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역사속 신무기<117>S-32 산 루이스(San Luis)

구름위 2017. 1. 11. 20:17

역사속 신무기<117>S-32 산 루이스(San Luis)

영국 대잠감시망 돌파한 재래식 잠수함
2009. 05. 25   00:00 입력 | 2013. 01. 05   04:40 수정


흔히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의 세리에 A, 에스파냐의 프리메라리가는 세계 3대 프로축구 리그로 손꼽힌다.

이들 프로축구 리그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공격축구를 유도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친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공격수(striker)는 팀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항상 가장 높은 인기와 연봉을 독차지한다. 반면 상대편 공격수로부터 골문을 지켜야 하는 골키퍼와 수비수들의 중요성은 종종 간과되거나 평가절하되기 일쑤다.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현대 무기체계 중에도 골키퍼 혹은 수비수 같이 그 역할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존재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무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전쟁 중 하나로 손꼽히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활약한 아르헨티나 해군의 S-32 산 루이스(San Luis·사진) 역시 골키퍼 혹은 수비수에 해당하는 무기라고 할 수 있다.포클랜드 제도를 탈환하기 위해 출동한 영국 해군 기동부대를 견제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해군 전투함 중 가장 먼저 출동했을 뿐만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영국 해군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만약 S-32 산 루이스의 공격이 성공해 영국 해군이 약간이라도 타격을 입었다면 포클랜드 전쟁의 결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살타급(Salta class) 2번함으로 1974년 아르헨티나 해군이 전력화하고 97년 퇴역한 산 루이스는 수상배수량 1140톤, 수중배수량 1248톤에 전장 55.9m, 전폭 6.3m, 흘수 5.5m의 잠수함이다.

수상 21.5knots, 수중 11knots로 항해할 수 있었으며 최대 항속거리는 스노클을 사용해 디젤엔진으로 항해할 경우 8knots로 1만4400㎞, 배터리를 사용하거나 수중 항해할 경우 항속거리는 4knots로 720㎞였다. 승조원은 32명이었으며 선수에 533㎜ 어뢰발사관 8문이 있었고 최대 SST-4 및 Mk. 37 어뢰 14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비록 공격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산 루이스는 디젤잠수함 특유의 정숙성을 바탕으로 영국 해군의 대잠감시망을 손쉽게 돌파했고 무려 세 번이나 어뢰를 발사하고도 포착되지 않았다. 한편 산 루이스를 격침하기 위해 영국 해군은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대잠전력을 동원했는데, 6월 14일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영국 해군이 사용한 폭뢰와 어뢰의 수만 해도 200발이 넘었을 정도였다.

산 루이스는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5월 17일 귀환했는데 이것은 영국 해군의 대잠작전 때문이 아니라 주요 장비의 고장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임무수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전쟁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산 루이스 역시 영국 해군 함대를 견제하는 본연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으며 이를 통해 재래식 잠수함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포클랜드 전쟁 이후 원자력 잠수함 만능주의에 빠져 있던 각국 해군은 비대칭 전력으로서의 재래식 디젤잠수함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됐다는 점에서 산 루이스는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역사속 신무기<118>구소련 전략원잠 K-19

냉전 초기 야심차게 개발 실전배치
2009. 06. 01   00:00 입력 | 2013. 01. 05   04:41 수정

전략원잠(Ship Submersible Ballistic Nuclear·SSBN)은 동서냉전이 탄생시킨 최강의 보복 무기이자 가장 치명적인 비대칭 무기 중 하나다.

일단 출항하고 나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을 다수 탑재하고 은밀히 해저를 항해하는 전략원잠을 탐지하거나 추적하기란 해변에서 보석을 찾는 것과 같다.

그러나 군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추진기관을 사용하는 전략원잠은 그 자체만으로도 양날의 칼이다. 특히 냉전 초기 구소련이 야심차게 개발해 실전 배치한 전략원잠 K-19(SSBN·사진)는 운용과정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와 인명손실로 인해 저주받은 잠수함으로 악명을 날렸다.

동서냉전 초기 실용화된 원자력 잠수함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작전반경,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정숙성, 그리고 기존 재래식 잠수함의 전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작전 능력으로 환영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과 구소련은 앞다퉈 전략원잠을 건조했고 호텔급(Hotel class) 전략원잠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K-19 역시 이 시기에 등장한 다양한 전략원잠 중 하나다.

사실 K-19는 기존 골프급(Golf class) 디젤 잠수함을 추진기관만 원자력기관으로 교체한 반쪽짜리 전략원잠으로 건조됐다. 당연히 추진기관 외에 외형이나 무장 등은 골프급과 동일하며 세일을 연장해 사정거리 1200km급 SS-N-4 탄도미사일 3기를 장착했다. K-19는 전장 114.1m, 전폭 9.2m, 전고 7.1m에 승조원은 139명이 탑승했으며 수상 배수량 4030톤, 수중 배수량 5000톤으로 최대 50일 동안 작전할 수 있었다.

전략적 관점에서 K-19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구소련 해군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K-19는 첫 항해에서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사고를 당했다. 일부 승조원들의 영웅적인 희생과 필사적인 복구작업을 통해 K-19는 원자로가 녹아 버리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지만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군함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다.

방사능에 직접적으로 노출됐던 8명의 승조원이 사망했고, 이후 2년 동안 방사능에 피폭됐던 14명의 승조원이 추가로 사망했다. 생존한 나머지 117명의 승조원들도 방사능 피폭 정도에 따라 크고 작은 질병과 후유증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이후에도 K-19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빈번히 발생했으며 구소련 해군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략원잠으로서의 군사적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많은 사람이 전략원잠은 안전하다고 믿고 있지만 K-19 운용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고사례는 역설적으로 전략원잠의 운용에 얼마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밀폐돼 있고 수중을 항해하는 전략원잠의 특성상 작은 실수라도 방사능 누출과 같은 치명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소련 해군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잦은 사고와 인명사고로 ‘히로시마’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던 K-19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