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E-3 센트리
구름위
2017. 1. 9. 19:52
E-3 센트리
- 2006. 10. 30 00:00 입력 | 2013. 01. 05 02:36 수정
하지만 시간과 주도권의 중요성이 결정적으로 구체화된 것은 하늘을 빠르게 날 수 있는 항공기가 등장한 때부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영국 항공전 당시 사용된 영국의 체인 홈이나 이후 유럽 방공전에서 활약한 독일의 캄후버 라인 같은 레이더 경보 체제가 등장하면서 항공전에서 적의 의도를 미리 알고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 요소로 부각됐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제트기나 미사일 같은 보다 빠른 비행체가 등장하고 지상 혹은 함상에 배치된 레이더의 제한된 탐지 범위로는 제시간에 대등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보다 멀리에서 더 빨리 적의 의도를 포착할 수 있는 조기경보 수단, 즉 조기경보기가 필요해졌다.
조기경보기의 필요성에 가장 먼저 눈뜬 것은 함선의 높이나 용적 제한으로 고출력 대형 레이더를 쓸 수 없던 미 해군이었다. 미 해군은 보다 높이 올라갈 수 있는 항공기에 레이더를 달면 탐지거리를 늘릴 수 있다는 발상으로 조기경계·지휘통제기의 개념이 채 정리되기도 전인 1954년 대잠용으로 사용하던 S-2 트래커에 레이더를 설치한 E-1 트레이서를 조기경보 임무에 투입했다. 이어 64년에는 보다 대형인 C-2 그레이하운드 기체에 회전식 레이더 돔을 장착한 전천후 조기경보기 E-2C 호크아이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들은 프로펠러 엔진식 함재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크기나 속도, 처리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65년 12월 22일 미 공군 지휘부에 관련 획득 부서가 만들어지고 이어 67년 3월 지상에 넓게 분산돼 임무를 수행 중이던 지휘·통제·통신체계를 항공기에서 구현하는 조기경보통제기(AWACS)의 개념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실제적 임무는 소련 측 폭격기의 내습에서 유럽 지역을 지킬 수 있는 공중 방어망의 구성이었다. 70년 7월, 치열한 경쟁 끝에 보잉사가 AWACS 개발 프로그램 주계약자로 선정됐다.
같은 해 9월에는 웨스팅하우스사가 부계약자로 선정돼 레이더 체계 개발을 담당했다. 75년 10월부터 기술 시험과 평가를 거쳐 77년 3월 E-3 센트리가 제552항공경보통제비행단에 배치되기에 이른다. E-3 센트리(사진)는 보잉 707-320의 동체를 개조, 직경 9.1m, 최대 두께 1.8m의 회전식 레이더 돔을 장착한 기체다. 이 레이더 돔에는 1Mw 출력의 도플러식 레이더 등 탐지장비가 달려 있어 반경 200마일 이내의 저고도 비행체는 물론 위성 비행체를 필두로 한 중·고고도 비행체의 탐지·추적·식별이 가능하다.
E-3는 주익 내 연료탱크에는 총 9만500ℓ의 연료를 적재, 재급유 없이 8시간 이상 비행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비행 중 공중 급유로 임무 범위와 가동 시간을 늘릴 수 있다. E-3는 걸프전 당시 총 845소티, 도합 1만500시간 동안 조기경보와 지휘통제 임무를 수행하며 12만 건 이상의 탐지·추적 실적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총 40건의 격추 중 38건의 공중 관제를 수행하며 조기경보기나 공중전 지휘·통제기로 그 능력을 입증했다. 92년 말까지 68대가 만들어져 오늘날에도 각국에서 조기경보와 지휘통제기로 사용되며 유사한 체계를 개발하려는 국가들에게 국제적으로 널리 벤치마킹되고 있다.
메르카바 Mk1
- 2006. 11. 06 00:00 입력 | 2013. 01. 05 02:37 수정
제4차 중동전 이후 널리 보급된 AT-3나 RPG-7 같은 대전차 무기로도 질풍노도와 같이 진격하는 이스라엘군의 진격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이스라엘군의 고속 진격에 놀란 시리아가 당시로서는 최신형인 T-72 전차를 급히 투입시킬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됐다. 이처럼 이스라엘 기갑부대가 고속 진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반응장갑과 신형 메르카바(Merkava·사진) Mk1 전차 때문이었다.레바논 침공 선봉으로 전장에 등장, 그 뛰어난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메르카바 Mk1 전차는 이스라엘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최초의 국산 전차다. 4차에 걸친 중동전과 크고 작은 분쟁을 겪은 이스라엘 육군의 실전 경험이 반영됐고 사막과 도심에서의 작전에 최적화돼 있다.
메르카바 Mk1 전차 개발은 70년 자국산 주력 전차 등장에 목말라하던 이스라엘 육군의 오랜 염원과 제3차 중동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 탈(Tal) 장군이 개발을 진두지휘했고 시제 1호차는 74년 완성됐다. 이후 순조롭게 양산에 들어가 79년 제7기갑여단에 양산 1호차가 실전 배치됐다.메르카바 Mk1 전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세계 각국의 군사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실전 경험이 반영됐다고는 하지만 메르카바 Mk1 전차의 외형은 독창적이라기보다 돌연변이에 가까운 기묘한 형태 때문이다.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엔진을 차체 전방 우측에, 포탑은 차체 중앙에서 약간 후방에 배치했고 전체적으로 긴 화살촉과 같은 형태의 포탑은 폭이 좁고 높이가 낮았다. 차체 후방에는 62발의 포탄을 적재할 수 있는 탄약고를 설치했고 포탄의 재보급을 위한 출입문도 설치했다. 게다가 대전차 미사일 진지와 보병을 공격하기 위한 60㎜ 박격포까지 장비하고 있었다.
전차라기보다 자주포에 가까운 이런 외형은 보편적인 전차 설계 개념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바논 침공을 통해 메르카바 Mk1 전차는 이러한 논란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특히 시리아군과의 전투에서는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당시로서는 최신의 T-72 전차를 모두 격파했다. 이를 통해 메르카바 Mk1은 현존하는 전차 중 가장 실전적인 전차라는 찬사를 받았다.
메르카바 Mk1에서 시작된 이스라엘 국산 전차의 역사는 지속적인 개량과 성능 향상을 통해 메르카바 Mk2, 메르카바 Mk3를 거쳐 현재 메르카바 Mk4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현재 실전 배치 중인 메르카바 Mk4는 최첨단 전자기술이 집약된 4세대 전차로 평가받는다. 메르카바 전차는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최강의 주력 전차로 그 명성을 계속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