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코 후미코
가네코 후미코는 1920년대 제국주의로 치닫던 일본의 천황제에 홀로 맞서다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감옥에서 자살을 택했다. 그리고 그녀의 유품에는
사랑하는 조선의 한 남자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편지가 남아 있었다.
가네코는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사회로부터 무적자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과 냉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당연히 그녀의 눈에 비친
조선 민중의 아픔은 자신의 아픔과도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저항은 조선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저항한 것은 국가라는 권력이었고, 그 권력에 의해
인간의 권리와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이었다.
그녀는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무서운 학구열로
온갖 서적을 섭렵하고 도쿄의 학생들과 사상교류를 시작한다.
거기서 그녀는 박열이라는 조선인 청년을 만나게 되는데
그의 아나키즘과 인간적인 매력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사상적 동지로 정의한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의 학생들 및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여러 아나키즘 조직을 결성하고 연구와 토론을 벌인다.
박열은 정치적으로 아주 강한 투사적 기질을 가졌는데
그는 스스로를 늘 무정부주의자라 자처했지만 사실 그의 가슴속엔
누구보다도 뜨거운 조선의 피가 흐르는 민족주의자였다.
가네코는 사상적으로 완전히 무장된 아나키스트였다.
그녀는 박열에게 조선의 해방운동을 심정적으론 동조하지만
순수한 아나키스트가 아니라면 결별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녀는 박열에게 내재된 뜨거운 민족주의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묵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로자 룩셈부르크 보다 더
냉철한 사상가였지만 사랑 앞에선 너무나 연약한 여인이었다.
결국 그녀의 삶은 박열을 사랑하게 되면서 가장 극적으로 바뀐다.
박열의 따뜻한 마음과 애틋함에 여자로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지만
여자라고 배려해주는 것 조차 차별이라며 이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네코의 행복은 얼마 가지 못한다.
그녀는 순수한 아나키스트 이론가의 삶을 살고자 했지만
박열은 사상적인 죽음도 불사하는 낭만주의적 행동가였고‘
비밀리에 일본 천황에 대한 폭탄테러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부 고발자에 의해 박열과 가네코 그리고 20여명의 동지들이
체포되고 혹독한 조사가 시작된다. 박열은 자신의 계획과 무관한
가네코와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단독범행이라 주장하지만
가네코가 이를 거부하고 자신도 공범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두 사람은 사랑하면서부터 서로 다짐하기를 어느 한 쪽이
사상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면 운명을 함께 하기로 했었다.
그 약속을 가네코는 주저 없이 지키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의 적극적인 자백으로 나머지 동지들이 모두 풀려나자
그들은 옥중에서 맹렬한 사상투쟁을 전개한다. 이런 모습에서
담당검사는 인간적인 동정과 국가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하게 되고 나중엔 옥중결혼식까지 올려주기도 한다.
일본 당국은 이 사건이 국내외적으로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일부 지식인들의 구명운동과 탄원이 빗발치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즉, 천황의 자애로움을 알리자는 것이다.
당국은 두 사람에게 천황의 은사를 받으라고 종용하였다.
죄를 감형해 줄테니 천황에게 감사의 전향서를 쓰라는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신념대로 처형되기를 바랬지만
당국은 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온갖 방법으로 회유하였다.
그래도 안 되자 두 사람을 완전히 격리시키고 서신왕래까지 금지했다.
그러자 가네코는 이 몇 달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보냈다.
여성 특유의 강한 모성애로 박열의 건강을 끊임없이 걱정했으며
혹시 모를 감형으로 인해 자신의 사상적 투쟁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감옥에서 목을 맨다.
투옥 된지 2년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네코 후미코.
그녀는 어떠한 인간도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생사의
권한을 부여할 수 없다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유해는 화장되어 박열의 고향인 경북 영천에 안장되었다.
박열은 이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전향을 하여 20여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해방과 함께 석방된다.
그리고 그는 조총련과 각을 세우는 재일본 거류민단의 초대회장을 맡아
민주주의자로 변신하여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6.25때 납북되어 통일단체의 대표를 맡아
가장 잔인한 권력자 밑에서 공산주의자로 또 다시 변신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온한 삶을 살다가 76세에 사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네코는 남한에 묻혀 그를 기다렸지만
박열은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북녘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