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정글 속에서 숨막히는 저격전이 벌어졌다. 두 명의 미 해병대 저격 팀이 우거진 정글 속에서 누군가를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라오스 국경과 베트남을 남북으로 가르는 비무장지대 근처의 산, 800m 고지 소로에 잠복해 있었다. 그곳은 호치민 루트의 여러 갈래 길목 중 하나였고, 해병대원들은 적의 이동을 중간에서 포착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커먼 위장복을 입은 베트콩 정찰병 한 명이 나타나더니 곧 30여 명의 본대가 조심스럽게 해병대원들 쪽으로 접근했다. 그것은 스나이퍼들에게 절호의 찬스였다. 해병대원들의 눈에는 살기가 감돌고 숨결이 거칠어졌다.미 해병 제3수색대대로부터 1개 엄호분대를 지원받은 해병대 저격수들은 비록 적이 수적으로는 우세했지만, 베트콩 부대를 무찌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들은 놀라운 사격술과 노련함으로 적들의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다고 믿었다.“탕!∼ 타-타-타-탓!” 스나이퍼의 첫 발이 베트콩 정찰병 가슴을 강타했고, 이어 또 다른 베트콩이 연달아 쓰러졌다. 사격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른 채 베트콩 정찰대는 깜짝 놀라서 얼어붙었다. 해병대원들이 당황한 그들을 향해 침착하게 탄알집을 비워 냈고 베트콩들은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11명의 베트콩을 사살했고 6명을 부상시켰다. 남은 적들이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지자 본격적인 정찰·추격작전이 벌어졌다. 그사이 스나이퍼들은 또 다른 표적을 찾아 정글 속으로 사라졌다.1966년 호치민 루트에서 벌어진 이러한 전투는 베트남 전쟁의 대게릴라전에서 저격과 매복전술의 효과를 분명히 보여 준 것이었다.
그러나 정글 속 베트콩 게릴라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미군을 사살함으로써 그만큼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졌다.베트남은 장거리 사격에 기상 조건과 많은 지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격술의 시험장이 됐다. 우거진 정글 속의 전투는 적을 찾을 수 없도록 가시거리가 짧고 소음도 많이 발생했다.
숨막히도록 무더운 날씨와 온갖 해충들, 더구나 강물과 늪지대, 진흙과 오물 때문에 고성능 무기나 탄약을 관리하는 데 큰 부담을 줬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넝쿨이 우거진 곳에서는 미군 병사들의 큰 신장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고 저격총을 취급하기조차 어려웠다.
단신의 월맹군과 베트콩들은 소련제 기관단총과 AK-47 소총을 갖추고 종종 M1 소총이나 칼빈·M16 등 미군의 화기를 휴대하기도 했다. 그들은 숲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을 퍼붓고 도주했다. 이른바 ‘히트 앤드 런’(Hit and Run)의 전형적인 게릴라 수법이었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 저격수들은 소련제 7.62mm M1891/30 모신 나강(Mosin-Nagant) 저격소총으로 무장해 미군을 공격했다. 미군에서 K-44로 알려진 이 총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시 공산군 저격수가 사용했던 장비였고, 4배율의 PE 망원조준경 혹은 가벼운 3.5배율의 PU 조준경이 부착됐다.
월맹군 저격수들은 남베트남으로 침투하는 병력과 물자를 엄호하기 위해 이른바 “호치민 루트”로 배치됐다. 베트남의 남북으로 연결된 이 통로를 확보, 혹은 차단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곳은 울창한 정글로 덮인 산악지대로 미군의 공중감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월맹군이 병력이나 군수물자를 이동시키는 비밀 보급로였다.
이곳에서 쌍방의 스나이퍼들은 정글의 높은 나무나 고지, 땅굴에 은거해 표적을 노렸다. 소련군의 영향을 받은 월맹군 저격수들의 가장 큰 조직은 저격 중대로서 중대본부와 3개 소대로 구성됐다. 예하 저격소대는 주요 전술단위로 월맹군 주력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각 소대의 저격분대는 10명으로 구성, 분대장 외 각 3인조 3개 저격팀으로 편성됐다. 월맹군 저격수는 지역 베트콩 부대에 배속돼 정찰병과 경계병으로 활동했다. 전장에서 월맹군 저격수가 베트콩에게 저격술의 기본훈련을 가르치면 그 대가로 부비트랩 설치나 잠복술에 대한 교묘한 수법을 전수받았다.
특히 베트콩들의 잠복기술은 정글전에서 유용한 공산군 전술이었다.전쟁을 수행하면서 베트남 사람들과 미군 사이의 갈등 즉, 정치적·민족적인 이질감은 결코 극복하기 어려웠다. 이것이 대게릴라전에서 중요한 문제였고 전선과 적을 구분할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전장에 병사들이 내팽개쳐진 것이다.
또 수목이 우거진 험준한 지형과 기상의 악조건도 키가 큰 서구 병사들의 작전활동을 특히 어렵게 만들었다. 미군은 전쟁을 유리하게 끌기 위해 대규모 화력을 운용했으나 공산 적들의 끊임없는 사격과 매복 등, 재래식전투의 위험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황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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