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스크랩]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전설적인 무기상인

구름위 2012. 9. 2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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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자하로프 (Basil Zaharoff)★

 

①국적 : 프랑스 (1928년 프랑스 국적 취득)

 

②출생 : 1849년 10월 6일, 오스만 제국 물라

 

③사망 : 1936년 11월 27일, 모나코 몬테카를로

 

④직업 : 무기 밀매업자, 금융업자

 

⑤별명 : 죽음의 상인

 

⑥관여한 전쟁 : 남아프리카 보어전쟁, 러일전쟁, 발칸전쟁, 제 1차 세계대전 등

 

‘죽음의 상인’의 원조이자, 세계 최초로 국제 무기시장을 석권한 무기상

 

 

 

제 1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 프랑스, 독일이 경쟁적으로 군비를 확장하고 있는

사실을 간파하고 세 나라 모두를 상대로 무기를 팔았다.

 

영국, 프랑스, 독일에 판매한 무기의 수는 전함 4척, 순양함 3척,

증기형 소형 잠수함 55척, 전폭기 5500대, 기관총 12만 정, 대포 2400문 등이다.

 

 

사창가 삐끼에서 세계 최고의 무기상이 된 전설적인 무기 밀매업자다.

 

7개국 언어에 능통하고 언변이 좋아 무기 판매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도덕이나 의리는 무시했다.

 

판매 대상국 정치인, 관료의 약점을 파악해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는 치사한 방법을 썼고, 뇌물공세도 벌였다.

 

미남이었던 그는 여성에게 인기가 있었다.

무기 구매 결정권자의 부인이나 애인을 유혹해 영향력을 행사케 해 거래를 성사시켰다.

러시아 왕자, 그리스 왕족 등을 사칭하며 유럽 사교계를 누볐다.

 

무기 판매에 방해가 되는 평화주의자나 반전운동가 암살을 배후 조종했다.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분쟁국들을 이간시켜 전쟁을 유도하고 또 전쟁이 장기화되도록 공작을 폈다.

그리고 교전국 모두에 무기를 팔았다.

프랑스 일간지 ‘에코 드 파리’를 인수해 온갖 전쟁 관련 헛소문을 퍼뜨렸다.

 

전쟁에서 어느 나라가 이기는가는 관심 밖이다.

오로지 전쟁이 오래 지속되게 만들어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것만이 목표였다.

 

 

 

 

 

 

 

 

 

 

 

 

 

 

 

 

 

 

 

무기를 생산하면 판매책이 있어야 한다.

사실 무기는 원가를 따지지 않는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또 무기 거래는 철통 보안이 필수다.

현재 국제사회엔 수명의 큰손 무기상들이 극비리에 무기를 팔고 다닌다.

 

바질 자하로프는 이들에 앞서 세계 최초로 국제 무기시장을 석권한 원조 무기상이었다.

 

자하로프의 일생은 온통 미스터리 투성이다.

그가 일부 부끄러운 과거 행적을 말끔히 세탁했기 때문에 정확한 개인 자료는 많지 않다.

아버지는 그리스-러시아계 가계 출신이다.

어머니는 그리스 데살로니카 태생 세파라디 유대인이다.

그러나 자하로프는 평생 유대교를 믿지 않았고, 또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힌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자하로프는 부모의 불화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소년 시절 그는 삼촌이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서 경영하던 의류상에서 일했다.

이후 사창가 삐끼, 관광 가이드, 호텔 벨 보이, 환전상 점원으로 일했다.

환전상 점원 시절 위조지폐 유통에 관련돼 터키 경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삼촌의 도움으로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삼촌 회사의 영국 지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지사 자금을 몽땅 들고 튀어 삼촌과 원수가 됐다.

그는 밀수 혐의로 한때 영국 경찰의 수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1876년 자하로프는 그리스 아테네로 갔다.

정치기자 에티엔 스쿨루디스를 알게 돼 그의 소개로 스웨덴 총기 제작사 노르덴펠트의 발칸 지역 대리인으로 일했다.

이후 기관총을 발명한 맥심사가 노르덴펠트사와 제휴했다.

자하로프는 양사의 유럽 대리인이 됐다.

1895년 영국 무기 생산업체 비커스사가 이 두 회사를 합병하자 자하로프의 활동 영역은 크게 확장됐다.

 

1905년엔 러일전쟁에서 패한 제정 러시아를 꼬드겨 러시아에

대규모 무기 생산단지를 비커스사의 기술지원으로 설립했다.

물론 엄청난 커미션을 챙겼다.

 

영국은 기사 작위, 프랑스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그에게 수여했다.

1차대전 종전 후 무기 거래를 각국 정부가 주도하게 되자 자하로프는 점점 설 땅을 잃었다.

1928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은퇴하고 모나코에서 노년을 보냈다.

 

모나코 대공의 권유로 적자에 허덕이던 몬테카를로 카지노를 위탁 경영해 흑자로 전환시켰다.

자하로프는 1936년 87세의 나이로 모나코에서 세상을 떠났다.

 

평생 선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였지만 험한 꼴을 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자하로프였지만 국제정세를 내다보는 통찰력은 대단했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원유 카르텔(오일 메이저)이 조직화되고

석유가 국제분쟁의 핵심 요인으로 부상할 것임을 예언했다.

 

또 독일 재건과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도 내다봤다.

 

자하로프는 전쟁에서 어느 나라가 이기는가는 관심 밖이었다.

오로지 전쟁이 오래 지속되게 만들어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것만이 그의 목표였다.

 

자하로프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좌지우지하였고

적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출처 : 요트고래사냥
글쓴이 : 베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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