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역사속 신무기<51>‘노’(弩)
구름위
2017. 1. 1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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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신무기<51>‘노’(弩)
- 삼국시대 기병부대의 주요 공격무기
- 2008. 01. 14 00:00 입력 | 2013. 01. 05 03:32 수정
굳이 손자병법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계속된 춘추전국시대 동안 중국인들은 서양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전술을 구사했다.
전쟁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당연히 이에 적합한 다양한 무기가 개발돼 사용됐고 그중 일부는 서양 세계보다도 더 일찍 출현했거나 더 우수한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화살이나 돌을 손쉽고 정확하게 쏠 수 있고 기원전 5세기께 대량으로 보급돼 15세기까지 사용된 노(弩·사진) 역시 이러한 범주에 포함할 수 있는 신무기다.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에서 등장한 가스트라페테스(gastraphetes) 보다 훨씬 작고 사용하기 손 쉬었기 때문에 기병부대의 주요 공격무기로 삼국시대 촉(蜀)을 중심으로 널리 사용됐다.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와 개량이 가해졌지만 보통 전체 길이 50∼80㎝에 폭 120㎝, 무게 8∼10㎏ 내외의 것이 많이 사용됐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는 소설로 유명한 ‘묵향’에도 묘사됐듯이 송나라는 신비궁(伸臂弓)으로 불린 노를 개발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가다. 신비궁은 11세기께 송나라 이굉이 발명했다고 하며 400m 이상의 거리에서도 금속제 갑옷을 관통할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 전체 길이 100㎝, 폭 140㎝에 무게는 8㎏이었으며 12세기에는 더욱 위력을 강화시킨 극적궁(克敵弓)과 신경궁(神勁弓)이 등장했다.
물론 노는 만능 무기는 아니었다. 서양 세계의 크로스보우와 마찬가지로 최초의 노는 유효 사정거리가 150m 내외였고 장전에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에 적과 근접전이 벌어지면 2발 이상 발사할 수 없었다. 노의 연사 속도가 문제되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연노(連弩)가 기원전 475년 등장해 청나라 말기인 1912년까지 계속 사용됐다.
길이 75∼100㎝, 폭 80∼140㎝에 무게는 1∼4㎏ 내외의 것이 사용됐으며 본체에 10개 내외의 화살을 장전할 수 있는 탄창이 있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줄을 당겨 화살을 연속으로 쏘았다. 연사를 위해 시위의 강도를 약화시키고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최대 유효 사거리가 35m로 뚝 떨어졌지만 근거리에서는 꽤 위력을 발휘했고 황궁이나 주요 시설의 경비용 무기로 활용됐다.
한편 속일본기와 같은 문헌에 따르면 중국의 노는 일본에도 수출돼 710년 나라시대에서 1185년 헤이안시대가 끝날 때까지 전쟁에 사용됐다. 등장 초기에는 강력한 위력과 사정거리로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갑옷 한 벌과 맞먹을 정도로 높은 제작 비용과 속사가 불가능한 단점 때문에 가마쿠라시대라 불린 1200년께에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중국의 노는 한민족 고유의 쇠뇌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으나 서양의 크로스보우와는 전혀 출발점이 다른 무기다. 단궁보다는 우수하고, 장궁보다는 성능이 뒤떨어졌기 때문에 다른 무기들과 상호보완적으로 관계를 이루며 무기로서의 위력을 발휘했다.
충분한 실증과 토론을 거치지 못한 동양전쟁사, 나아가 동양사 전체가 신뢰받지 못하는 현실로 인해 노의 가치 역시 평가 절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한국과 고대 중국이 동 시대의 다른 문명보다 더 높은 수준의 발전된 문명과 문물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노를 비롯한 동양 무기의 가치는 재평가돼야 할 것이다.
역사속 신무기<52>화창 (火槍)
- 막대기에 화약통 매달아 만든 최초 화약무기
- 2008. 01. 21 00:00 입력 | 2013. 01. 05 03:33 수정
특히 화약의 발명과 화약무기의 등장은 전쟁 아니 인류역사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다.
화약이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최초의 화약무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과 이견이 존재한다. 그럼 최초의 화약무기는 무엇이며 누가 처음으로 사용했을까?중국식 발음으로 호치앙이라 불린 화창(火槍·사진)은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막대기 끝에 화약통을 매달아 만든 최초의 화약무기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화약통의 화약이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화염이 전방으로 방사되는 화염 방사기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화약을 이용한 원식적인 무기였지만 근거리에서는 화력에 노출된 적에게 화상을 입히거나 적 장비를 불태울 수 있었고 대량으로 사용함으로써 그 효과를 배가할 수 있었다.
화창의 정확한 등장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하나 보통 둔황(敦煌) 석굴에서 출토된 불화(佛畵)를 근거로 오대십국(五代十國·907∼960) 시대에 이미 존재한 것으로 추정한다. 길이 180∼220㎝의 창대에 50∼60㎝ 정도 크기의 화약통을 부착했고 전체 무게는 2∼3㎏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화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화약통은 금나라까지는 종이를 8∼16겹으로 말아 만든 종이 통이 사용됐으며 명나라 때부터 철로 만든 철통이 사용됐다. 화약통에는 화약뿐만 아니라 숯·철가루·유황 등 다양한 소재를 혼합해 넣어 더욱 강력한 화염과 연소가스에 의한 연막·호흡곤란 등 부수효과도 도모했다.
화창의 개량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화약무기가 등장하면서 화창은 공성전(攻城戰)과 같은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사용됐다. 다만 화약무기를 처음 접한 적에게 화창은 그 위력을 떠나 매우 놀라운 병기였고 적절한 심리전이 병행될 경우 적에게 심리적 타격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장기간 사용됐다.
그뿐만 아니라 화창은 총과 로켓의 원형이 되는 돌화창(突火槍)과 화전(火箭)의 등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으로 중국인들은 총을 화창 또는 기관창(機關槍)이라 부른다.한편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의 화창은 남송 시대인 1132년 덕안(德安) 전투에서 송나라 군대가 사용한 이화창(梨火槍)이다.
남송 시대에 성의 수비 병기로 적의 투석기와 공성탑·사다리차와 같은 병기를 공격하는 데 사용됐으며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창이다. 길이 200㎝ 내외의 창대와 30㎝ 정도의 창날이 달린 장창(長槍)에 60㎝ 정도의 화약통을 부착한 이화창은 화창 중 가장 긴 3m의 유효 사거리를 갖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화창은 대나무 통에 철화포(鐵火砲)에 사용하는 화약을 채워 넣은 뒤 대나무 장대에 이를 묶어 사용한 것이 최초이며 이후 수성용 무기로 규격화된 이후 대량생산됐다.화창의 등장은 화약을 무기로 사용한 최초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이후 화약무기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