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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심 기관총으로 마타벨레 부족 전사 8만명을 궤멸시킨 영국군

구름위 2013. 3. 1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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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부터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던 영국은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British South Africa Company)를 설립하고 우선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롯한 남부 아프리카 지역을 군사적으로 정복하는데 열을 올렸다.

 

  이 때, 등장한 유명한 식민지 개척자가 있으니 바로 세실 로즈(Cecil Rhodes)였다.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의 경영자이기도 한 그는 오늘날 짐바브웨의 서남쪽 지방인 마타벨랜드(Matabeleland)를 정복하기 위해 7백 명의 영국군과 식민지 용병들을 이끌고 1893년 마타벨랜드의 토착민인 마타벨레(Matabele) 족과 전쟁을 벌였다.

 

 

 

 

  (상가니 전투에서 마타벨레족과 싸우는 영국군. 리처드 카톤 우드빌Richard Caton Woodville이 1893년 남긴 그림.)

 

 

  당시 마타벨레 족의 왕, 로벤굴라(Lobengula)는 창과 방패로 무장한 8만 명의 전사와 최신형 9파운드짜리 영국제 소총인 헨리-마티니 라이플(Martini-Henrys)을 갖춘 2만 명의 병사를 거느렸다. 하지만 마타벨레 족들은 총을 정확히 조준하지 않고, 마치 창을 던지는 것처럼 높이 겨낭하고 아무렇게나 쏘아댔으므로 명중률은 형편없었다. 그들의 주무기는 어디까지나 수백년 동안 사용했던 짧은 창이었다.

 

  마타벨렌드는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이 심한 산지와 울창한 삼림으로 이루어져 방문하는 사람의 시야가 매우 불편했다. 로벤굴라는 이런 험준한 지형과 10만 명의 병사들을 믿고서 자신만만한 태도로 영국군을 기다렸다.

 

 

 

 

                                                          (1890년 촬영된 마타벨레족 전사)

 

 

  1893년 11월 1일부터 시작된 마타벨레 전쟁은 그러나 로벤굴라의 예상을 뒤엎고 영국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당시 정황을 묘사한 기록에 따르면 마타벨레 전사들은 누구도 영국군 진영으로부터 1킬로미터 이내에 다가오지 못하고 무참하게 죽어나갔다고 한다. 약 50명의 영국인 병사들이 조종하는 4정의 맥심 기관총이 무려 5천 명의 마타벨레 전사들을 다가오는 족족 총탄을 퍼부어 쓰러뜨린 것이다.

 

  마타벨레 전쟁의 결과, 마타벨레 전사들은 맥심 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군을 도저히 패하지 않는 무적의 존재로 여길 정도였다.

 

  1894년 1월, 일단 영국에 굴복한 마타벨레 족은 2년 후인 1896년에 다시 영국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켰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지난번 전쟁과 똑같았다. 아니, 더욱 참담했다. 영국군은 고작 4백 명의 군인들이 전사했을 뿐인데 반해, 마타벨레 족은 무려 5만 명이나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으니 말이다. 마타벨레 족 전사들을 대량 학살한 주범은 역시 영국군이 장비한 맥심 기관총이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맥심 기관총)

 

 

  마타벨레 전쟁 이후로 맥심 기관총은 자신의 존재 가치와 막강한 위력을 인정받아 세계 각국의 군사 장비로 속속 채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