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번역한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 시리즈인 신당서 외국전 역주 하권의 내용을 참조한 것입니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나라는 당나라입니다. 한당성세(漢唐成世)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사에서 한나라와 당나라는 강력한 제국이었는데, 당나라의 번영과 막강한 국력은 한나라보다 더 했죠. 한나라도 평정시키지 못했던 북방 유목민족을 50년 동안 완전히 굴복시켰고, 수나라가 1백만 대군을 보냈다가 참패했던 고구려마저 당태종과 당고종을 거치면서 기어이 멸망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지도에 나타난 당나라의 영토. 물론 중국인들의 성향상 다분히 과장되었지만, 그래도 한나라 때보다 더 넓은 영토와 거대한 인구를 확보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강대한 당나라조차 끝내 이기지 못하고 고전했던 상대가 있었는데, 북방 유목민인 돌궐이나 동방의 고구려도 아닌, 그들보다 훨씬 약소국이었던 남조(南詔)와 운남 및 사천의 이민족들이었습니다.
특히 남조는 뛰어난 수장인 힙라봉의 지휘 아래, 무려 8만의 당군을 격파하는 전과를 세우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당나라는 서남부 방면에 대군을 보내는 등 비상이 걸렸다가, 마침 안록산의 반란이 일어나 천하가 대혼란에 휩싸이게 되죠.
남조가 위치한 곳은 중국 서남부인 운남성 일대인데, 여기는 지금도 중국에서 가장 개발이 덜 된 오지로 꼽힙니다.
그 밖에 귀주와 사천 일대의 이민족들도 당나라에게 적지 않은 골칫거리였습니다.
우선, 서남부 이민족들 중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남조에 관한 내용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당서의 남만전에 보면, 남조에 관한 기사가 꽤 상세하게 나옵니다.
남조는 본래 육조(六詔)라고 불리었는데, 몽수조와 월석조와 낭궁조와 등섬조와 시랑조와 몽사조 등 여섯 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연맹체 비슷한 집단이어서 여섯 개의 조라는 뜻인 육조로 불렸습니다. 이들은 서로 세력이 비슷해서 연맹을 이루었는데, 그 중에서 몽사조가 여러 부족들의 남쪽에 있어서 남조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기 649년에 접어들면서, 이들 여섯 부족들은 가장 강성했던 남조의 주도로 대몽국(大蒙國: 649~738)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몽국은 738년에 다시 국호를 남조(南詔: 738~859)로 바꾸게 됩니다.
남조는 당나라를 본따 관직을 정했으나, 중국과는 다른 호칭을 썼습니다. 중국 황제가 스스로를 짐(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남조왕은 자기를 원(元)이라 불렀으며, 신하들을 가리켜 중국식 호칭인 경(卿) 대신 창(昶)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밖에 남조는 중국의 재상과 비견되는 최고 관직으로 청평관(淸平官)이라는 직책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당나라처럼 남조 역시 국민개병제를 택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성인 남자들은 모두 군사가 되어 전쟁터로 나가 싸웠는데, 말을 가지고 있으면 기병이 되었고, 말이 없는 자는 자연히 보병으로 편입되었습니다.
병사들에게는 매년 가죽으로 만들어진 상의와 하의가 나라에서 지급되었습니다. 각 마을 간의 거리에 따라서 군을 4군으로 나누고, 4군에 장수 한 명씩을 두었습니다. 만약 적이 국경을 넘으면 그 지역을 지키는 장수가 막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남조왕을 지키는 친위대 병사들은 주노구저(朱弩仇苴)라고 불렀습니다. 구저는 남조말로 가죽으로 된 허리띠를 뜻했습니다.
이밖에 남조에서는 각 지방에서 그 지방 사람으로 조직하여 훈련시킨 병사인 향병(鄕兵) 중에서 선발하여 나저자(羅苴子)라는 부대를 조직했습니다. 나저자 병사들은 각자 붉은색의 가죽 투구를 쓰고, 물소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구리 방패를 들고서 맨발로 다녔는데, 험한 곳을 달리는 속도가 마치 나는 것 같았다고 전해집니다. 보통 남조군에는 1백명 당 나저자를 지휘하는 나저자통(羅苴子統)이 한 명씩 두었다고 합니다.
남조의 군대가 출정할 때는 국가에서 양식을 지급하지 않고, 병사 각자가 알아서 양식을 준비해야 했는데, 한 사람 당 1두(斗) 5승(升)씩을 마련해 2500명을 한 단위로 한 영(營)을 만들었습니다. 남조의 군법은 다소 특이했는데, 먼저 다친 사람은 치료해주지만, 나중에 다친 사람은 베어 죽였습니다.
남조인들은 중국과는 다른 특이한 무기도 만들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거론하면 탁초(鐸鞘)와 낭검(浪劍)과 울인(鬱刃) 등입니다.
먼저 탁초는 끝이 예리한 일종의 칼로 그 모양이 부러지고 남은 칼날 같았고, 구멍이 있어서 옆으로 이을 수 있었습니다. 탁초는 주로 여수(麗水)에서 나며 칼 자루를 금으로 장식하였는데, 이것으로 내려치면 뚫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탁초는 남조를 비롯한 서남부 이민족들이 보물로 여겼는데, 달마다 희생의 피를 바쳐 제사를 지냈습니다.
울인은 일종의 창인데, 주조할 때 독약을 함께 섞어서 단련하였습니다. 그러면 만들 때 별처럼 빛이 났는데, 완성되는 시간이 무려 10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울인은 말의 피로 담금질하고 단단한 무소뿔로 창 머리를 장식했는데, 이것으로 사람을 찌르면 모두 즉사했습니다.
낭검은 낭인이 만드는 이유로 낭검이라 불렀는데, 주로 남조왕이 차고 다니는 검이었습니다.
이밖에 남조의 주변에 위치한 이민족들도 나름대로의 무기와 전쟁에 관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 와족(佤族)의 선조인 망저만(望苴蠻)은 운남성 서북쪽에 살고 있었는데, 남녀가 모두 용맹하고 민첩하여 안장이 없이도 말을 타고서 창과 칼을 잘 사용했고, 짧은 갑옷으로 가슴과 배를 가리며, 가죽으로 된 투구에는 모두 야크의 꼬리를 꽂고, 빠르게 돌격하는 모습이 귀신 같았다고 전해집니다.
망저만족은 남조에 복속되어 있었는데, 전쟁이 벌어지면 남조는 망저만족에게서 군대를 징발했습니다. 이를 망저자(望苴子)라고 불렀는데, 망저만족은 이들을 항상 선봉에 내세웠습니다.
남조의 영토인 노강(怒江) 상류 일대에는 심전만(尋傳蠻)이라는 소수 민족이 살았습니다. 심전만은 남조에 복속된 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낙후한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비단이나 명주로 지은 옷을 입지 않았고, 맨발로 다니는데 엉겅퀴나 가시를 밟아도 아파하지 않았으며, 고슴도치를 사냥해서 그 고기를 날로 먹었습니다. 또한 심전만족은 싸울 때, 대나무로 만든 벙거지를 머리에 쓰고 투구 대용으로 삼았습니다.
심전만의 서쪽에는 나만(裸蠻)이라는 소수 민족이 살았는데, 이들은 동굴에 살고 있어서 야만(野蠻)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들 나만족들은 옷이 없었고, 나무 껍질로 몸을 가리고 살았습니다. 나만족은 산 속에 흩어져 살았는데, 우두머리가 없고 목책으로 만든 집에 거주했습니다. 나만족은 남조의 왕인 합라봉이 심전만을 평정하고 나서 그들로 하여금 산 속에 흩어져 살게 한 이후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합니다.
나만족은 싸우지 않고도 스스로 모여서 남조에 복종했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소집하는 즉시 군사가 되었습니다. 나만족들은 특이하게도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았는데, 그래서 한 명의 남자가 다섯 명이나 열 명의 여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녀들에게 공양을 받았습니다. 나만족 여자들은 온종일 활을 가지고 있으면서 외부에서 침입자가 나타나면 즉시 쏘아서 내쫓았으며, 농사를 짓지 않고 산속에 들어가 곤충과 물고기와 산나물과 민물 조개 등을 채취하여 먹고 살았습니다.
마만(磨蠻)과 사만(些蠻)과 여만과 순만(順蠻)은 남조의 영토인 운남성 안에 사는데, 씻지를 않고 남녀가 모두 가죽옷을 입으며, 술과 노래를 좋아하는 풍속을 지녔습니다.
망만(茫蠻)은 높은 건물을 짓고 살았지만 성벽을 쌓지는 않았으며, 이빨에 옻칠을 하거나 금칠을 했습니다. 이들은 코끼리를 길들여 농사짓는데 사용했습니다.
운남성 남쪽에는 오만(烏蠻)족이 살았는데, 이들은 대대로 남조와 결혼 관계를 맺는 동맹국이었습니다. 오만은 모두 7개의 부족으로 나누어졌으며, 소와 말을 많이 길렀으며, 무당과 귀신을 믿었습니다. 이들의 말은 중국어와 매우 달라, 네 번이나 통역을 해야 겨우 중국인과 말이 통할 정도였습니다. 부족의 우두머리를 귀주(鬼主)라고 불렀는데, 큰 부족에는 대귀주(大鬼主)가 있었고, 1백개의 집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마다 소귀주(小鬼主)를 두었습니다.
지금의 운남성 곤명 호수 일대에는 곤명만(昆明蠻)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머리카락을 변발하고 옷을 왼쪽으로 입는 풍습이 돌궐과 비슷했습니다.
(역자 주: 옛날에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운남성에는 목초지가 많아 좋은 말들이 많고, 또 운남의 소수민족들은 말을 매우 잘 탄다고 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운남의 소수민족들은 원래 북방 몽골 지역에서 내려온 유목민의 후손이라서 승마에 능숙하다고도 합니다.)
곤명만족은 물과 풀을 따라서 목축을 하는데, 여름에는 높은 산에 살며 겨울에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싸우다 죽는 것을 숭상하고, 병으로 죽는 것을 싫어하는 용맹한 전사적인 풍습을 지녔습니다. 또, 곤명만족은 불교를 믿었는데, 수만 명의 승병들을 거느렸다고 합니다.
운남의 서북쪽에는 박자만(樸子蠻)이라는 부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재빠르고 사나우며, 대나무로 만든 활을 잘 쏘아서, 숲에 들어가 새나 쥐를 쏘면 모두 맞추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그릇을 쓰지 않았고, 나뭇잎을 깔고 먹었습니다. 박자만족은 체구가 컸고, 방패를 진채로 삼모창을 잡고 싸웠습니다. 이들은 신발 없이 맨발로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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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쓰다 보니 너무 길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씁니다. 나머지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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