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임진왜란

[스크랩] 임진왜란당시 인물들에 대한 사관들의 평가(1592~1593)

구름위 2012. 10. 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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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는 말그대로 사관들이 듣고 본 사실만을 적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사관들의 논평도 실려있습니다.

바로 "사관은 논한다(史臣曰)"로 시작되는 글인데

항상 적는건 아니고 어떤 사건에 대해서 사관이 할 말이 있을때 사관은 조정에서 발언할수 없으니...

대신 실록 구석탱이 빈자리에 적어놓은 자신의 관점에서 본 논평입니다.

물론 실록이 객관적인 기록이라면 이건 완전히 주관적인 기록이죠..

그 논평들중 임란당시 인물에 대한 논평을 좀 알아보기 쉽게 편집해봤습니다

분량이 엄청 많기 때문에 연도순으로 봤으므로

이글에서 평가가 내려진 인물도 중간에 재평가가 다시 내려질 여지가 있습니다.

이 논평들이 쓰여진 시기는 1592~1593년입니다...

나머지는 다음에...

어쨋건 그 논평들을 한번 보겠습니다.~

 

아~참고로...혹평받은 조상님이 있다고해도....소송금지요...ㅠㅠ

그저 전 실록에 있는 내용을 좀 쉽게 풀어서 옮겼을뿐..ㅠㅠ

 

1.정철

 

사관은 논한다

정철은 고집이 세고 편협하며 말을 망령되게하고 농담과 해학을 좋아하여 경망된 행동을 많이했다.

또한 좋아하는 것에서는 단점을 못보고 싫어하는 것에서는 장점을 못보아서 조정을 분열되게했다.

 

삼도체찰사가 되어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내려가면서

기생을 불러 시를 주며 놀았고 자신이 귀양갔던 강계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 눈물나..별별 놈들때문에 임금님에게서 멀어져 힘들었었지~"

(강계 유배됬을때가 국어시간 사람 귀찮게 만든 사미인곡 지을 무렵임..)

 

운운했는데 지금 전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한 판에 싯귀나 흥얼거릴 판이며

기생이랑 고작 강계에 귀양갔던 이야기나 하고 있을 상황인가?

(그리고 전쟁통에 억울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거늘)자신이 예전 배척당했던 일이 그렇게 억울한 일인가?

위기에 처한 나라를 회복하는 큰 꿈이 그런 소인배를 보면 힘들어 보인다.

 

 

2.이정암

 

사관은 논한다

이정암은 키가 작고 몸매도 작고 갸냘퍼서 옷의 무계도 지탱하지 못할듯 보였지만

성격이 강직하고 과감하며 민첩하여 일을 처리할때 일관성있게 공정히 했으므로 소인배들에게 미움받았다

난을 당하자 연안성에 들어가 왜군의 포위공격을 목숨을 걸고 막아내어 백성들을 구했다.

 

 

3.사명당

 

건장하고 날랜 무사들이 겁에질려 있을때

죽을날이 얼마 안남은 늙은 승려가 적을을 무찔렀으니 무사들에게 준 봉급이 아깝고 부끄러운줄 알아야한다.

 

 

4.권율

 

사관은 논한다.

권율은 사람됨이 용렬하고 평범하여 그다지 칭찬할만한 명성이 없었으나

행주에서 대승을 거두어 칭찬할만한 공이 생겼다.

그러나 원수라는 중임을 맡은 후로는 한가지일도 제대로 조치한 것이 없었다.

이런 인물이 중책을 맡았으니 일이 잘안풀리는건 당연하다.

 

5.박진

 

박진은 용감하고 날랜 선비로 전쟁초반 밀양부사로 재직할 당시 적을 물리쳐 공을 올렸다

이후 공을 세우며 파격적 승진을 거듭하자 거드름을 피우며 거만해졌으니 다른건 볼 것도 없다

 

 

6.윤두수

 

개인적인 정이 너무 많아서 공정하지를 못했다.

2년간 좌의정으로 있으면서 정승다운 업적이 하나도 없다.

 

7.선조

선조부분은 사관의 용기가 좀 쩝니다;;;ㄷㄷㄷㄷ

참고로 선조가 양위소동을 벌이자 대신들과 세자가 백배사죄해가며 반려시켰는데

사실 이건 왕권강화를 위한 총성심시험이나 다름 없어서 양위에 찬성하면 반역자취급을 했죠...

이런 양위 소동이 예전 다른 왕들도 없는건 아니지만 자주하면 세자의 위상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일회성인데 반해

선조는 툭하면 해대서 광해군의 기반을 약화시켰습니다...

 

사관은 논한다

임금께서 200년간 이어온 사직을 몽땅 망하게 만들어 놓으시고

다시는 백성의 윗자리에 군림하지 않고자 하여

병을 이유로 총명하고 인자하며 효성깊은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시니

서글프지만 정말 현명한 판단이며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왜 대신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 결정을 따르지 않고 극구 만류하는가?

 

왜적이 물러가기전에는 물러간후에 하자더니 물러가니 한양으로 돌아가길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가

한양에 와서는 중국사신이 와있으니 안된다고 하고 사신이 돌아가고 나니 세자가 어려서 안된다고 하고

얘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왜이리 시간을 끄는가?

 

세자보고 어리다고 하는데 이미 나이도 약관이고 학문도 높고 덕망도 있으니

왕위를 이어받는다해도 충분히 난을 평정하고 화를 종식시킬텐데

계속 어린세자라면서 어린아이 취급만 하는가?

세상에 약관나이의 어린 세자가 어디있단 말인가??

신하들이 전하의 훌륭한 생각을 괜히 말렸으니 매우 애석한 일이다.

 

사관의 말돌려서 까는 솜씨가 정말 일품,,,bㅡㅡ

이거하고도 하나 더 있는데 거의 비슷한 내용이라...

신하들도 앞에서는 후환이 두려워서 말리는척 했지만 속마음은 사관과 다를바 없었을 것 같네요...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꼬마니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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