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월맹군이 장악하고 있는 라드랑(Ia Drang) 계곡의 고지 전투에 미 제1공중기동 사단 7연대의 1개 중대가 처음으로 투입됐을 때 헬리콥터가 적지 착륙지점을 확보하려고 선회했다. 이때 월맹군 저격수들의 치열한 대공사격이 시작되자 많은 헬리콥터가 로켓포탄이나 기관총·소총탄에 피격돼 불시착했다. 일부는 적탄을 무수히 맞으며 가까스로 착륙에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중대가 확보한 착륙지점 부근에 숨어 있던 월맹군 저격수가 중대장을 쏘아 쓰러뜨렸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총탄이 날아와 중대장이 중상을 입자 병사들은 당황했다. 우거진 정글 속에서 저격수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부대원들은 자신의 진지 안에서도 안전함을 느끼지 못했고 지휘관이 쓰러지자 공포심이 더욱 확산되면서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 헬리콥터는 스나이퍼들의 중요한 공격목표였다. 월맹군 저격수들은 가능한 한 지휘관의 헬리콥터를 격추하도록 임무가 부여됐고 적십자 마크를 부착한 구조 헬리콥터도 예외가 아니었다.이러한 전술로 월맹군들은 초기 전투 미군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다. 특히 헬리콥터가 서서히 착륙지점을 찾기 위해 선회하며 지상을 살피고 있을 때 가장 위험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운용한 1만 대 이상의 헬리콥터 중 무려 5086대가 추락했고 수많은 탑승인원이 사망했다. 이 중에는 지상에서 공격한 로켓이나 중화기 외에도 소화기 저격탄에 의해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미군은 보다 공세적인 정찰 헬리콥터와 강력한 무장 헬리콥터를 투입해 월맹군 저격수들의 기동을 차단했다.
신형 헬리콥터는 방탄능력을 보강하고 가공할 화력을 가진 베트남 전장의 주인공이었다. 미군 장교들은 대지공격을 가하는 무장헬기의 놀라운 성능을 강조했다. “베트콩들이 벙커에 숨어 있지 않은 이상,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자기 사망증명서에 서명하는 것이다. 헬리콥터가 저격수를 즉시 찾아내거나 아니면 주변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월맹군 저격팀이 미군 수색정찰대를 정글 속에서 포착하면 저격수들은 함정을 만들어 놓고 기습사격을 가했다. 이들은 미군의 작전을 방해하고 공포심을 주는 것은 물론, 우군 사격지대로 유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군 수색정찰대가 일단 기습을 당하면 숲속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주변에는 이미 많은 지뢰와 부비트랩이 설치됐는데 이는 미군 정찰대의 추격을 저지하고 저격수들의 도주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다.
공산군 저격수들은 종종 정면대응을 피하고 미군 정찰대의 후방으로 접근해 후미 병사를 저격한 후 몰래 도주하기도 했다.베트콩과 월맹군 저격수들은 교묘한 기만전술을 개발했다. 통상 야음을 이용해 2개의 부대 진지 사이에 숨어 있다 한 쪽에 사격을 한 후 다른 쪽에도 사격을 가해 양쪽 부대 간 쌍방교전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미군 특수부대 장교인 플래스터(J. Plaster)에 의해 목격됐다.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에서 다리에 위치한 월남군 초소와 1마일 정도 떨어진 우리 진지 사이로 공산군 저격수가 몰래 침투했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 그는 월남군 초소에 몇 발을 발사했고 그 다음 우리 진지 쪽으로 소총을 돌려 몇 발을 쏘았다. 당연히 아군 경계병 중 한 명이 대응사격을 가하자 동맹군인 월남군도 아군 쪽으로 총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전면적인 총격전으로 확대됐다. 그 사이에 정체불명의 저격수는 안전하게 빠져 나갔다. 10분 동안 아군끼리 교전했지만 다행히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다.”월맹군 스나이퍼들은 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데 주력했다. 때때로 그들은 많은 병력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몇 시간 동안 전술적으로 고착시켰다. 미 해병대의 유명한 저격수 와드(J. Ward)는 이러한 저격전의 위기상황을 증언했다.
“정글 속에서 2시간 동안이나 해병대원들이 대피하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몸이 노출되면 바로 저격수의 총격을 받았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긴급히 공중지원을 요청했지만 낮은 구름 때문에 F-4 팬텀기 편대가 지상공격을 하지 못했다. 다른 팬텀기 3대가 다시 출격해 네이팜탄 폭격을 하고 해병대원들이 집중사격을 퍼부었지만 저격수들은 계속해서 사격해 왔고 또 다른 병사가 부상당했다. 이처럼 악착같은 저격수의 저항으로 해병대의 작전은 마비되고 말았다. 결국 우리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적의 저격수는 우리 해병대원 3명을 죽였고 4명을 부상시켰으며, 2개 중대를 묶어 놓았다. 또 아군 전폭기 6대의 공격도 피해 정글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놈의 아무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의 정글전투는 분명히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가진 쪽이 유리하게 전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