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연장 로켓 BM-13-16 카추샤
- 2005. 11. 22 00:00 입력 | 2013. 01. 05 02:02 수정
1919년 소련은 로켓 공학자인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티초미로프를 중심으로 기체역학연구소(GDI)를 만들고 로켓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28년 무연 화약을 추진약으로 하는 사정거리 1300m의 포병용 로켓탄을 만들어 냈다. 비록 1930년 4월 티초미로프가 타계했지만 GDI는 마침내 1933년 탄체 직경 82mm의 RS-82 로켓탄, 132mm의 RS-132 로켓탄을 실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을 바탕으로 사정거리 5000~6000m급 로켓 병기의 개발이 시작됐다. 1938년 10월 화물 트럭의 차대에 실은 자주발사기에서 RS-82·RS-132 로켓탄을 발사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 시작 차량은 트럭의 짐칸을 제거하고 그 공간에 24연장 레일식 발사기를 설치한 것으로 1939년 4월에는 보다 실용성이 높은 RS-132를 이용한 16연장 선회 발사기가 완성돼 BM-13-16 자주 다연장 로켓의 모체가 됐다.
엘료자라는 가칭으로 1939년 9월부터 부대에서 실제 운용 시험에 들어간 BM-13-16은 불과 5대 만으로 중포탄 수준의 132mm 로켓탄 80발을 목표에 퍼부을 수 있었다. 15~16초 만에 모든 로켓탄의 발사가 가능하며 각 발사기의 재장전도 5분이면 충분했다.
더욱이 레일식이라 마모가 적어 포신이 필요한 일반적인 야포에 비해 수명이 길고 경제적이며, 차량화돼 빠른 시간 내에 진지 전환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군내 보수파가 낮은 명중률을 문제 삼아 반발했기 때문에 채용 여부는 불투명했다.
바바로사 작전이 발동되고 독일군을 중심으로 하는 추축군이 소련 영토에 침공한 1941년 6월22일 모스크바에 7대의 BM-13-16 다연장 로켓 발사기가 배치된 것이 전부였다. 개전에서 불과 엿새 후인 6월28일 모스크바에 있던 7대의 BM-13-16으로 독립 실험 부대가 편성됐고 이들은 진격 중인 독일 중부군 집단의 선봉을 막기 위해 오르샤로 보내졌다. 명중률이 아주 낮은 이 다연장 로켓 병기가 실전에서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아무도 몰랐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어떤 무기라도 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 제20군에 배치된 실험 부대는 1941년 7월13일 독일 중부군 집단의 선봉이던 제12기갑사단과 대치하게 됐다. 제12기갑사단 선봉 부대는 우세한 전력으로 진격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에 맞선 엘료자는 단 네 대뿐이었다. 로켓탄의 머리를 독일군 쪽으로 향한 엘료자는 특정 목표를 조준하지 않은 채 각 16발의 로켓탄을 일제히 뿜어냈다.
긴 불꼬리를 끌며 날아간 로켓탄은 곧 독일군 진지 여기저기서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고 전선 전체에서 한꺼번에 작렬하는 오렌지빛 혜성 앞에 독일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순식간에 독일군 전차와 장갑차 17대, 화포 15문이 격파되고 사상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물론 전투는 결국 독일의 승리로 돌아갔으나 이 전투는 소련군에 로켓 병기의 위력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됐다.
이후 소련은 BM-13-16의 양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전차군단·기계화군단 예하의 친위 로켓포 대대에 배치돼 독일과의 교전에 사용됐다. 일선의 소련 병사들에게는 카추샤로, 독일군에는 ‘스탈린의 오르간’으로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됐고 정확한 생산 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45년 5월1일부로 붉은 군대에 BM-13-16 2527대가 배치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붉은 군대 포병 화력의 한 축으로 활약한 BM-13-16 카추샤는 T-34 전차, IL2 슈토르모빅 지상 공격기와 함께 소련을 구한 3대 병기라는 명성을 얻으며 다연장 로켓포의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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