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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디우스

구름위 2013. 7. 14. 19:33

라틴어로 ‘검(劍)’을 뜻하는 글라디우스(gladius)는 기원전 753년에서 기원후 476년까지 계속된 로마시대 동안 로마군단의 주력 무기이며 거의 모든 로마 시민들이 사용했던 검의 총칭이다. 로마시대 동안 다양한 형태의 글라디우스가 사용됐지만 90㎝를 넘지 않는 길이와 근접전투에 특화된 사용 목적 등은 변화하지 않았고 후대까지 그대로 계승됐다. 로마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글라디우스는 서양 검의 역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중요한 검이지만 최근에는 영화와 TV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인해 검투사의 무기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기원전 13년 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인츠 글라디우스의 복제품. 진품은 독일 마인츠에서 1848년 발굴되었으며, 전체 길이 65~70㎝ 내외, 칼날의 폭은 7㎝, 무게 800g 내외의 로마제국 초창기의 글라디우스다. <출처: (CC)Nazanian at Wikipedia.org>

 

로마의 검, 글라디우스

글라디우스는 고대 로마인들이 즐겨 사용했던 양날의, 비교적 길이가 짧고, 찌르기에 적합한 한손 검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글라디우스는 로마 시대에 사용된 모든 검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주로 로마군단의 주력 무기로 사용된 글라디우스에 한하여 다루도록 하겠다.

 

로마 역사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글라디우스가 사용됐지만 가장 일반적인 글라디우스는 양날에 폭이 넓고 변형이 없는 장방형(長方形) 혹은 원통모양의 가드(guard)와 공 모양의 폼멜(Pommel, 손잡이 머리), 굴곡이 있는 원통형 손잡이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전체 길이는 64~81㎝, 칼날의 길이는 60~68㎝, 칼날의 폭은 4~8㎝ 내외에 무게는 1.2~1.6㎏ 정도였다. 로마는 동시대 다른 국가에 비해 제련 기술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글라디우스의 품질 역시 전반적으로 우수했으며 한번 칼날을 날카롭게 세우면 여러 번 사용해도 예리함을 잃지 않았다. 길이만 짧았을 뿐 칼날의 예리함이나 강한 충격에도 휘어지거나 잘 부러지지 않는 장점은 글라디우스가 오랜 기간 사용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칼집은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었고 보통 손잡이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귀족들은 취향에 따라 손잡이와 폼멜에 보석을 박거나 상아나 은과 같은 고급재질을 사용해 멋을 내기도 했다.

 

 

 

 

글라디우스의 공 모양의 폼멜과 굴곡이 있는 원통형 손잡이를 잘 보여주는 사진.
<출처: (CC)MatthiasKabel at Wikipedia.org>

 


 

  

 

 

 

글라디우스의 변천사

각각 [로마사]와 [박물지]를 저술한 로마 시대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 Patavinus)와 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Major)의 기록에 의하면 초기 로마 왕정시대의 글라디우스는 그리스식과 켈트식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글라디우스는 그리스와 켈트에서 전래된, 베기와 찌르기 겸용의 비교적 긴 검으로 기원전 7세기부터 로마군에서 사용됐다. 이후 조금씩 로마식 개량이 이루어져 기원전 4∼3세기 사이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 형태의 글라디우스가 등장했고 기원전 3~2세기 사이에는 로마군단의 병사 대부분이 글라디우스를 사용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보급 됐다.

 

물론 글라디우스의 사용법과 형태가 완성된 것은 이베리아 반도 켈트족과의 전쟁을 통해 로마군의 전투법이 체계적으로 정립된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로 본다. 특히 당시 켈트족 용병들이 사용한 짧은 외날검인 팔카타(falcata)는 표준형태의 로마 검(gladius hispaniensis)이 완성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정시대가 되면서 글라디우스는 길이로만 구별되는 두 가지 형태로 줄어들었고 글라디우스가 발견된 독일 마인츠(Mainz), 잉글랜드 풀럼(Fulham), 이탈리아 폼페이(Pompeii)의 지명을 딴 이름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들 지역에서 발견된 글라디우스는 제작 및 사용된 시기와 외형적 특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폼페이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폼페이 글라디우스의 복제품. 진품은 글라디우스 중 후기형으로 분류하며 지금까지 발견된 글라디우스 중 가장 짧은 것이 특징이다.
전체 길이는 60~65㎝ 가량, 칼날의 최대 폭은 5㎝, 무게 700g 내외이다. <출처: (CC)Rama at Wikipedia.org>

 

 

 

의도된 글라디우스의 크기

동시대 할슈타트(Hallstatt) 문화 를 비롯한 그리스, 아시아의 주요 검들이 평균 1m 내외의 길이였던 반면 글라디우스는 초기 70∼75㎝, 후기 50㎝ 전후로 결코 1m를 넘지 않았다. 이것은 의도된 것으로 글라디우스는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방패와 함께 사용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오히려 로마군의 장기인 근접전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이것은 검의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손잡이 뒤에 부착된 폼멜이 무게 추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 길이가 긴 장검은 휘두르기도 힘들고 검과 방패의 무게 균형이 맞지 않으면 방패로 자신의 몸을 방어하기도 어려웠다. 현존하는 자료에 의하면 로마병사들은 방패를 들고 적의 공격을 막으면서도 글라디우스로 상대의 가슴이나 배 심지어 허벅지 등을 찌르는 것이 가능했으며 필요하다면 검을 휘둘러 적의 창이나 검의 공격을 막고 베어 버릴 수도 있었다.

 

 

유럽의 고대무기 동호인들에 의해 재현된 로마제국의 병사들의 모습. 왼손에는 방패를, 오른손에는 글라디우스를 들고 적진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출처: (CC)MatthiasKabel at Wikipedia.org>

 

 

 

당시 로마군단의 핵심을 이루었던 중장보병은 로마 초기에는 체인메일(chain mail)을, 중기 이후에는 플레이트 메일(plate mail)을 착용했고 커다란 방패를 들고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개인 방호구가 충분했기 때문에 레기온(Legion)이라 불린 로마군단은 어깨와 어깨를 서로 맞댄, 빡빡한 밀집 대형을 이루는 그리스 중장보병과 달리 1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일렬횡대로 정렬해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특히 로마군은 투석기, 활, 투창 등 다양한 무기로 적의 기선을 먼저 제압한 다음 전투에 임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글라디우스는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마지막 순간에 사용됐다. 켈트족을 비롯해 로마의 침공에 맞서 싸운 이민족들은 개개인의 전투능력에서 언제나 로마인들을 압도했지만 대규모 전투에서는 결코 로마병사들을 압도할 수 없었다. 글라디우스의 길이는 짧았지만 방패 사이로 튀어나오는 글라디우스의 칼날은 동시대 어느 검보다도 예리했기 때문이다.

 

 

글라디우스는 검투사의 검인가?

서양 고대무기 발전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글라디우스지만 최근에는 고대 로마시대의 검투사(劍鬪士), 글라디아토르(Gladiator)의 검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글라디우스는 검투사를 소재로 한 [스파르타쿠스 Spartacus](1960, 영화)나 [글래디에이터 Gladiator](2000)와 같은 영화는 물론 [롬 Rome](2006), [스파르타쿠스 Spartacus](2010, 드라마) 시리즈와 같은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TV 드라마 등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낯선 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와 흥망성쇠를 같이한 검, 글라디우스

이들 작품 속에서 글라디우스는 검투사의 검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로마제국 병사들은 오히려 글라디우스 보다는 투창(필룸, pilum)과 방패(스큐툼 scutum)를 든 모습이 더 눈에 띈다. 물론 글라디오토르의 어원이 글라디우스에서 기원할 정도로 검투사와 글라디우스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로마의 병사들의 손에 들린 글라디우스는 그 어느 무기보다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고 대로마제국 건설에 기여했다. 글라디우스는 단순한 검투사의 무기가 아닌 로마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무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검 글라디우스가 현대인들에게 검투사의 검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