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 초기 공중전 양상 -

구름위 2012. 12. 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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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 Dogfight
 
  - 초기 공중전 양상 -

 

 

공중전은 개싸움?

도그 파이트(Dogfight)란 말은 두대 이상의 항공기간의 공중 전투를 의미하는 말이다. 근데 왜 하필 개들(dog)의 싸움(fight)인가?... 아마도 개들이 서로 으르렁 대며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상대방의 꼬리를 물어 버리려고 서로 뱅글뱅글 도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사실, 프롭기들의 싸움이란게 상대방의 꼬리 즉 6시를 잡기 위한 과정들이니까...

 

인류 최초의 공중전

공중전이 처음 발생한 것은 세계 제 1차대전 당시로. 대전 초반 만해도 비행기라는 것이 발명된지 얼마 안되던 시기라, 군용 항공기는 있었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전투기 개념이 아니라 단지 적진영을 정찰하는 정찰기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었다. 즉 항공기에 무장이 완전히 없던지, 아니면 날개 윗쪽에 기관총을 고정시켜 놓았었다.

당시 기술로는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총을 동시에 발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으며, 기술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기관총을 쓰기 위해서는 2명의 탑승인원이 필요했다.

즉 앞엔  조종사가 타고, 뒷좌석엔 사수가 탑승해서, 사수는 비행도중 조종사에게 지속적으로 비행방향을 알려줘야 했다... "적기가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오른쪽으로 선회!... 아니 좀더 오른쪽으로 ....아냐...너무 많이 왔어... 약간 왼쪽으로 움직여... " 이런식의 대화가 비행도중 적기를 만나면 계속됐다..  엔진 소음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무전기도 없던 그들의 말들이 잘 들릴리도 없거니와, 설령 똑똑히 들려도, 장님한테 총을 주고 방향을 가르쳐주면서 날아가는 새를 쏘아 맞춰야하는 경우와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공중전은 1914년 8월 28일에 일어났다. 초기의 숍위드기인, 숍위드 타블로이드기를 탑승했던 노르망 스프라트 소위가 독일의 2인승 정찰기를 격추시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숍위드기에는 무장이 전혀 없었다....

(홈지기 주석 : 그럼 어떻게?.... 아마도 노르망 소위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개인화기... 즉 장총이나 권총으로 적기를 쏘아 맞춰 격추시킨 것이리라....  열추적, 레이더 미사일이 보이지도 않는 적을 격추시키는 현대의 공중전 관점에서 보자면.... 100년도 안된 그때의 공중전은 정말 애들 장난 같이 보일 것이지만.... 어이없이 격추되어간, 또 소 발에 쥐잡기로 적을 격추시킨 파일롯들의 경험이 없었던들 이런 현대의 미려한 제트 전투기가 개발되었을까?.... 또 한가지, 단 100년도 안되어 이런 상상도 못할 과학적 진보를 이룩한 인류의 발전 속도도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이런 발달이 대량 학살 무기의 생산으로 직결되니, 꼭 과학의 발전만이 인류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최초의 파일롯 인기스타

전투 조종사라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직책이다... 당시 비행기라곤 한번도 본적 없는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지겨운 죽음의 진창에서 참호전에 지친 수 많은  병사들에겐, 마치 말에 올라탄 기사처럼 자신의 전투기에 올라타서, 적기와 대결하는  파일롯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정의의 기사들을 떠올리게끔 하는 이상한 매력이 있는 존재들이었다.  

최초로 인기스타가 된 조종사는 아마도, 영국의 루이스 스트랜지(Louis Strange)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Avro 504기의 후방 좌석에 여러 방향으로 움직임이 가능한 관절과 안전띠를 맨 기관총을 장착했고, 후방사수가 비행기의 움직임 없이도 여러 방향의 적기를 커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공중전에서 그와 그의 사수는 새로운 발명품을 이용해, 독일기를 격추시켰다. 1915년 10월, 영국 공군은 이 새로운 발명품을 모든 정찰기에 설치하게 된다.   

 

최초로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수여받은 파일롯

1915년 공군 조종사로서는 최초로, 레인 호커 대위는 적기를 격추한 공으로 빅토리아 십자 훈장을 수여받는다. 이프레스 평원 상공에서 호커는 브리스톨 스카웃(Bristol Scout)기를 타고 독일의 2인승기들을 공격했다. 이때 호커의 전투기 동체 옆에 장착된 칼빈소총이 실력 발휘를 하게 된다.  한대를 압박해 동체착륙시키게 만들고, 나머지 2기의 독일기를 격추시켜 버린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 독일기들도 기관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는 것...

 

전투기 무장의 혁신

1915년 프랑스의 조종사, 롤란드 가로스는 자신의 전투기 프로펠러 뒷쪽에 금속 쐐기판을 붙여서, 기총사격을 프로펠러 회전축내에서 가능하게끔하는 혁신적인 발명을 해냈고, 이제 단좌 전투기 조종사도 전투기 조종을 하면서 동시에 기총사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전투기 개발자이며, 독일공군에 항공기를 공급하고 있던 앤소니 포커 역시, 프로펠러의 회전축으로 발사가 가능한 기관총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로잡힌 롤란드 가로스의 발명품을 보고는 영감을 얻어 드디어 싱크로나이즈 기관총을 만들어 내게 된다. 싱크로나이즈 기관총이란 프로펠러가 회전하며, 프로펠러 날개가 지나가는 빈공간으로만 발사가 되는 전향식 기어를 장착한 신무기라 할 수 있었다. 즉 프로펠러 날개가 회전하며, 기총의 방향과 일치하는 점을 지날 때는 방아쇠를 당겨도 사격이 되지 않고, 빈공간이 생길때만 방아쇠가 당겨지는 그 당시로서는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막스 이멜만 같은 독일의 파일롯들은 이 새로운 싱크로나이즈 기관총을 장착한 포커 아인데커기를 이용해 많은 연합군의 전투기들을 격추시켜 나갔다. 즉 그가 1916년 6월 15일 전사하기 전까지, 총 17기의 연합군 비행기를 격추시킨 것이다. 또 다른 에이스 뵐케도 1916년 10월 전사하기 전까지 40기의 적기를 격추시키는 대기록을 달성한다. 그러나 연합군에서 싱크로나이즈 기관총의 비밀을 알아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드디어 양 진영은 똑같이 신무기를 장착한 최신예기들을 앞세워 피 튀기는 공중전에 돌입한다. 연합군 진영에서는 프랑스의 르네 퐁크, 캐나다 출신 영국공군 소속 윌리암 비숍등이 새로운 하늘의 영웅으로 명성을 쌓아가게 되었다.   

 

싱크로나이즈 기관총 없이 정면사격이 가능했던 기종은?

1916년 봄까지는 영국의 주력 전투기는 Avro DH2기였다. 이 전투기는 단좌 복엽기로 엔진이 조종사 뒤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를 가진 기종이었다. 그래서 자연히 프로펠러도 후방에 위치하게 되고, 조종사는 정면 사격이 가능했고, 실제로 루이스 기관총을 조종석에 설치했다.

또 다른 대단한 발명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 기관총사격 추적 장치인데, 이것은 별로 특별한 기술을 요했던 것은 아니고, 기관총탄 7발당 1개씩 예광탄을 넣어두어서, 조종사가 사격을 할 때, 자신의 기총이 어떤 곳으로 날아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1916년 영국공군에서 이것을 처음 고안해 써 보았는데, 조종사들의 반응이 좋아 보편화 되기 시작했다.

 

싱크로나이즈 기관총이 대중화되면서, 새로운 개념의 비행 조직과 전술이 속속 고안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많은 에이스들이 외로운 늑대 ("Lone wolf") 전법, 즉 단독 출격을 주로 이용했었는데, 1917년부터, 영국 조종사들은 6기가 한 그룹이 되어, 적기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직화된 편대와 외로운 늑대의 싸움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독일의 에이스 보스와 영국기 5대의 전투기와 5 ;1의 공중전으로...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뛰어난 에이스라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증명해주게 된다. 영국의 새로운 편대는 대부분 V자형으로 비행했는데, 편대장이 V자의 맨 앞쪽 꼭지점에 해당하는 부분에 위치했다. 공중전에 돌입하면, 2대가 짝이 되어 기동을 했다. 하나는 공격을, 나머지 하나는 엄호를 하면서.... 독일 조종사들은 영국의 6기 보다 좀 더 큰 편대를 선호했는데, 나중에 이런 전투기 집단은 써커스라 불리게 되었다.

 

태양을 등지고 하강하며 공격하라!

공중전 전술의 발전에 있어 가장 유명하며 전설적인 인물 중 하나인 영국의 에이스 메녹....   1917년 5월 부터 1918년 7월 그가 죽기 전까지, 메녹은 73기의 적기를 격추시킨 영국 최선두 에이스였다. 그의 공격 원칙 중 첫번째 것은 자신보다 낮은 고도의 적을 목표로 잡고, 태양을 등지고 급하강 공격을 한다는 것 이었다. 이런 전술은 적 파일롯에게, 공격해 오는 상대를 눈치 챌 시간적 여유와 회피기동할 틈을 주지 않는 방법이었다.

 

전투기 백미러의 의미는?

이렇게 고공의 기습에 당하게 되면서 몇몇 파일롯들은 자신의 기관총 위에 거울을 설치해 후방 경계를 강화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이것은 적이 뒤에서 하강하는 것을 빨리 알아챌 수 있을 뿐 아니라, 태양을 등지고 공격하는 적기 조종사의 눈에  태양빛이 반사되면서, 일시적으로나마, 공격의 고삐를 늦추게 할 수 있는 두가지 장점을 가진 것이었다.  

 

 

전투기 한대가 총알은 몇발이나 가지고 다녔나?

또 하나의 공중전 원칙은 구름을 잘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공격자의 입장이라면, 적기를 상대로 "치고 달리기 전법"을 쓸 때, 이 구름은 좋은 은폐 장소가 되었다. 당시 전투기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총탄의 양은 약 50초 정도 발사할 수 있는 양이었고, 조종사들은 아주 정확한 판단을 한 후, 사격을 해야했다. 아무렇게난 방아쇠를 당기다가는 적기를 떨어 뜨리기도 전에, 자신의 무기가 바닥이 나버린다. 이렇게 볼때, 사격술이란게 공중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데, 사격의 달인이라면 아무래도 프랑스의 에이스 른네 퐁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적기 1기를 격추시키는데 5 -6 발 이상의 총탄을 쓴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였다

 

조종사들의 나이는?

일차대전 초기의 전투 파일롯들의 평균 연령은 25세 보다 약간 아래 였다고 한다. 그러나 공중전이 계속 진행되면서, 많은 노련한 조종사들이 죽어갔고, 더 많은 조종사들이 필요로 하게 되어, 1918년에 들어서는 평균연령이 18에서 21세로 낮아졌다. 그들은 단지 30시간의 비행 수업만을 받고, 치열한 공중전에 내보내졌다.

 

마치며.....

여하튼 인류 사상 최초의 공중전이 시작된 일차대전...  초기에만 해도 겨우 하늘을 날기 시작하던 단계였으나, 대전이 끝나갈 즈음에는 놀라운 항공기 성능의 향상과 공중전 전술의 파생으로 대규모 혈전이 진행되었다. 일차대전 공중전사은 인류에게 영공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전쟁에서 항공전의 중요성을 처음 일깨워준 일대 사건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일차대전 공중전 일러스트. 위에 보이는 전투기는 연합군의 숍위드 트리플레인기이고, 아래 노란색 전투기는 독일의 알바트로스 씨리즈 중 하나인 것으로 생각되네요
 
 
 
 
 
일차대전 하면 생각나는 전투기, 독일의 포커 디알원기.. 두 개의 기관총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일차대전 공중전 양상을 잘 보여주는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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