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白起 (BC331?~BC257, 혹은 258)
백기는 전국시대 진(秦)의 장군이다.
말단 병졸부터 시작하여 군의 통수권자인 대량조가 되었고, 무안군으로 책봉되었다.
중국 4대 명장 중 하나로 꼽히며 소양왕의 장수들 중 으뜸으로 꼽힌다.
그는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포위섬멸한 장평대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백기장군의 업적
신성 함락
위, 한 연합군 24만명 격파
위나라 61개 성 함락
초나라 완성 함락
위나라군 13만명 격파
조나라군 2만명 수장
한나라 5개 성 함락, 5만명 참수
장평에서 조나라군 40만명 매장
진나라의 장군으로서 전신으로 불리며 전쟁에서는 백전백승이었던 무인이다.
진나라 소왕때 BC294년에 좌서장으로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기 시작하여 BC293년에
좌경으로 승진하였고 이어 국위를 거쳐 무관으로는 최고직인 대량조가 되었다.
백기장군은 진나라의 영토를 넓혀가며 훗날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권모술수가 없는 무관으로서의 성격에다
백기의 공을 시샘하는 진나라 재상 응후와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
그 후 백기장군은 왕이 출전을 명했으나 승산이 없는 싸움에 절대 출전하지 않았고
끝내 소왕의 미움을 받아 왕이 내린 칼로 자결을 하는 비운을 맞아야만 했다.
♣장평전쟁 (長平戰爭 . BC 260)
장평전쟁은 전국시대 최대의 전쟁이다.
진나라의 백기와 조나라의 조괄이 대결하여 백기가 조괄을 죽이고 포로 40만 명을 생매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나라 포로 40만명 중 살아서 돌아간 자는 나이 어린 240명뿐이었다.
진나라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조나라 조정에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장군은 조괄 뿐 ”이라는 공작을 폈다.
이 결과 조나라의 유명한 장군 염파가 밀려나고 조괄이 군사를 지휘하게 되었다.
백기는 실전에 미숙한 조괄을 상대로 패주하는 것처럼 하다 조나라 군대의 보급로를 차단해 버렸다.
조나라 군대는 둘로 분리되었고 이런 상태에서 40여일이 지나자 식량도 떨어지게 되었다.
조괄이 주력부대로 최후 공격을 했으나 아무 성과도 없이 전사했고
주력부대가 패하자 조나라 군대는 전의를 잃고 항복하였다.
“내가 하늘에 잘못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렇게 된 것도 당연하지..
장평에서 항복한 수십만 조나라 병사를 상대로 계교를 써 생매장한 것이 바로 내가 아닌가.
죽어 마땅한 일이지"
(我何罪于天而至此哉 ... 我固當死 長平之戰 趙卒降者數十萬人 我詐而盡阬之 是足以死)
자결 직전 -백기-
백기장군은 중국인들이 뽑은 중국 최고의 장수들 중 한신과 더불어 1위에 오르기도 했었고
곽거병과 함께 최고의 무인자리에 오르기도 했었다.
'역사 ,세계사 > 중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진시황 지금의 억만장자보다 부럽다. (0) | 2012.10.08 |
|---|---|
| [스크랩] 천하무적의 선봉장, 기린아 명장 곽거병 (0) | 2012.10.08 |
| [스크랩] 당나라 명장 곽자의와 안사의난 (0) | 2012.10.08 |
| [스크랩] 중국사에서 손꼽히는 악녀, 피바람 가남풍. (0) | 2012.10.08 |
| [스크랩] 중국인 학살 (0) | 2012.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