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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무기 A-24(돈트리스 급강하폭격기)

구름위 2013. 3. 20. 19:14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무기 A-24(돈트리스 급강하폭격기)

 

 

1941년 12월 7일 태평양전쟁의 시작은 제로센의 날개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하와이 진주만의 태평양함대에 대한 일본의 기습공격은 성공했는데요.

일본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오던 미국도 일본의 마지막 '도라 도라 도라' 의 무전과 이른 아침시간에 발생했던 일본 소형잠수함의

침투를 간과하여 보고를 하지않았던 장교의 실수가 크나큰 대침략의 조짐을 놓쳤던 것이죠.

 

실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미함대는 불행중 다행으로 항공모함은 한대도 피해를 입지 않게됩니다.

마침 기동훈련으로 진주만에 정박하지 않았던 미군 항공모함 들은 훗날 설욕전의 반격을 가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진주만 기습이라는 전대미문의 대단위 기습의 침략공격을

당한 소식에 미국은 경악을 했고, 더구나 백악관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가증스러운 일본의 공격에 곧 응전태세를 명령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미공군의 뛰어난 조종사이자

비행교관이었던 '제임스 두리틀' 대령의 작전으로,

 

B-25 미첼 폭격기 편대의 1942년 4월 18일 '도쿄' 에 대한 폭격

은 그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었다해도 일본인들에게 대단한

충격을 주게 됩니다.

 

이에 놀라 발칵 뒤집어진 일본은 차후 미군 폭격기의 일본본

토 폭격의 기지가 될 수 있는 미드웨이 군도점령을 나서게됩

니다. 그러나 미군 해군정보부에는 '조셉 로슈포르(Josep

Rochefort)' 정보부장이라는 명민한 작전참모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해군의 암호를 도청하던 중 일본의 미드웨이 침공의 확실성을 다시한번 확인하기 위해 미끼를 던지게됩니다.

미드웨이에 식수가 부족하다는 거짓정보를 무선으로 보냈고, 이것을 포착한 일본군 무전 탐지병은 일본군 상부에 보고하게

됩니다. '로슈포르'의 낚시는 보기좋게 먹혀들어가 미드웨이의 미군은 일본군의 총공세를 대비하게 되었죠.

 


'로셉 로슈포르'는 진주만의 침공도 예안한 바 있었던 해군

정보부의 대단히 명민하고 우수한 두뇌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일본연합 함대는 1942년 6월 4일 '나구모' 사령

관에 의해 4척의 항공모함을 동원한 선단에 의하여 병력이

거의 없는 미드웨이 군도를 공격하게 됩니다.

'나구모' 제독은 미군 항공모함이 미드웨이 주변에 있는것을

몰랐고, 미군본진의 소재를 몰랐던 일본군은 헛수고의 폭격

하게됩니다. 미드웨이 폭격을 나간 전투기들은 다시 항공

모함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 항모 아카기의 함상에서는 2차폭격을 대비하고

있던 제로센 기의 장착어뢰를 350kg의 투하용 폭탄으로 교체

하라는 명령으로 교체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의 스트

로베리 정찰기는 미해군의 운명이 걸린 일본 항모대열의

위치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넓은 미드웨이 수역을 수색하고

있던 중이었죠.

 

그러나 정찰기보다 먼저 일본함대를 발견했던 것은 바로 미군항모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했던 '맥클라스키' 중령의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 편대였습니다. 미군 잠수함과 교전을 벌이던 일본 구축함 아라시를 발견하고 잠수함을 놓친

아라시는 연합함대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구축함을 따라 4,000미터 고도에서 비행하던 이들편대는 얼마 후 일본 항공모함선단을 발견하게 됩니다.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먹이를 발견한 듯 바로 눈앞에 놓인 거대한 4대의 항공모함을 향해 쏜살같이 돌진하게 됩니다.

 

 

돈트리스 폭격기 편대의 1,000파운드의 폭탄 다발 공격에 일격을 당한 일본군 항공모함 '아카기' '카가' '소오류우'는

거의 5분만에 태평양의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함상에서 폭탄교체 작업을 하던 일본항모는 미군의 폭격에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단시간에 침몰하게 되었고, 일본 항공모함

히류의 함재기들은 출격한 후 미항모 요크타운을 대파시켜 6월 6일 일본잠수함 [이168]호의 어뢰에 격침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항모 [히류우]는 대파되어 3척의 일본항모가 격침된지 하루가 지난 후 일본잠수함의 어뢰로

자침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미드웨이에서 벌였던 이 해전은 앞으로 도래될 태평양해전에서의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일본은 연합함대의 주축이었던 귀중한 항공모함 4척을 잃었고, 무엇보다도 진주만 기습에도 참가했었던 베테랑 조종사들을

포함한 3,500여명의 인력과 300대 전투기를 함께 손실로 잃고 제공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반면, 미군은 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성과 뿐 아니라 일본을 패퇴시킬 귀중한 시간을 벌었던 것입니다.

 

이후 미군의 공격은 가속이 붙어 태평양전선의 곳곳에서 전개되었고, 일본은 점점 본토로의 수세적 후퇴를 하게됩니다.

이 태평양전쟁의 분기점에 결과적인 역사의 일탄을 던진 항공기는 다름아닌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였던 것입니다.

 

 

돈트리스 급강하폭격기의 역할은 대단해서 과달카날전투의 솔로몬해전에서도 일본항모 류조를 격침시켰고,

산타크루즈 제도 전투에서는 일본항공모함 '쇼오카쿠'와 경항모 '즈이' 중순양함 '치쿠마' 를 대파시켰습니다.

1942년 11월의 전투에서는 일본순양함 '기누가사'와 9척의 수송선을 침몰시켰고, 돈트레스 급강아하 폭격기가 격침시킨

일본선박의 총량은 30만톤에 달했습니다. 항모와 함께 가라앉힌 비행기 댓수는 140여대.

반면 2차대전 종전까지 격추된 돈트레스 급강하 폭격기의 댓수는 100여대 정도였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 전기간에 사용된 미군항공기 종류 중 제일 낮게 격추된 수였습니다.

 

 

미군해군의 귀중한 병기였던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는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기틀을 마련해준 역사적인 급강하폭격기로

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