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병이 되기까지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기 전, 미국의 모든 군대는 지원제에 의해 신병을 충원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열강이나 일본 등에 비해 징병 실시가 늦은 미국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해군은 징병제로의 전환이 비교적 늦은 편이어서, 1942년 12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징병제를 실시하게 되었죠. 그 이전까지의 신병 충원은 오로지 각 주에서 자원하는 소수의 지원병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졌습니다.
[(좌)수병 모집 포스터 / (우)훈련소를 수료한 신병들]
1940년을 기준으로 해군의 모집요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① 17~25세의 미혼 남성 / 신장 160cm 이상 / 고졸 이상의 학력 / 백인 혹은 히스패닉계
② 지역 경찰서장 혹은 고등학교 교장의 추천서를 교부받은 건전한 품성을 지닌 자
③ 21세 미만의 경우 부모나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함
위와 같은 요건을 충족하여 입대한 장정은 훈련소에서 16주간의 신병 훈련을 받은 후 자대에 배치되었고 복무기간은 6년이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복무기간이 6개월 연장되었고 연령제한 역시 35세로 상향조정되었으며 신병훈련 기간 역시 4~6주로 크게 단축되었죠. 신병훈련을 마친 수병들이 배치되는 곳은 실로 다양하여 지역적으로는 서태평양의 필리핀부터 대서양의 버뮤다 제도까지 나뉘어졌고, 직별상으로는 전함의 포탑 요원부터 자그마한 목제 어뢰정의 기총수, 그리고 육상 기지의 창고지기까지 거의 공통점이 없는 가지각색의 부서로 흩어지곤 했습니다. 일부 인원들은 이러한 일반적인 직별 외에도 헌병, 상선의 무장경비 요원, 항모의 비행갑판 요원 등 보다 특수한 직별을 배정받곤 했죠.
[(좌)장교식당의 흑인 당번병 / (우)함포 요원으로 복무중인 흑인 수병들]
한편 위의 요건에서 보다시피 당시 미 해군은 인종적으로 폐쇄적인 집단이었고 흑인은 해군의 말단 계급인 수병으로 복무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소수의 흑인들이 수병으로 받아들여지긴 했으나 그 직책은 정규 승조원이 아니라 오로지 취사병 혹은 장교 식당의 당번병 등 보조 잡무에 국한된 것이었죠. 이러한 인종차별은 전쟁이 발발한 후 서서히 개선되기 시작하여 1943년경에는 소수의 호위 구축함과 지원함이 “백인 장교/하사관 + 흑인 수병” 체제로 운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미 해군의 인종 개방은 육군에 비해 뒤쳐진 편이었고 종전시까지 해군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5%(약 16만명)를 넘지 않았습니다.
(*주 : 미 해군에서 최초로 흑인장교가 나온 것은 1944년이었고 사관학교 졸업생 및 조종사가 등장한 것은 1949년, 그리고 흑인 함장은 1962년이 되어서야 등장했음. 반면 미 육군은 이미 1877년부터 흑인계 사관학교 졸업자를 내었고 2차대전 중반에는 최초의 흑인 장성을 배출하였음.)
2. 수병의 일상생활
1) 수병의 복장
미 해군의 복제는 당시 세계 해군의 일반적 기준에 기반하고 있었고 수병들의 제복 역시 보편적인 틀-“세일러복”-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수병에게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제복은 동정복과 하절기에 입는 하근무복(하정복을 겸함), 그리고 함상에서 입는 평근무복이었습니다. 동정복 상의는 두꺼운 모직으로 된 짙은 남색의 점퍼 타입이었고 목 둘레에는 마찬가지로 짙은 남색천으로 된 치장깃이 달려있었습니다. 본래 세일러복의 치장깃은 선원들이 땀을 닦기 위해 더러움이 잘 타지 않는 검정색 천을 목에 두르고 다닌데서 유래했다고 하나, 이 시기에 이르면 그런 의미는 사라지고 단순히 장식으로서의 의미만 갖게 되었죠.(물론 개의치 않고 땀수건으로 쓰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만)
[2차대전 당시 미 해군 수병의 복장들]
소매 끝단과 목 둘레에는 1~3줄의 흰색띠가 수놓아져 있었고 좌측 소매 중단에는 계급과 직별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동정복 바지 역시 두꺼운 모직으로 되어 있었고 끝단으로 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나팔바지 형식을 띄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단정이 해안에 접안할 때 신속하게 바지단을 접을 수 있도록 한데서 유래됐다고도 하죠. 열대 기후 지역에서나 하절기에는 백색의 얇은 면직물로 짜여진 하근무복을 착용하곤 했습니다. 하근무복의 외양 역시 동정복과 유사했으나 소매 끝단과 치장깃에 띠가 없었죠. 기타 함상근무나 작업 때에는 청회색의 셔츠와 남색 바지로 이뤄진 평근무복을 착용했습니다.
미 해군 수병의 제복에 있어서 한 가지 문제점은 옷에 주머니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의 왼쪽 가슴에 1개, 바지에 1~2개 정도의 주머니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지니고 다니기 불편했던 것이죠. 때문에 몇몇 고참 수병들은 스스로 상의 안쪽이나 바지에 주머니를 만들어 달곤 했으며 때때로 이것이 규율 위반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나팔바지의 밑자락이 매우 통이 넓은 것에 착안하여 바지 안쪽에 작은 비밀 주머니를 만들고는 그것에 반입금지 품목(술 등)을 몰래 담아오기도 했던 것이죠.
더 나아가서는 아예 뉴욕이나 샌디에이고의 민간 양장점에서 맞춘 사제 제복을 입는 고참 수병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군 지급품과 달리 단추 대신 지퍼가 달려 있었고 재질 역시 고급이었으며 안감에 충분한 주머니를 만들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것은 해군의 공식 규율에는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만약 해당 부서장이 규율에 엄격한 사람이라면 수병은 언제나 영창에 갈 위험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사제 제복을 자신의 캐비넷 안에 고이 모셔 놓아야만 했죠.
2) 수병의 식생활
(*주 : 이 부분은 일전에 「해군과 밥」에서 언급한적이 있었으니 자세한 내용은 그쪽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3) 수병의 생활공간
일반적인 거주공간은 분대 단위로 1개 격실에 마련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침상은 보통 철제 틀에 매트리스를 깐 3단식 침대가 보통이었으나 1차대전 이전에 건조된 구형 함선들은 여전히 캔버스 천과 로프로 된 해먹을 설치해서 잠을 청해야만 했죠. 침상 옆에는 각자 자신의 사물을 정리할 수 있는 알루미늄제 캐비넷이 있었으며 이곳에 자신의 제복, 세면도구, 신발, 속옷, 기타 개인사물들(책, 편지, 기념품 등)을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사물들중 일기는 이곳에 보관할 수 없었는데 보안상의 이유로 일기의 작성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격실 한편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어서 비번인 수병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카드게임 등을 할 수 있었으며, 출입구 근처에는 세면대와 시계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침상의 선호도는 중단>상단>하단 순이었는데 하단의 경우 거의 갑판 바닥과 맞먹을 정도로 낮게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동료들의 발소리 등이 거슬리고 안좋은 냄새가 몰렸기 때문이었죠. 한편 위치상으로는 출입구 주변이 가장 인기가 좋았는데, 이것은 세면대와 시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수상함의 수병 거주구역. 사진 상단에 늘어진 것이 해먹]
거주구의 취침 환경은 전반적으로 쾌적한 편은 아니었다고 평가됩니다. 2차대전 기간중에 건조된 일부 신형함들에는 에어컨이 설치돼있었지만 대부분의 함선에는 거주구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열대 지역에서 작전할 경우에는 야간에 잠을 청하기란 대단히 곤란한 일이었고 잠자리가 곧 땀으로 축축해지는 것도 흔한 일이었죠. 이런 이유로 인해 날씨가 무척 더울 경우 함장이 특별히 갑판에서 취침하는 것을 허락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고참 수병들은 저런 허가가 없어도 나름대로 쾌적한 수면을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곤 했습니다. 거주구는 각 직별의 전투배치 구역에 근접하여 설치됐기 때문에 고참 포탑 요원들은 주로 에어컨이 설치돼있던 포탑 내부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 수병들은 개인적으로 선풍기를 구해서 거주구 내에 설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좌)전함의 세면장 / (우)샤워 장면]
샤워시설과 화장실은 마찬가지로 분대 단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각각의 거주구 근처에 설치되었고 해당 거주구의 수병들에 의해 관리되었습니다. 다만 샤워의 경우 해상에서는 언제나 청수가 귀중하고 부족했으므로 청수로 샤워를 할 기회는 그다지 흔치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일단 몸에 물을 묻힌 후 비누칠을 하고 다시 한번 물을 틀어서 몸에 남은 비눗기를 제거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죠. 때문에 태평양이나 기타 온화한 기후의 해상에서는 비가 올 때 갑판에서 옷을 벗고 몸에 비누칠을 하는 수병들을 보는 것이 드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좌)전함의 치과 진료실 / (우)전함의 카페테리아]
거주구와 위생시설 외의 기타 편의시설은 함의 크기에 따라 편차가 심했으며, 함의 크기가 커질수록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의 종류도 늘었고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 역시 향상되곤 했습니다. 전함이나 항모 레벨에 이르면 규모나 종류 면에서 작은 소도시나 마찬가지였죠. 이를테면 의료 서비스의 경우 구축함에서는 군의관 1명이 1개 격실에 마련된 의무실에서 간단한 치료 등을 행했던 반면, 전함이나 항모에서는 독자적으로 수술을 할 수 있는 설비가 있었고 치과 진료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발소, 세탁소, PX, 카페테리아 등등도 대형함에서만 볼 수 있는 설비였죠. 소형함에서는 저런 시설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하거나 외부에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PX의 경우 구축함 등이 대형함과 접촉했을 때 가장 먼저 흥정에 오르는 대상이었다고 하죠.
이런 흐름에서 가장 말단에 있는 것이 잠수함의 수병들이었습니다. 잠수함은 식생활 면에서는 수상함에 비해 우월했지만 생활공간이나 편의시설에서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죠. 침상은 1.5~2명이 공동으로 사용하였고 식당이나 화장실, 샤워 시설 또한 숫자나 사용가능 횟수 면에서 도저히 수상함과 비할 바가 못되었습니다. 에어컨이 있었으나 이는 승조원보다 함내의 기계류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고, 그나마도 함의 크기에 비해 용량이 역부족이어서 장시간의 잠수시 함내 온도가 35도 이상으로 치솟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좌)잠수함의 거주구 / (우)누드 브로마이드로 도배된 침상]
신선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함내의 공기는 이산화탄소가 많이 섞여 늘 탁했고 여기에 음식 냄새, 기름 냄새 등이 섞여 기묘한 악취를 만들어냈다고 하죠. 이 때문에 아무리 세탁을 해도 옷이나 침구류에는 늘상 악취가 배어 있었고, 초계 항해를 마친 후에는 옷과 침구류를 몽땅 버려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수상함에 비해 느슨한 규율이었습니다. 잠수함에서의 상하관계가 보다 느슨하다는 것은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그 외에도 잠수함의 수병들은 수상함의 수병들에 비해 자신의 거주구를 보다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수상함이었다면 영창감이었을 누드 브로마이드 등도 잠수함에서는 눈감아줄 수 있는 사항에 해당했죠.
4) 수병의 하루 일과
하루 일과는 5시에 함내 방송 설비를 통해 기상나팔을 울리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자정부터 4시까지 당직을 섰던 수병은 7시까지 더 잘 수 있었지만 나머지 수병들은 재빨리 일어나 복장을 갖추고 모포를 갠 다음 매트리스 위에 단정히 접어놓아야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잠에 취해 늑장을 부리는 수병에게는 위병 부사관의 고함소리와 곤봉이 날아들기 일쑤였죠. 때때로 7시까지의 취침을 허락받은 수병들이 이런 잠꾸러기로 오인받아 두드려 맞기도 했는데, 이들은 머리맡에 화장지를 고이 접어놓음으로써 자신이 7시까지 취침할 수 있음을 표시하곤 했습니다.
[(좌)아침의 갑판 청소 / (우)식사를 위해 늘어선 대열]
이것이 끝나면 각 수병들은 자신의 담당구역 혹은 상갑판으로 가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해당 부서의 장교가 어떤 식으로 청소를 할지 정해주면 수병들은 그것에 따라 갑판을 쓸거나 일렬로 서서 대걸레로 갑판을 밀어내곤 했죠. 한편 기관실과 포탑 등 하부 시설의 수병들은 해당 부서의 장비들을 점검하고 윤활유를 치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7시가 되면 갑판사가 조식 시간을 알리는 타종을 치고 각 수병들은 열을 지어 수병 식당 앞에 줄을 서고 아침식사를 시작했고, 7시 55분이 되면 대부분의 수병들이 식사를 마친 가운데 갑판사가 점호를 알리는 타종을 쳤죠. 8시에는 상갑판 및 각 부서에서 점호가 실시됐습니다. 각 부서장은 총인원과 현재인원, 환자 등을 체크한 후 수병들에게 하루 일과, 공지사항 등을 통보했고 8시 30분부터 이에 따라 오전 일과가 시작됐습니다. 일과 중에 행해지는 것은 보통 자기 부서에 해당하는 훈련이었고(이를테면 훈련용 포를 사용한 포탄 장전 훈련 등) 때때로 새로운 기술을 위한 강의와 수업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정박중에는 훈련외에도 함의 유지를 위한 정비와 각종 작업들(함체 도색 등)이 이뤄지곤 했죠.
[(좌) 점호 / (우) 대공포 사격 훈련]
12시가 되면 중식 시간이 시작됐고 13시부터는 오후 일과가 시작됐다가 16시 30분이 되면 하루의 일과가 종료됐습니다. 수병들은 이때부터 거주구로 돌아갈 수 있었고 17시에 석식 타종이 울릴 때까지 각자 거주구에서 세면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카드게임을 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동료들과 잡담을 하는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함내 밴드 공연(대형함의 경우에만)이나 영화상영이 있는 날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20~21시가 되면 중요 구역을 제외한 함내 전역이 소등되었고 수병들은 잠자리를 펴고 잠을 청했습니다. 물론 야간 당직이 있는 수병들은 동료들보다 조금 수면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죠.
5) 여가 활동
꽉 짜여진 일과와 작업 사이에서도 수병들은 틈틈이 여가를 즐김으로써 정신 건강을 유지했습니다. 가장 흔히 행해진 것은 테이블에서 할 수 있는 게임들과 카드놀이 등등이었고 이것은 오후 일과 종료 후나 저녁식사 이후에 거주구의 테이블 등에서 종종 벌어지곤 했죠. 물론 카드놀이는 종종 봉급을 건 도박판으로 변하곤 했고 해군 당국은 도박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기껏해야 수병의 봉급을 매주 5달러 단위로 나누어 지급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죠.(봉급날에 도박으로 전액을 일시에 날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도박에 물들지 않은 수병들은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나무로 함의 모형을 만들거나, 애인이나 부인을 위한 기념품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좌)카드놀이를 하는 수병들 / (우)뭔가 마시고 있는데.. 술일까요?]
술․담배 역시 훌륭한 오락거리로 인식되었습니다. 함상에서의 흡연은 지정된 시간에만 제한된 장소에서 할 수 있었는데, 일과 중에는 5시-7시-11시 30분-16시에 함내에 설치돼있는 흡연등에 불이 들어왔을 때만 흡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과 종료 후에는 소등 전까지 자유롭게 흡연을 할 수 있었으나 19시 30분 이후에는 실외 흡연이 금지되었죠. 비교적 흡연이 자유로웠던 것에 비해 음주는 훨씬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미 해군은 1914년 이래로 전면적인 금주정책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내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힘들었지만, 일부 고참 수병들은 승선시에 소량의 주류를 숨겨 들여오거나 심지어 스스로 술을 빚기도 했습니다. 가장 흔하게 이용된 것이 건포도(raisin)였고 이것으로 만든 술은 통칭 ‘raisin jack'이라고 불렸죠. 한편 당시 일부 어뢰의 연료에는 곡물로 만든 알콜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고참 수병들은 그 알콜을 빼내어 “torpedo juice"라는 이름을 붙여 마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좌) 복싱 대회 / (우)비행갑판에서 일광욕을 하는 승조원들]
몸을 움직이는 여가활동으로는 각종 운동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본격적인 공간을 갖추기 어려운 함선에서는 갑판에 나와 조깅을 하거나 샌드백을 두드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운동을 하곤 했으며 후갑판을 이용하여 간단한 농구장을 만들거나 휴일에 복싱 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방면에서도 대형함 승조원들이 소형함에 비해 훨씬 좋은 여건을 누릴 수 있었으며, 가장 혜택받은 수병들은 항공모함 승조원들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전장을 벗어난 평시에 항모의 드넓은 비행갑판은 곧 운동장 그 자체였고, 항모 승조원들은 단체로 갑판에 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심지어 중․소형함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함내 부서 대항 야구경기」를 개최한다거나 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죠. (홈런이 자주 나오면 어떻게 했을지?)
[(좌) 연극 공연 / (우) 함내 밴드의 공연]
일요일이나 휴일은 모든 점에서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우선 점심식사 메뉴부터가 화려해졌고 종교행사나 운동경기, 각종 공연 등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들이 많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때때로 밴드의 공연이나 뮤지컬․코메디․여장 패션쇼 등등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휴일에는 영화 상영도 보다 더 빈번히 이뤄졌습니다. 보통 저녁식사 후 수병식당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영화를 상영하곤 했는데, 좁은 공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후덥지근하고 공기도 탁하긴 했지만 오락거리가 부족했던 함상에서는 언제나 구름같은 인파가 몰려들곤 했다고 합니다. 물론 보유하고 있는 영화 편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상영하는 일이 많았고, 이 때문에 함선이 항구에 기항하거나 다른 함선과 접촉하게 될 때 초급 장교들의 최우선 임무는 영화 필름을 다른 것으로 교환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함선에서는 오랫동안 기항을 하지 못하여 같은 영화를 몇 주일째 계속 보는데 질리자 결국 해상보급 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2명의 중위를 급파하여 영화 필름을 바꿔오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필름 교환에는 성공했으나 케이블을 타고 자함으로 복귀하던 중 실수로 필름을 바다에 빠뜨려 버렸고, 덕분에 함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6) 상륙과 휴가
함내에서의 여가활동도 좋지만 모든 수병들이 가장 바라마지 않던 것은 바로 상륙과 휴가였습니다. 일단 함선이 항구에 기항하면 당직을 제외한 수병들은 그날 저녁 19시까지 항구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수병들은 이 날을 위해 고이 다려둔 정복을 꺼내 입고 왼쪽 가슴의 주머니에 상륙허가증을 넣은 후 각자 기대에 부풀어 육지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상륙 중에는 정복 착용과 상륙허가증 소지가 의무화 되어 있었고 때때로 해군 헌병(SP)이 지나가는 수병을 붙잡아 상륙허가증 유무를 조사하거나 복장상태를 점검하곤 했습니다. 어떤 술집들은 수병을 위해 개인 사물함을 비치해두기도 했고 수병들은 이곳에 자기의 제복을 맡겨둔 후 사복차림으로 규율에 구속되지 않은 채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었죠.
[(좌)파나마에 단체로 상륙한 수병들 / (우) 2명의 헌병에게 적발된 수병. 표정이 불안해 보이네요]
[(좌)술집에서 동료들과 함께 / (우)부적절한 관계]
상륙한 수병들은 술집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거나 여자를 유혹하거나 했으며, 말재간이 부족하거나 인내심이 많지 않은 사람은 사창가를 찾는 일도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다가 다른 배의 승조원들이나 육군/해병대들과 난투극이 벌어지는 일도 종종 있었고, 그럴 때면 으레 술집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육․해군 헌병들이 호각을 불면서 나타나고 난 후에야 싸움을 간신히 멈출 수 있는 때가 많았죠. (물론 눈치빠른 친구들은 호각 소리가 들릴 때쯤 벌써 술집을 뛰쳐나가 사방팔방으로 도망가기 일쑤였습니다만) 저런 것들 이외의 오락거리는 항구가 번화한 정도에 달려 있었는데,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는 영화관을 가거나 브로드웨이에서 쇼를 볼 수도 있었으며, 관광을 하거나 유원지에 가거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수도 있었죠. 아니면 YMCA 건물을 찾아가서 사물함에 제복과 짐들을 맡겨둔 후 저렴한 가격에 샤워시설, 이발소, 수영장, 당구장 등을 이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좌)상륙한 수병들을 소재로 한 뮤지컬 / (우)뭔가 심상치 않은 바에서 술을 마시는 수병들]
뉴욕, 샌디에이고, 노포크, 샌프란시스코 같은 큰 항구에서는 복귀 시간을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늦추는 것도 가능했는데, 저렇게 외박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륙전에 허가를 받아야 했고 육지에 도착한 후에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바로 연락할 수 있도록 일정한 연락처를 남겨야 했습니다. 기혼자나 근처에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 수병들은 거처를 마련하는데 별로 불편함이 없었지만 그렇지 못한 수병들은 간이침대가 딸린 3달러짜리 싸구려 여인숙에 여장을 풀곤 했죠. 한편, 외박이 가능한 조건과 항구의 번화함 때문에 이성을 만나는데 관심이 많은 수병들 사이에서는 저런 큰 항구들이 근사한 아가씨를 만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다양한 커플들]
전반적으로 뉴욕,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의 평판은 좋았으나 노포크와 호놀룰루의 아가씨들은 별로라는 평이 많았고 함선이 진주만에 기항할 때는 아예 고참들이 신병들에게 “호놀룰루로 나가는 것보다 진주만의 해군공창에서 시간을 보내는 쪽이 더 나을거다”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죠. 물론 이렇게 상륙 중에 만난 수병과 아가씨가 결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함대가 태평양에 있을 때는 저런 류의 진짜 상륙은 불가능했고 함대 정박지로 사용하는 남태평양 군도나 울리시 환초 등에 기항할 때에만 육지에 상륙해서 짧은 휴식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방면에서 유명한 것이 울리시 환초의 “모그모그”섬인데 이곳은 후방이 아닌 최전선에서 유일하게 음주가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상륙정을 통해 섬에 상륙한 수병들은 해변에 마련된 PX에서 1인당 맥주 500cc 2~4병씩을 지급받아 마실 수 있었던 것이죠. 다만, 일반 수병들은 지급량에 엄격한 제한이 있었고 맥주의 도수 또한 3도로 낮춰져 있는 것만 살 수 있었습니다. 맥주를 마신 수병들은 해변에서 배구, 야구 등의 운동을 하거나 수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복귀 시간인 19시가 가까워 오면 오전에 그들을 태우고 왔던 상륙정들이 다시 나타나 계류돼있는 함선들을 하나씩 순회하며 수병들을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좌)맥주로 더운 목을 축임 / (우)해수욕을 즐기는 수병들]
단, 모그모그 섬에서의 휴식은 후방 항구에 기항했을 때보다 훨씬 더 수병들에게 계급의 차이를 자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일반 항구에서도 장교들만 들어갈 수 있는 클럽이나 술집 등이 많았지만, 수병들도 돈만 있으면 다른 술집에서 그에 못지않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데 비해 모그모그에서는 장교들이 즐기는 것을 수병들은 그저 구경만 해야 하는 것이 꽤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장교 클럽에서는 맥주를 제한없이 구매할 수 있었고 술의 도수도 정상적인 5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장교들이 섬에 상륙한 간호장교들과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었던 반면에 수병들은 이들과 접촉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죠. 그 때문에 “모그모그 섬에서의 휴식은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장교와 사병의 차이를 절실히 느끼게 된 탓에 울분을 느꼈다”는 수병들도 많았습니다.
[광고와 실제]
잠수함 승조원들의 경우는 더욱 좋지 않았습니다. 진주만을 모항으로 하는 잠수함의 승조원들은 함이 초계항해를 마친 후에 함이 오버홀과 보급을 마칠 때까지 약 1주일간의 휴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1942년에 미드웨이에 잠수함 기지가 세워진 후로는 함이 대대적인 수리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진주만을 거치지 않고 미드웨이에서 보급과 정비를 마친 후 다시 항해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죠. 1주간의 휴가라고는 하나 미드웨이 섬에서 얻을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해군이 내주는 음식들과 아이스크림뿐이었고 가장 중요했던 술이나 근사한 아가씨들은 도저히 구할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어떤 수병은 “이 섬에는 모래는 무진장하게 많지만 여자라고는 오로지 주변에 떠돌아다니는 바닷새의 암컷뿐이다”라고 한탄하기도 했죠.
수병들은 본래 1년에 30일의 휴가를 얻을 수 있었지만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오로지 함선이 장기간의 오버홀이나 수리 등을 위해 본국에 귀환했을 때만 휴가가 가능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수병들은 집에 돌아가서 가족이나 애인과 시간을 보내곤 했죠. 상륙 중에 만난 아가씨와 교제하던 수병들은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결혼을 하기도 했는데, 해군 당국은 이런 수병들을 위하여 브레머튼, 노포크 등의 주요 군항 근처에 침실 1칸과 욕실, 주방, 그리고 나무를 때는 스토브가 딸린 주택을 임대해주곤 했습니다. 신혼부부들은 함선이 수리를 마치고 출항할 때까지 이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3. 마치며..
해군은 크게 보면 군함과 군함, 기계와 기계간의 싸움이지만 그것들을 운용하는 것은 결국 기계가 아닌 수병들입니다. 그리고 수병들 역시 전투기계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이죠. 그들의 임무는 전투를 위한 것이며 그것을 위해 평소에는 엄격한 규율과 군기를 지켜야 하지만, 그들 역시 옷을 입고 밥을 먹어야 하며 가끔 규율위반도 하고 술이나 영화, 이성교제 등등을 바라는 존재들입니다. 글을 쓰던 중 특히 재미있던 부분은 상륙과 휴가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제 군생활간의 외박 체험들이 떠올라 잠시 흐뭇하기도 했고, 저때 사람들도 다들 우리 때나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늘상 하는 얘기지만 과거인들이 단지 통계 숫자나 활자의 일부분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있었던 인간이라는 느낌이 전해질 때 역사나 전쟁사는 더 흥미있게 다가오는 것 같군요. 아무쪼록 좋은 영상물을 접하게 해주신 메카라빔 님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참고문헌 / 자료 출처]
-『컬러로 보는 2차 세계대전사 : 항공모함 & 잠수함편』, 연도 미상, The History Channel.
- Mark Henry, 『US Navy in World War II』, 연도 미상, Osprey Publishing.
- http://www.battleshipnc.com/history/bb55/sailor/index.php
- http://www.armed-guard.com
- http://www.history.navy.mil/branches/teach/sail/sailor-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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