða)>가 있는데, 이것은 에릭이라는 인물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밟았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역사책입니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에릭(950c.~1003)은 본래 노르웨이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살인을 저질러 추방되었고, 살곳을 잃게 됩니다. 그는 배를 타고 아이슬란드에 도착하게 되는데, 982년에 그는 여기서도 살인을 저질러 쫓겨나고 맙니다.
바이킹배를 복원한 모습, 이배는 유선형선체를 가지고 있어 파도에 저항하는 힘이 강하며, 넓은 돛을 이용해 최고 20노트까지 항해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북구에서 그를 받아들일 곳은 없었습니다. 남쪽에 영국이 있긴 하지만 잉글랜드인이나 스코틀랜드인이나 아일랜드인이나 모두 바이킹에게 적대적이었고, 에릭은 결국 서쪽의 알려지지 않은 바다를 향해 출항하게 됩니다.
에릭의 일가는 아이슬란드를 떠나 서쪽으로 끊임없이 항해합니다. 그리고 결국 거대한 섬을 발견하는데, 그는 이곳을 '그뢴란드' (Grønland = 그린란드) 라고 명명짓는데, 덴마크어로 '초록빛땅' 이라는 의미입니다. - 오늘날 그린란드는 81%가 얼음으로 덮여있지만, 이시대만 해도 그린란드는 농경이 가능할만큼 기후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어진 '소빙하기'로 인해 그린란드의 기후가 급속도로 추워지고, 결국에는 서쪽과 남쪽 끝을 빼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변해버립니다. - 에릭의 가족들은 그린란드에 정착했으며, 곧이어 본국에서 많은 바이킹들이 몰려와 그린란드 남쪽에 정착지를 이루어 거주하게 시작합니다. 그린란드에는 이미 이누이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바이킹들은 그들과 공존하고, 교역하면서 평화롭게 살았으며, 나중에는 이누이트들이 바이킹으로부터 철기를 수입하기도 합니다.
복원한 모습 북대서양 도서에서 바이킹 유적지는 그들의 집터와 대장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누이트는 철기를 몰랐기 때문이다.
에릭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레이프 에릭손 (Leif Erikson 에릭의 아들 레이프)입니다. 그는 전사교육을 받기 위해 부모와 떨어져서 아이슬란드에서 거주했지만, 그도 살인을 저질러 (부전자전?) 아이슬란드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노르웨이에서도 그를 쫓아냈고, 결국 그는 그린란드로 가야했는데 오기가 발동한 그는 그린란드를 떠나 아버지처럼 새로운 섬을 발견하기 위해 바다로 나갑니다. 레이프는 먼저 서쪽으로 항해해서 헬룰란드 (Helluland 바위의 땅 = 오늘날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섬인 베핀 섬)를 발견하고, 그곳이 정착하기에 별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남쪽으로 항해해 마크란드 (Markland = 숲의 땅, 오늘날 레브라도반도)를 발견해 그곳에서 정착하기위해 시도합니다. 하지만 그곳 원주민들의 저항에 부딛혀 그는 더 남쪽으로 내려가 오늘날 뉴펀들랜드 섬을 발견합니다.
레이프는 이곳을 빈란드 (Vinland = 포도주의 땅) 라고 명명합니다. <붉은털 에릭의 사가>에는 빈란드에서는 "저녁이면 반드시 해가 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백야현상이 만번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바이킹들이 처음으로 백야현상이 없는 땅을 발견하면서 신기해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일 것입니다. 또한 바이킹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밟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지요.
바이킹의 거주지의 그림과 이를 복원한 모습, 뉴펀들랜드 섬에서는 바이킹들의 요새와 마을 흔적이 발견되었다.
레이프의 모험 이후, 많은 바이킹들이 빈란드와 주변땅에 정착합니다. 노르웨이에서 온 쏘르핀 카를세프니와 야르니 헤롤프손도 빈란드에 정착합니다. 빈란드는 음침한 기후속에서 사는 바이킹들에게 별천지나 다름없는 매력적인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엄청난 원주민의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레이프시대 이후 200여년도 안되어 바이킹들은 빈란드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사가에 의하면 스크럴링이라고 부르는 원주민들이 처음에는 바이킹들이 가지고있는 붉은천을 얻기 위해 식량을 제공하는등 교역활동을 했지만, 붉은천이 다 팔리자 바이킹의 정착지를 공격했고, 그들은 바이킹 정착지를 향해 불을 놓고, 활을 쏘고, 농작물을 망쳐놓아서 그들이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게끔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직 바이킹의 전투력은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만큼 크지 않았던 것이지요. 결국 빈란드 식민지는 보기좋게 실패했고 다른 아메리카대륙의 바이킹 식민지도 마찬가지로 실패했습니다. 더군다나 아까 살짝 운의 띄웠습니다만, '소빙하기'라고 불리는 한파가 14세기에 그린란드와 북유럽을 강타하자 바이킹들은 식량부족에 허덕이게 되고, 하나둘 떠나기 시작합니다. - 로마제국시대 잉글랜드에서는 포도를 재배할 수 있었지만, 이시대 이후 포도가 사라지고, 밀생산또한 떨어져서 영국이 식량난에 허덕이기도 했습니다. -
만약에 그들이 오늘날 우리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은 스페인의 콜럼버스' 라고 배운다는 것을 안다면 뭐라고들 말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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