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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칼레의 시민)

구름위 2013. 3. 28. 14:37

중세 백년전쟁(1337-1453)은 프랑스 왕위 계승문제가 발단이 되어 영국과

     프랑스사이에 벌어진 왕족간 장기간의 전쟁이었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1346년 크레시 전투에서 불란서군을 격파한후

     여세를 몰아 도버해협에 연한 도시 "칼레" 를 공격하여 보급로를 끊고

     11개월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칼레시민들은 식량이 떨어지자 1347년

     결국 항복했다.

      칼레시의 지도자들은 주민들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처음 칼레시의 완강한 저항에 화가 난 에드워드3세는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려다가 생각을 바꿔 칼레시의 지체높은 지도자 6명이 맨발에 속옷만

     걸치고 목에 밧줄을 감은체 성밖으로 나오면 교수형에 처하고자 하였다.

     대신 성문 열쇠를 바치고 희생하면 주민들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고 하였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지만, 잠시후에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 외스타

     슈드 생피에르 "가 제일 먼저 나섰다.

     뒤이어 시장,법률가,귀족계급, 등 5명이 동참하였다.

     다음날 6인의 시민대표는 시장통에서 에드워드3세 진지를 향해 출발했다.

     모든 시민은 통곡하고, 애통해 했다.그리고 한없는 존중과 경의를 표했다.

     영국왕은 그들의 처형을 명했다.

     그러나 임신중이던 영국왕비는 뱃속의 태아를 위해서라도 그들을 사면해

     달라고 설득하고 애원했다.

     영국왕은 결국 6인의 시민대표들을 살려 줬다.

     "" 기적같은 반전 ""이었다.

     동시대 프르와사르(1337-1404)는 사건의 전과정을 연대기에 기록하였다.

     6인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 상징이 되었고 500년후 1884년 로뎅은 10년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고, 독일 극작가 게오르규는 "칼레의 시민 "1914년에 희곡을 썼다.

     우리도 언제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의 희생을 볼수 있을까 ?

     새삼 68% 지지율로 아들의 병역미필로 대선에 2번 낙마한 이회창이 생각난다.

     전..노..김..김..노..이..어째 찍었길래....추첨 한것보다   못해....

     훌륭한 국민속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