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역사속 신무기<85>사브르(sabre

구름위 2017. 1. 11. 19:39

역사속 신무기<85>사브르(sabre)

가볍고 타격시 치명적인 ‘기병도’
2008. 09. 29   00:00 입력 | 2013. 01. 05   04:07 수정


기원전 13세기경 처음 전장에 등장한 이후 20세기 초까지 기병(騎兵)은 무장과 운용전술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지상군 최고의 정예 집단이자 핵심 전력으로 활약해 왔다.

물론 화약무기의 등장과 발전은 기병의 존재에 큰 위협이 됐는데, 일예로 16세기 유럽 전장에서 전투 기병이 대포와 화승총으로 무장한 보병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화약무기가 점점 강력해짐에 따라 무거운 갑주와 다양한 무기로 무장한 중장기병 대신 가벼운 무장과 기동력이 강조된 경장기병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7세기 초 유럽의 경장기병은 피스톨(pistol), 또는 카빈(carbine)으로 불린 기병용 화승총과 현대까지도 가장 대표적인 기병도(騎兵刀)로 평가받는 사브르(saber·사진)로 무장하고 전장에서 활약했다.

한 손으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적당히 길고, 일격으로도 적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사브르는 길이 70∼120㎝, 무게 1.7∼2.4㎏에 완만하게 휘어진 검신이 특징이다.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슬라브계 헝가리인들을 통해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브르는 9세기경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을 통해 페르시아에 전래되고 십자군 전쟁을 통해 다시 이슬람세계에서 유럽으로 전래된 샴쉬르(shamshir)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유럽에서 사브르를 처음 사용한 나라는 16세기 스위스로 슈바이체르사벨(schweizersabel)이라 불렸으며 날의 3분의 1은 양쪽날, 나머지 3분의 2는 한쪽 날이라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독일 역시 독특한 형태의 사브르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싱클레어(sinclair) 사브르라 불린 이 검은 긴 막대기 모양의 가드와 여기에 연결돼 손을 보호하는 목적의 너클 보우(knuckle bow)가 특징이다. 영국은 17세기부터 사브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예리한 칼날에 찌르기용으로 특화된 이 기병도는 백 소드(back sword)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흔히 사브르는 검신이 완만하게 구부러진 외날 검으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의 사브르는 사용 용도가 하나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대와 군대에 따라 외형 역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초기의 사브르는 외형에 따라 검신이 곧은 검, 반만 굽은 검, 완전히 굽은 검으로 나눌 수 있으며 사용 목적에 따라 찌르기용과 베기용, 그리고 양쪽 겸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브르는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구스타프 아돌프(Gustavus Adolphus)의 스웨덴 기병과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의 철기병(鐵騎兵)의 주력무기로 사용됐다. 이후 사브르는 흉갑기병(胸甲騎兵·cuirassier)으로 상징되는 근대기병의 대표적 무기로 자리 잡았고 기병이 말을 버리고 장갑차와 헬리콥터를 타기 전까지 기병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한편 사브르는 16세기 등장한 용기병(龍騎兵·dragoon)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이들은 말을 타고 이동만 했을 뿐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말에서 내린 상태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역사속 신무기<86>총검<bayonet>

작지만 날카로운 칼날 지닌 ‘검’
2008. 10. 06   00:00 입력 | 2013. 01. 05   04:07 수정

신무기의 등장은 활용 정도에 따라 전투의 승패뿐만 아니라 전쟁 양상을 근간에서부터 변화시킬 정도의 파급력을 갖고 있다.

일예로 초기 화승총의 하나인 아퀴버스(arquebus)는 여러 가지 기술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1525년 벌어진 파비아(Pavia) 전투 이후 유럽의 전쟁 양상을 근간에서부터 뒤바꿔 놓았다. 반대로 전략과 전술 변화에 따라 기존에 사용되던 무기가 전혀 새로운 형태와 용도로 재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1647년 벌어진 이프르 전투(Battle of Ypres)에 처음 사용된 총검(銃劍·bayonet·그림)은 이러한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대표적 무기다.흔히 우리는 병사가 자신의 소총에 결합(着劍)해 사용할 수 있는 작지만 날카로운 칼날을 지닌 군용 단검을 총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총검의 원래 형태가 칼이 아닌 창(pike)이며 16세기 이후 유럽 전장에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창병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총검은 시대적 요구에 의해 등장한 무기다. 화승총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발사속도와 명중률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15세기 전투의 승패는 창병과 화승총병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운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16세기 이후 화승총의 성능과 신뢰성이 점점 향상됨에 따라 창병의 중요성은 차츰 반감됐고 결국 창병은 전투의 주체가 아닌 화승총병을 보호하는 보조역할로 축소됐다. 하나의 무기에 창과 화승총의 장점을 결합한 총검이 등장하면서 결국 창병은 완전히 전장에서 모습을 감추게 됐다.

최초 등장한 총검은 머스킷(musket)의 총구에 창날을 그대로 삽입하는 ‘마개식 총검’으로 단순히 화승총 총구에 창날을 덧붙인 것에 불과했다. 총검이 총구에 삽입돼 완전히 막아버렸기 때문에 발사는 불가능했고 화승총병은 사격 후 적이 근접하면 총알을 재장전하는 대신 총검을 부착하고 창병처럼 싸웠다.

물론 총검 하나로 순식간에 화승총부대를 창병부대로 전환시키거나 그 반대도 가능했기 때문에 최초 등장한 총검은 매우 효율적인 무기로 인식됐다.몇 차례 실전을 거치면서 발견된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1678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리식 총검’(ring bayonet)이 발명됐다.

‘고리식 총검’은 총구 속이 아니라 총신의 외부에 총검을 장착할 수 있게 돼 있었고 이로써 병사들은 착검 상태로 화승총을 재장전하거나 발사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화승총병 창병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게 됐고 창병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1704년 영국에서 가장 먼저 창병이 사라졌고 이후 유럽 각국은 창병을 편제에서 제외했다.

일부 국가만이 왕실근위대 혹은 의전부대의 일부로 창병을 유지했을 뿐이다. 시대적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궁극적으로 총검의 등장은 유럽뿐만 아니라 근대 보병전투의 양상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화약무기를 넘어 레이저무기와 전자무기가 보편화되고 각종 첨단 무기가 난무하는 현대 전장에서도 여전히 보병은 총검을 가장 기본무기로 휴대하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