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 세기 세계를 재패했던 영국도 한때는 바이킹의 침략에 무릎을 꿇었던 때가 있었다.
원래 영국이라는 섬은 원주민인 켈트족이 로마에 점령되었다가 로마가 물러간 이후엔 또 게르만계의 한 분파인 앵글족과 색슨족의 침입을 받았다. 그후 켈트족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국한되면서 영국은 게르만족인 앵글로 색슨족의 땅이 되었다.
오늘날 스코틀랜드라는 말뜻은 켈트족의 한분파인 스코티족의 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왕국에 지배받던 스코틀랜드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맬깁슨이 주연했던 브레이브하트라는 영화가 있기도 하다.
이렇게 영국섬을 지배하던 앵글 색슨족도 9세기에 접어들어선 덴마크의 바이킹인 데인족의 침략에 몸살을 알아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침략하던 데인족의 바이킹에 시달리던 앵글 색슨계 왕국은 "전쟁만큼은 피하자"는 뜻으로 데인족 바이킹에게 금화를 바치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바로 유명한 데인겔트이다.
전쟁을 피하자고 바치던 데인겔트는 굴종과 노예의 상징과도 같았다. 이렇게 싸우지 않고 금화를 얻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덴마크의 데인족의 이야기는 다른 바이킹족에게도 흘러들어가서 급기야 노르웨이를 기반으로 하던 바이킹까지 영국섬을 침탈하게 되었다.
시간이 가면서 바이킹이 요구하는 데인켈트의 양은 많아지고 그것을 확보하지 못한 영국의 여러왕국은 결국 바이킹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영국땅에 세워진 바이킹왕국이 바로 "노르만 왕조"이다.
그래서 전쟁만큼은 피하자고 바치는 데인겔트는 굴종과 노예의 상징처럼 된 것이다. 오늘날도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선 데인겔트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으니 그때 영국이 바이킹에게 바친 데인겔트의 양을 짐작할 수 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이후 바이킹의 바다로의 진출결과는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하다.
3심제도나 배심원제도는 바이킹의 심판제도였다.
또하나 오늘날 전세계의 선도국가로서 삶의 질이나 국민개인소득면에서도 바이킹족 후예 국가들은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다음은 바다의 정복자 바이킹의 배를 감상해 보자
덴마크에서 발굴된 데인족 바이킹 배.
유선형의 미려한 곡선은 현대 선박기술의 모체이기도 하다. 용골선의 대표격이 바로 바이킹배이다.
다음은 바이킹 족장의 무덤에서 발굴된 바이킹 배이다. 바이킹의 장례법은 시신을 배에 실어서 바다로 내보내면서 불태우는 방법과 이렇게 배를 시신과 함께 매장하는 방법이 있다.
바이킹 선박안에서 발굴된 말뼈들이다. 일종의 부장품인 셈이다.
바이킹의 선박 (바이킹 족장의 무덤) 발굴모습
다음의 사진은 너무도 유명한 노르웨이 오슬로의 OSEBERG SHIP이다. 바이킹 선박으로는 완전히 100% 그대로 발굴되었다.
바다의 정복자 바이킹의 상징 바이킹 선박. 하나의 조형물로서도 아름답기 그지 없다.
바이킹 선박의 조형미. 곡선의 아름다움은 마치 부드럽게 흐르는 여체의 나신을 연상할 정도로 美麗하다.
바이킹 선박의 상징이기도 한 높은 고물의 괴수 장식과 섬세한 조각.
지극히 섬세한 선체 조각.
관광선으로 활약하는 바이킹선과 바이킹의 후예(?) 잘 생겼다^^ 참고로 금발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바이킹의 국가였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이다.
출처 http://kr.blog.yahoo.com/shinecommerce/23973 고성혁의 역사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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